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부터 3년째 학교스포츠클럽 '플라잉디스크 얼티미트'를 지도하고 있습니다. 지난 2년간은 남학생들을 중점적으로 지도하여 2년 연속 서울시 대표에 선발되었습니다. 늘 남학생들의 독무대에서 들러리 역할을 했던 여학생들의 모습이 못내 아쉬웠습니다. 그리하여 올해 6학년 여학생을 집중적으로 지도하였습니다.
4월부터 '목표는 1승'을 주장하며 매일 아침 더위와 비, 바람과 싸우며 5개월간 차근차근 대회를 준비하다 보니 '어... 올해 해볼 만하겠는데?'라는 생각을 남몰래 가슴속에 품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와신상담하며 맞이한 플라잉디스크 예선전. 작년 대회 3패 탈락의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학생들은 기세 좋게 상대를 몰아붙였습니다.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상대를 더욱 거세게 몰아붙여 5,6점 차의 대승을 거두는 등의 모습을 보이며 2승 1 무 조 2위로 결선 토너먼트에 진출하였습니다. 지도자로서 노력한 것에 대한 발전된 모습을 볼 때 가장 뿌듯하고 학생들이 대견스러운데 그것이 실제로 일어났던 것이죠
그렇게 맞이한 본선 토너먼트 총 4팀이 참여했고 결과적으로 2승을 하는 팀이 우승과 동시에 11월에 있을 전국대회에 서울시 대표로 참여할 수 있습니다. 못 해 볼 것이 없는 전력이라 속으로 칼을 갈고 상대팀의 워밍업 모습을 면밀히 살피며 예의 주시해야 할 키플레이어가 없는지 살폈습니다. 그리고 상대방이 선 굵은 롱 볼을 구사하는지, 이른바 티키타카라 불리는 숏패스 위주의 플레이인지 살펴보았죠. 그렇게 내린 결론은 '게겐 프레싱'이라 불리는 전방 압박과 빠른 공수 전환이 해답이라 내리고 학생들에게 작전을 지시했습니다. 그렇게 시작된 본선 1경기, 우리 팀은 연장 접전 끝에 5:4로 신승을 거두며 결승에 진출했습니다. 아쉬움과 분한 마음에 눈물을 쏟는 상대편 여학생들의 모습을 뒤로한 채 말이죠.
그렇게 1시간여를 기다리며 다른 경기를 살펴보니 2년 전에 참여했을 때보다 전반적으로 대회 수준이 상향 평준화 되었음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단순히 프리즈비를 주고받는 것이 아닌 포지션 별 역할, 백핸드와 포핸드 강약조절 등 세부적인 기술과 전략이 상당히 업그레이드되어있었기 때문이죠. 잠시 넋 놓고 있을 찰나, 여학생 1명이 저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선생님, 결승 경기 작전 지시해 주세요. 저 이제 진짜 전국대회 나가고 싶어요."
정신이 번뜩 드는 한 마디에 이내 마음을 고쳐 잡고 상대편에 대한 분석을 곁들여 학생들에게 전략을 알려주었습니다. 상대방의 전술은 하프라인을 기준으로 자기 진영에서 숏패스로 라인을 올리다가 어느 정도 상대 진영까지 올라왔다 싶으면 롱패스로 득점하는 패턴이었습니다. 그래서 우리 팀은 전, 후 라인 2가지로 벽을 세워 전진 라인에서 숏패스를 끊고 만약 뚫린다면 후방 라인에서 공격을 끊는 '이중방어선' 전략을 구사하기로 했습니다.
상대는 슬램덩크로 치면 '산왕공전' 같은 팀이었습니다. 2019년 전국대회 우승을 비롯해 4년 연속 서울시 대표를 노리는 전통의 강호였죠. 경기가 시작되니 분위기가 상대팀의 흐름에 이끌려 다니는 기분이었습니다. 예상된 공격 루트였지만 기세에 눌려 쉽게 실점하고 말았죠. 그리하여 전반을 1대 3으로 리드당한 채 마치게 됩니다.
그리하여 저는 선수교체를 통해 키가 큰 수비수를 투입하고 발이 재빠른 최전방 공격수를 교체 투입했습니다. 그 시점이 2대 4로 끌려다니고 있었고 남은 시간은 채 5분이 안 남았을 때였죠. 내색은 안 했지만 제 마음속에서도 계속 이런 생각이 새어 나오는 걸 참으며 열심히 전술을 지시했습니다.
'여기까지 인가 보다'
그런데 교체로 들어간 선수 2명이 어마어마한 대형 사고를 칩니다. 출전에 엄청 목이 말라 있었는지 상대편의 높은 볼을 보란 듯이 다 쳐내고 빠른 역습 전개를 통해 3분 만에 3골을 합작한 것입니다. 기세가 완전히 넘어갔고 다급한 상대는 급하게 롱패스를 던져보았지만 체력이 넘치는 교체 선수들의 신들린 플레이로 무산되었습니다. 그렇게 종료 휘슬이 울리고 선수들은 미친듯한 함성을 지르며 그라운드로 뛰쳐나왔고 저도 무슨 말을 했는지 기억이 안 날 정도로 승리를 만끽하였습니다.
디펜딩챔피언을 기적같이 꺾어낸 선수들은 대성통곡을 하며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우승의 순간을 만끽했고 저는 그런 아이들을 다독이며 마음속으로 뜨거운 눈물을 흘렸습니다.
'할 수 있다 할 수 있다 했더니 정말 해냈네'
그렇게 5개월간의 대장정의 마침표를 찍고 작년 3패로 상대편 스탯 쌓아주던 팀에서 2024년 여자 플라잉디스크 종목에서 당당히 서울시 대표로 11월에 있을 전국대회에 출전 자격을 획득할 수 있었습니다. 이번 결선은 관전하진 교육청 관계자분들도 역대급 명승부였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을 정도였습니다. 무엇보다 그 과정 속에 우리 아이들이 있었고 학생들이 스스로 어려움을 이겨내고 값진 우승을 일궈냈다는 것에 대해 진심으로 경의를 표합니다.
실은 학교스포츠클럽 결과는 교사인 저의 승진이나 개인 포트폴리오를 구성하는 데 전혀 관련이 없습니다. 엄밀히 말하면 소위 말하는 '추억 만들기'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는 데 지나지 않습니다. 하지만 전 오늘 같은 경험과 추억이 저를 더 성장하고 발전하게 하는 밑거름이라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전 보람을 먹고살기로 했으니 말이죠.
11월에 있을 전국대회도 부지런히 잘 준비해서 아이들과 둘도 없을 재미있는 추억 쌓고 오려합니다. 파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