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누구나 그런 사람이 되지 말자. 누구처럼.
최근에 성해나 작가의『혼모노』를 읽었는데 그중에 '메탈'이라는 소설이 불현듯 떠올랐다. 그 소설은 '최악은 아니라고 보지만 그렇다고 해서 더 나아질 것도 없는 동네'에서의 일화를 다룬 소설이었다. 온화 역시 마찬가지였다. 아니 이름과는 다르게 더 악화되는 일이 없기를 바라야 할 것만 같은 처지였다. 우울증 약을 복용하던 아버지는 홀연 아파트 옥상에서 뛰어내려 세상을 등졌고, 그나마도 보금자리라고 마련한 아파트는 지하 터널 공사로 인해 당장이라도 부서질 위험에 처했다. 이름과는 전혀 다른 삶을 살고 있는 온화에게 더 이상의 온화함을 기대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다행히 빛은 있었고 온화는 포기하지 않았다.
아빠의 삶에 대해 궁금해하지 않았던 일상에서 뒤늦게나마 온화는 아빠가 왜 그렇게 갑자기 세상을 떠났는지, 정말 아빠가 덩그러니 문자 하나 보내 놓고 하고 싶은 말씀이 무엇이었는지 궁금해졌다. 그 과정에서 친하게 지내던 우림 언니와의 UCC 촬영, 별거 없는 학교 생활 속에 문득 찾아 들어온 서건우, 그리고 단짝 김한별과 꼬맹이 다슬이까지. 주변 사람들과의 에피소드를 통해 온화는 결국 아빠와 대척점에 서있었던 엄마와 속사정을 털어놓으며 아빠가 그렇게 될 수밖에 없었는지 알게 된다.
'진즉에 모두가 다 털어놓을 수 있었으면 이렇게 되지 않았을 수도...'
온화 아빠가 직장에서 이른바 '갑질'을 통해 따돌림을 당한 이후로 우울증을 심하게 앓아왔다는 것을 통해 작가는 우리 사회에서 약자들이 받는 부당함에 대한 올바른 처사가 반드시 필요함을 우림 언니를 바탕으로 넌지시 제시하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내가 지금 이 순간엔 약자이지만 또 내일은 누군가의 강자인 세상에서 '우리는 누구나 그런 사람이다'라는 메시지는 불의에 항거하면서도 한편으로 씁쓸하게 수긍하기도 하는 나 스스로를 돌아보게 하는 멘트이다. 그러나 현실은 그리 녹록지 않기 때문에 우리는 밤에도 가로등 불빛을 목놓아 부르짖는 매미처럼 살고 있지 않은가. 더 나아질 것도 없지만 최악으로 치닫지 않기 위해서. 지긋지긋한 돈 때문에, 효도 비슷한 거라도 해야 할까 봐서.
그래도 온화는 한별이, 우림 언니 그리고 건우와의 학교 생활을 통해서 막연하기만 했던 어두운 터널 같은 일상을 한 걸음씩 나아간다. 늘 내 안부를 귀찮을 정도로 물어봐주는 한별이에게도, 어느 날 불현듯 찾아와 자기 할아버지 이야기를 커밍아웃하며 끓는 물에 얼음이 녹듯 스르르 온화의 마음에 들어온 건우의 등장은 성장기 소년 소녀들의 순수함을 차분히 어루만져준다. 그 속에서의 위트와 풋풋함이 없었더라면 자칫 이 소설이 너무 어둡고 창백한 가족사로 가득했을 것 같았다. 작가는 현장에 직접 있는 듯한 특유의 표현과 재치로 글의 몰입도를 높이고 심연으로 깊숙이 빨려 들어갈 것 같은 독자들에게 잔잔한 마음의 쉼터를 선사한다.
결국 엄마와 아버지의 사건이 있던 날 각자의 위치에서 느끼고 행동했던 것들을 나눈 온화는 그렇게 될 수밖에 없었던 현실과 그렇지 않았으리라는 후회 속에서 현실을 택하기로 했다. 우림 언니의 할머니 '보라 할머니'의 인터뷰는 그런 온화를 향해, 그리고 세상의 수많은 온화 가족과 같은 사람들을 향해 잔잔하지만 단단한 메시지를 남긴다. 마치 무엇 때문에 내가 고민하고 있는지를 훤히 넘겨다보는 듯이.
1. 걱정은 마음을 어지럽히지만 행동은 상황을 바꿉니다
2. 사람이든 동물이든 자연이든, 주변에 친절을 베푸세요 (중략) 나 자신과 다정한 친구가 되세요.
3. 고민이 있으면 털어놓고, 불이 났으면 '불이야!' 외치세요.
누구든 말 못 할 상황에 처해 있지만 너무 많은 것을 생각해 행동으로 옮기지 못하고 끙끙 앓을 때가 있다. 그것은 나 자신과 다정한 친구가 되지 못하는 지름길이라 생각한다. 고기는 씹어야 맛이고, 말은 해야 맛이라는 속담처럼 세상의 '착함'이란 틀에 갇혀 속앓이하는 많은 사람들이 변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온화의 마음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리하여 온화가 끝이 보이지 않을 것만 같던 긴 감정의 터널을 지나 엄마를 비롯한 주변 사람들과 함께 좀 더 따뜻한 내일을 맞이했으면 한다. 끝으로 건우의 플러팅 실력은 개인적으로 탐난다. 나는 왜 저 나이 때 저러지 못했을까. 타고난 천성인가 싶다. 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