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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윤표 Sep 10. 2023

옥에 티 발견

혹시 우리 반에서 축구에 대해 잘 아는 사람 손들어 주세요

금요일 5,6교시는 6학년 영어 수업 시간이다. 점심식사 이후인 데다 금요일 수업이라 학생들의 집중도를 향상하는 데 조금 힘겨울 때가 많다. 그래서 되도록이면 학생들의 관심을 살 만한 주제로 주의를 환기하는 경우가 많은데 오늘은 좀 더 특별한 것을 소개해 보기로 했다.

"혹시 우리 반에서 축구 지식에 대해 일가견이 있다. 손들어 볼 사람"

이미 질문하기도 전에 5명의 남학생들이 손을 들 것이라 예상했고 너무도 당연하다는 듯이 5명의 남학생이 '뭔가 보여드리겠습니다'라는 비장한 각오로 손을 들었다.

"그렇구나. 그럼 너희들 세계 여러 나라의 축구 유니폼에 대해서도 관심이 있니?"

"아 그럼요. 선생님. 저희는 98년도 프랑스 월드컵 국가대표들 옷도 구분할 줄 알고 챔피언스리그 진출한 팀들의 레플리카도 척 보면 다 압니다"

"그럼 이 사진에서 한 번 오류가
 어떤 것이 있는지 찾아볼 수 있겠니?"
 라고 질문하며 사진 하나를 보여주었다.

"선생님, 저 정답을 알아냈습니다. 저 사진에는 네이마르 주니어도 없고 티아고 실바도 없습니다."

"맞습니다. 그리고 골키퍼도 에데르송이 아닙니다. 뭔가 잘못되어도 단단히 잘못되었습니다."

평소 영어 시간에는 쥐 죽은 듯이 있거나 심지어 가끔씩 졸기까지 하던 남자아이들이 FBI 수사관이 된 것 마냥 진지하게 옥에 티를 찾아 발표하기 시작했다. 속으로 그 모습이 너무 재미있고 웃기긴 했지만 별 다른 내색을 하지 않고 질문을 이어갔다.

"아 그것도 맞지만 그것보다 더 결정적이며 치명적인 실수가 하나 있어요. 힌트는 선수들의 유니폼에서 찾을 수가 있습니다"

골똘히 생각하던 남학생 1명이 불현듯 손을 번쩍 들며 발표를 했다.

"아! 선생님! 저 알겠어요. 저 선수들 브라질 선수가 아니라 우크라이나 선수들이에요. 저 선수들 오른쪽 가슴에 붙어있는 국기가 우크라이나 국기거든요."

"네, 맞아요. 사실 이 선수들은 국가대표 선수들은 맞지만 브라질 선수가 아닌 우크라이나 선수들이죠. 이게 왜 문제가 되냐면 3학년 영어 교과서 내용에 이렇게 잘못된 정보가 올라가 있어서 그런 거예요."

"아이고 저런. 3학년 아이들 불쌍해서 어떻게 해요?"

그렇게 6학년 학생들과 대화한 시간은 5분이 채 되지 않았다. 그러나 이 동기유발 자료를 통해 학생들의 집중력이 급격히 상승했고 이를 바탕으로 나머지 시간 수업을 제대로 진행할 수 있었다. 그리고 학생들의 의견을 바탕으로 3학년 교과서에 옥에 티가 있다는 확답을 받아낼 수 있었다. 수업을 마치고 곧바로 카카오톡 방들을 뒤적이며 05학번 형들이 함께 있는 채팅방을 확인하기 시작했다. 형들 중 한 명의 지인이 YBM 교과서 검토위원이라는 소식을 얼핏 들은 적이 있기 때문이었다. 이 사진을 공유한 후 YBM에 정식으로 오류 정정을 요청하고 싶다는 의사를 전달하니 10분 만에 답장이 왔다.

"심각한 오류를 찾아내고 알려줘서 관계자가 정말 고맙대. 편집하시는 분이 축구를 전혀 몰라서 일어난 해프닝이었나 봐."


언제쯤 제대로 된 브라질 선수들의 모습을 보게 될 진 알 수 없다. 하지만 적어도 내년도 3학년 교과서에서는 브라질 대표팀의 모습을 볼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다. 우리 집단 지성을 보여준 5명의 남학생들에게도 감사의 말을 전한다. 내일도 오늘과 같은 초롱초롱한 눈망울을 수업시간에 볼 수 있으면 참 좋으련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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