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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출시 원해요

가끔씩 탕비실에 이것들이 있으면 참 좋으련만

by 홍윤표

새 학기 맞이 간식을 사려고 쇼핑몰을 탐색 중이다. 교실에서 나 혼자 두고 먹을 간식이라면 내 입맛과 취향대로 구매하면 될 테지만 비담임은 그렇지 않다. 함께 사무실을 쓰는 6명의 선생님들께서 종종 꺼내 드시면서 만족해할 만한 제품을 찾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굳이 비교하자면 벤담의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 비슷한 것을 실현시키고프달까. 이렇게까지 검색을 고집하는 이유는 다름이 아니다. 대표로 주문한 간식들이 덩그렇게 탕비실 한쪽에 쌓여있는 모습을 보는 경험은 썩 유쾌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게 아무도 종용하거나 채근하지 않는 간식 찾기를 수십여분 째, 어떤 알고리즘에서인지 모르겠는데 새로 창을 여니 '단종 과자'에 대해 언급한 글이 내 시선을 사로잡았다. 어떤 과자들이 있나 살펴보니 꽤 반가운 친구들이 자리 잡고 있었다.

6살 때 아빠의 술병을 골목 아래 슈퍼에 가져다 드리고 늘 바꾸어먹었던 '배트맨 아이스크림'. 초등학교 4학년 때 전국에 선풍적인 'H.O.T' 붐이 일었을 때 등장해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미스터 해머' 과자 등이 바로 그것이다. 배트맨 아이스크림의 백미는 박쥐 부분을 둘러싸고 있는 노란 부분이 파인애플 베이스의 셔벗이었다. 단순한 'Popcicle'이 아닌 과즙의 씹는 맛이 살아있어 빨아먹는 게 아니라 베어 먹는 게 더 먹기 편한 제품으로 기억한다. 그 이후로도 아무리 파인애플 맛 아이스크림을 먹어봐도 저 배트맨 아이스크림만큼의 풍미가 느껴지지 않는 것은 참 희한한 일이다. 내 입맛이 바뀐 것인지도 모르겠지만 분명히 배트맨 아이스크림에는 다른 제품과는 차별화된 특별함이 있었던 것은 맞다. 마치 삼양라면의 햄 맛 같은 정도의 크리티컬 함이랄까.

'미스터 해머'는 비슷한 종류의 '와클'이라는 과자가 대체재의 역할을 톡톡히 해내는 것으로 알고 있다. 자주 먹던 소비자로서 분석을 해본 결과 와클은 덩어리가 좀 더 크고 딱딱한 텍스쳐가 특징이고 미스터 해머는 그보다는 좀 더 작은 크기에 고운 입자들로 모여 만들어진 식감이 특징이다. 어른이 된 지금 나에게 두 과자의 공통점은 '어떤 맥주와도 잘 어울릴 마른안주'라는 것으로 귀결되지만 두 제품은 여전히 1996년으로 시간 여행을 보내주기에 충분하다. 최근에 '캔디' 노래가 NCT DREAM에 의해 리메이크되어 거리 이곳저곳을 수놓고 있는 것을 보면 아직도 'H.O.T'는 소비 가치가 꾸준한 아이템임에는 분명한 모양이다.

군대를 다녀온 사람은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사회에서는 있어도 잘 거들떠보지 않던 초코파이와 사이다가 훈련소에서는 얼마나 소중했는지를 말이다. 그중에서도 '가나 파이'는 26 연대 1대대 2중대 3소대 123번 훈련병에게는 좀 더 특별한 기억으로 남아있다. 종교가 없는 본 훈련병에게 기독교, 불교, 천주교 3개의 신앙 중 한 가지를 고르란다. 생활관 친구들이 기독교로 가면 간식을 제일 맛있는 것을 준다고 하길래 기독교를 선택했다. 그렇게 훈련소에서 지내는 주말마다 예배를 드리고 매번 가나파이와 칠성사이다를 손에 얻었는데 이건 '신의 축복'이나 다름없었다. 그래서 태어나서 처음으로 123번 훈련병은 '간증문'을 쓰기 시작했다. 왜냐하면 매주 5편씩 우수 간증문을 발표하고 채택된 병사에게는 '가나파이 한 박스'를 부상으로 주었기 때문이다. 아마 4주 차 각개전투가 끝난 무렵이었을 것이다. 각개를 끝냈기에 홀가분한 마음으로 예배를 마치고 시작된 우수간증문 발표시간. 123번 훈련병이 호명되며 스크린에 '123번 훈련병'이라는 메시지가 또렷하게 드러났다. 그날 밤 123번 훈련병이 생활관의 영웅이 된 것은 당연했다.


"뭘 그렇게 열심히 봐요? 애들 간식 사주려고?"


옆 자리에 않은 부장님께서 나를 다시 현실 세계로 돌아오게 도와주셨다. 위에 언급했던 과자와 아이스크림은 한 때 나를 즐겁게 했고 가끔씩 꺼내먹을 수 있는 추억까지 선사해 준 고마운 존재들이다. 그러나 이 친구들과의 추억은 오롯이 나와 함께 한 것이기에 다른 이들에게 굳이 권하고 싶은 마음은 없다. '아 재미있었다'라는 말을 속으로 되뇌며 에이스, 맥심 커피믹스, 견과류 믹스 등을 장바구니에 담는다. 탕비실 간식 쌍두마차를 달리는 아이템들로 꽉 채워 담고 주문 버튼을 누르며 생각한다.


"너희가 다시 재출시된다면 내 사비로 너희를 주문할게.
그동안 어떻게 지냈는지 듣고 싶구나. 물론 내 얘기도 해줄게. 꽤 흥미진진한 일들이 많았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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