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학년 여학생들을 가르치다 보면 남자 선생님의 입장에서 자칫 놓칠 수 있는 미묘한 감정들이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여학생들의 이해할 수 없는 신경전, 특히 직접적으로 드러나지 않는 비언어적, 반언어적 제스처,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 여학생들의 우정 관계도 등이 바로 그것인데요. 게다가 여학생들 대부분이 제가 아침마다 지도하는 스포츠클럽 학생선수들이라 효과적인 해결방안이 급선무였습니다. 왜냐하면 전국대회가 3주 남은 시점이었기 때문이죠. 그리하여 즉각적이면서 효율적인 방법이 없을까 하고 고민하던 찰나, 1층 엘리베이터에 붙은 벽보 하나가 눈에 띄었습니다. 교육청에서 숏폼 챌린지 공모전 작품을 모집하는 데 주제가 '우정, 함께' 같은 것이었습니다. 옳거니. 바로 이거다.
안 그래도 그날 아침 5~6명의 선수들이 저에게 여러 가지를 하소연했었습니다. 주장이 나를 보고도 더 친한 친구에게만 패스를 한다, 지난주까지 분명 친했는데 왜 나를 소외시키는지 모르겠다, 실력이 줄어들어서 눈치가 보인다 등의 구구절절한 사연들을 말이죠. 그래서 아이들을 방과 후에 교실에 남아있게 한 뒤 이 챌린지를 통해서 서로의 관계를 회복하고 다시 친해질 수 있도록 해보자고 힘을 불어넣었습니다. 덕분에 아이들은 저의 마음을 이해해 주었고 함께 콘티도 짜고 대본, 안무를 만들면서 즐거워했습니다. 30초 안에 많은 것을 담으려니 머리가 다소 아프더군요. 하지만 아이들은 숏폼의 도사답게 물밀듯 아이디어를 쏟아내주었고 노래 가사도 본인들이 직접 창작하는 열정을 보였습니다.
그렇게 진행된 촬영, 아이들의 얼굴에서는 웃음이 떠나갈 줄 몰랐습니다. 운동장에서도, 야외 놀이터에서도 촬영은 순조롭게 진행되었습니다. 키 차이가 많이 나면 무릎을 굽혀주고, 체격 차이가 많이 난다 싶으면 촬영 거리를 조정해 주는 등 배려하는 모습도 서슴지 않았죠. 30초 안에 가장 트렌디함을 반영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일까 고민하다가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삐끼삐끼' 춤을 적용해 보는 건 어떨까 제안하였습니다. 보통 여학생들 같으면 손사래를 칠 제안이지만 아이들은 적극적으로 찬성해 주었습니다. 언제 서로 싸웠냐는 듯 안무에 대한 디테일함까지 서로 코치해 가며 촬영에 임한 아이들의 모습이 대단히 인상적이었습니다.
그렇게 기한 내에 관련 서식 등을 종합하여 촬영본을 교육청에 제출하였습니다. 1주일 뒤 발표가 났는데 고맙게도 우리 학생들의 이름이 수상자 명단에 존재했습니다. 비록 1,2위에게 제공되는 간식차 방문은 손에 얻지 못했지만 3등 선물인 간식 상자를 받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선물도 선물이지만 이번 챌린지 영상을 제작하면서 아이들의 관계가 회복되었다는 것에 누구보다 기뻤습니다. 교사로서의 임무를 다함은 물론 아이들의 끼와 재능을 발산할 수 있는 장을 마련해 줄 수 있어 더욱 뜻깊었습니다. 간식 상자가 오면 맛있게 나누어 먹고 남은 6학년 생활을 무탈하게 보낼 수 있도록 응원할 생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