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에 마라톤을 종종 뛰었습니다. 뛰다 보니 욕심이 생기더군요. 그래서 생애 첫 마라톤 풀코스 대회를 덥석 신청했습니다. 그 이후로도 주말 아침, 평일 출근 전 시간을 되도록이면 아이들이 아직 자고 있을 시간을 활용해서 달리기를 하러 갔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주말 아침, 달리기를 마치고 오전 8시쯤 집에 들어왔더니 딸이 대뜸 이런 말을 건넸습니다. "아빠가 달리기 하다가 다치면 어떡하지?" 전 웃으면서 "아니야. 아빠 달리기 하면서 다치지 않아."라고 대수롭지 않게 여겼습니다. 그때까지도 그게 무슨 의미인지 잘 몰랐습니다.
'아침에 눈을 떴을 때 아빠가 집에 있어 달라는 이야기라는 것을 말입니다.'
마라톤 대회를 대략 8년 만에 참가하는 데다가 풀코스는 처음인지라 나름 만반의 준비를 하고 갔습니다. 하프, 10km 러너들 사이에서 조용히 출발신호만을 기다리며 대회장 이곳저곳을 둘러보았습니다. 그런데 마음 한편이 좀처럼 편하지 않았습니다. 그 전날까지도 아이들에게 잔소리를 심하게 했고 긴장했다는 이유로 와이프에게도 시시콜콜한 이야기마다 툴툴거리기 일쑤였죠. 한 마디로 '못난 아빠'의 표본이 아니었나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주말 내내 가족들이랑 함께 시간을 보냈지만 오히려 그들을 불편하게 한 것은 내가 아니었을까라는 생각이 가득했습니다.
얼른 마라톤 대회를 마무리하고 집에 가서 나머지 휴일을 반성하는 마음으로 좀 더 편안한 아빠가 되어줘야지라고 마음을 먹었습니다. 그렇게 10km 지점을 지나고 하프 코스 주자들은 반환점을 돌았고 이제부터는 그야말로 진짜들의 고요한 레이스가 시작되었습니다. 방금까지 가득했던 '파이팅'소리는 온데간데없고 정말 화창한 날씨와 고요함만이 가득했죠. 그런데 생각보다 꽤 뛰었다고 생각했는데 아직도 21km 반환점이 나오지 않는 것입니다. 그때부터 많은 생각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아... 5시간 안에 들어야 기록증을 받을 수 있는데...'
'아... 얼른 마무리 짓고 집으로 돌아가야 하는데 큰일이네...'
그렇게 21km 반환점을 돌고 시계를 슬쩍 살펴보니 2시간 30분이 지나있는 것입니다. 평소에 21km를 2시간 이상을 오버해 본 적이 없었기에 그때부터 마음이 급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코스가 평지 하나 없는 오르막, 내리막길의 연속이라고 해도 평소 뛰던 코스도 늘 평지만은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페이스를 조금 당겨서 얼른 30km 고지가 다다르기를 기대하며 달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32km 지점에 다다르자 평소보다 다리가 완전히 잠겨서 뜀박질을 할 수가 없는 상태에 이르렀습니다. 한마디로 무리가 온 것이죠.
그렇게 결승전까지 달리는 내내 가족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한가득이었습니다. 건강 관리를 핑계로 아침에 아이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주지 않은 것. 컨디션 관리한다고 아이들이 밤에 늦게까지 잠들지 않을 때 늦게까지 잠 안 잔다고 핀잔을 준 것. 잘못된 점이 있으면 잘 타이르지 않고 윽박지르기부터 한 것. 내 생각이 맞다고 가족들의 말을 듣지 않고 고집부린 것 등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습니다. 그렇게 걷고 뛰기를 반복하며 멋없기 짝이 없던 '아빠'로서의 모습을 회상하니 저 멀리 관광버스 6대를 가득 채운 낙오자의 모습이 스쳐 지나갔습니다.
'이제부터라도 달라지자. 이젠 정말 가족들에게 잘해야지.'
그렇게 포기하지 않고 천근만근 된 다리를 부여잡고 결승선에 도달했습니다. 5시간이 훌쩍 넘어 들어왔으니 당연히 기록증은 없었고 다행히도 완주를 기념하는 메달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저는 그렇게 메달을 받고 집으로 얼른 들어와 남은 시간 아이들과 놀이터에 가서 놀아주고 저녁식사도 함께 하며 아이들을 씻기고 옷을 갈아입혀주었습니다. 그리고 와이프에게 연신 미안하다는 말을 하며 그동안 바보 같았던 행동들에 대해 용서를 구했습니다. 시간이 좀 걸리긴 하겠지만 저는 오늘부터 더 좋은 아빠로 거듭나기 위해 계속 노력할 생각입니다.
두 자식 상팔자의 이야기는 앞으로도 계속됩니다. 쭈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