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하는데 정문 주차장에서 학교보안관님이 나를 부르신다. 1층 운동장 창고 자물쇠를 다른 것으로 바꿔야할 모양이란다. 4자리 비밀번호 자물쇠가 선생님들이 이용하기 쉬워서 그거로 계속 쭉 쓰고 있다 말씀드리니 너털웃음 지으며 이렇게 말씀하신다.
"애들이 0000부터 9999까지 하나씩 다 돌려보고 자물쇠를 땄지 뭡니까. 그 친구 완전 영웅되었어. 비밀번호 알아냈다고"
알고보니 선생님들이 다 퇴근하고 저녁시간에 남아서 놀고 있는 학생들 중 1명이 자물쇠를 일일이 번호를 하나하나 눌러 비밀번호를 알아낸 것이었다. 비밀번호는 삽시간에 서동요처럼 퍼졌고 6학년 학생들 중 대부분은 비밀번호를 알고 있단다. 공을 원하는대로 쓰고 뒷정리를 안하니 학교를 순찰하는 당직기사분은 본인대로 난처한 부분이 있으셨고 말이다.
확률과 통계 수학 문제
학창시절 수학시간에 확률이나 통계 문제 같은걸 풀다보면 공식이 잘 생각나지 않아서 경우의 수를 모두 대입해 본 기억이 있다. 1문제를 풀기 위해 30분쯤 고심한 끝에 정답은 맞추었으나 도무지 효율적이지 못한 것 같아 다시는 하지 않겠다는 다짐을 한 적이 문득 생각이 났다. 이런 경우는 인터넷에도 여러 회자되어 유머의 소재로 종종 등장하곤 하는데 이번 1층 운동장 사건도 비슷한 맥락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체육업무를 담당하는 입장으로써 좀 번거롭긴 했지만 학생들의
부지런함과 창의력에피식 웃음이 났다.
' 그 좋은 머리를 더 유익한 데 쓰지. 쯧쯧쯧. 이 녀석들아'
덕분에 나는 몇 년전 교무실에서 자취를 감추었던 운동장 창고 열쇠 대장을 다시 마련하고 새 자물쇠와 열쇠를 라벨링했다. 그리고 동료 교사 전체에게 번호 자물쇠는 보안상의 이유로 사용하지 않고 다시 수동 자물쇠로 회귀한다는 내용을 사내 메세지로 전달했다. 대한민국의 미래를 책임질 근면성실한 아이들의 수고 덕분이라는 말과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