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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윤표 Jul 16. 2023

그 좋은 머리를

대한민국의 미래는 밝다. 지나치게 똑똑한 너희들이 있기에

퇴근하는데 정문 주차장에서 학교보안관님이 나를 부르신다. 1층 운동장 창고 자물쇠를 다른 것으로 바꿔야할 모양이란다. 4자리 비밀번호 자물쇠가 선생님들이 이용하기 쉬워서 그거로 계속 쭉 쓰고 있다 말씀드리니 너털웃음 지으며 이렇게 말씀하신다.


"애들이 0000부터 9999까지 하나씩 다 돌려보고 자물쇠를 땄지 뭡니까. 그 친구 완전 영웅되었어. 비밀번호 알아냈다고"


알고보니 선생님들이 다 퇴근하고 저녁시간에 남아서 놀고 있는 학생들 중 1명이 자물쇠를 일일이 번호를 하나하나 눌러 비밀번호를 알아낸 것이었다. 비밀번호는 삽시간에 서동요처럼 퍼졌고 6학년 학생들 중 대부분은 비밀번호를 알고 있단다. 공을 원하는대로 쓰고 뒷정리를 안하니 학교를 순찰하는 당직기사분은 본인대로 난처한 부분이 있으셨고 말이다.

확률과 통계 수학 문제

학창시절 수학시간에 확률이나 통계 문제 같은걸 풀다보면 공식이 잘 생각나지 않아서 경우의 수를 모두 대입해 본 기억이 있다. 1문제를 풀기 위해 30분쯤 고심한 끝에 정답은 맞추었으나 도무지 효율적이지 못한 것 같아 다시는 하지 않겠다는 다짐을 한 적이 문득 생각이 났다. 이런 경우는 인터넷에도 여러 회자되어 유머의 소재로 종종 등장하곤 하는데 이번 1층 운동장 사건도 비슷한 맥락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체육업무를 담당하는 입장으로써 좀 번거롭긴 했지만 학생들의

부지런함과 창의력에 피식 웃음이 났다.


' 그 좋은 머리를 더 유익한 데 쓰지. 쯧쯧쯧. 이 녀석들아'


덕분에 나는 몇 년전 교무실에서 자취를 감추었던 운동장 창고 열쇠 대장을 다시 마련하고 새 자물쇠와 열쇠를 라벨링했다. 그리고 동료 교사 전체에게 번호 자물쇠는 보안상의 이유로 사용하지 않고 다시 수동 자물쇠로 회귀한다는 내용을 사내 메세지로 전달했다. 대한민국의 미래를 책임질 근면성실한 아이들의 수고 덕분이라는 말과 함께.

내일부터는 좀 더 안전하고 즐거운 체육시간이 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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