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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윤표 Dec 18. 2023

달리, 끝없는 수수께끼를 보고

거대하고 웅장한 빛의 향연에 압도당하다

학교에서 부장업무를 하게 되면 학기 말 학년, 특수부장님들과 교장, 감 님을 모시고 워크숍을 한 번씩 다녀온다. 보통 날씨가 좋은 날은 교외에 한적한 카페를 방문하기도 하고 맛집에 가서 지역 특산물로 된 정갈한 음식을 맛보기도 한다. 오늘같이 날씨가 영하로 곤두박질치는 날에는 주로 실내에서 시간을 보내게 되는데 오늘은 인근 워커힐 호텔에서 진행하는 전시회를 관람하게 되었다. '달리, 끝없는 수수께끼'라는 이름의 전시로 미루어 짐작건대 스페인의 유명한 화가 살바도르 달리의 작품을 보게 됨을 인지하고 전시장으로 들어갔다.

그림이나 예술에 관해 아는 바도 많지 않고 크게 관심이 없는 나에게는 이런 시간이 이른바 '알쓸신잡'을 소소하게 얻을 수 있는 좋은 기회이다. 살바도르 달리가 세계적인 사탕 브랜드의 포장지를 제조했다는 것부터 시작해서 그의 연대기, 작품 제작 시기의 세계정세, 미디어아트에 대한 도슨트의 설명이 귀에 쏙쏙 들어오는 재미를 느낄 수 있어 좋았다.


전시장 내부가 축구경기장 절반에 이를 정도로 엄청난 스케일을 자랑했다. 전시 내내 넋을 놓고 쳐다볼 수 없게 만드는 총천연색의 빛과 색의 조화는 1시간이라는 시간이 길게 느껴지지 않기에 더할 나위 없이 충분했다. 소위 '그알못'이지만 전시 내내 핑크 플로이드의 배경음악은 오랜만에 아버지를 통해 종종 들었던 7-80년대 메탈에 대한 향수를 불러일으킬 수 있어 좋았다. 한창 학교에서 동요를 부르고 집에 와서 아버지께서 들려주시던 딥 퍼플의 노래를 듣던 때가 문득 스쳐 지나가는 순간이었다.

'대중들이 좋아하는 대중문화를 혐오하지만 난 그것들을 충분히 잘 활용할 줄 안다'라는 살바도르 달리의 말은 수십 년이 지난 지금 우리 사회에서 묘한 경종을 울리는 듯하다. 왜냐하면 시대가 끊임없이 변화하고 미래 먹거리에 대한 탐색, 개발이 여전하지만 그와는 반대로 진로에 대한 막연한 고민거리는 쉽사리 해소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런학교 현장에서 진로 적성검사 또는 졸업앨범제작 시에 필수로 적어 제출했던 '장래희망'이 근 몇 년 새에 자취를 감춘 지 오래다. 꿈을 꾸는 과정 자체가 얼마나 장기적이고 복합적인 단계가 얽히고 설킨 개체인데 어찌 쉽사리 '장래희망'이라는 단어 하나로 정의할 수 있겠는가.

참으로 여러 가지 생각을 잡다하게 많이 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빈지노를 비롯한 많은 뮤지션들이 예술적 영감을 얻기 위해 세계적인 거장들의 작품 세계를 탐구한다고 하던데 그게 무슨 느낌인지 조금은 알 것 같은 느낌이었다. 단단하고 일방적이던 기존의 사고가 조금 말랑해지고 마음껏 사유하고 사색할 수 있는 '여유 같지 않은 여유'를 갖출 수 있어 좋았던 것 같다.


그리고 아이러니하지만 가 저들처럼 천재가 아닌 걸 감사하게 된 순간이었다. 난 내 스스로 저런 강박과 사상을 감내할 자신이 없고 그럴 만한 위인도 아니기 때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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