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ologue] 실은 아빠가 되는 게 두려웠어요

좋은 아빠가 꿈이었지만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서요

by 홍윤표

2019년 10월, 근 5년간의 연애를 끝으로 우리는 부부가 되었다. 흔히 말하는 '준비가 다 된' 신랑감이 아니었기에 결혼 전 몇 번의 이별과 재회를 반복했다. 결국 와이프는 다른 조건 모두 포기하고 '나'라는 사람을 믿어보기로 했고 그렇게 우리는 결혼에 골인했다. 그래서 속으로 다짐했다. 평생 아내의 선택을 존중하고 신의를 지키겠노라고. 신혼살림은 연애보다 훨씬 안정적이고 재미있었다. 부부교사이다 보니 생활패턴이 한결같아 늘 저녁이 있는 삶을 마주했고 무엇보다 막차 끊길 걱정 하나 하지 않아도 되었다. 그렇게 우리는 2020년 2월, 각자의 학년말 아이들과의 추억을 정리하며 새로운 학기를 위한 재충전을 만끽하던 중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우리에게 어마어마한 선물이 도착했다. 와이프가 임신을 한 것이다.

신혼의 재미는 요리에서부터

신혼생활 100일 만에 찾아온 축복 같은 소식 한 켠으로 아빠가 된다는 걱정과 부담감이 동시에 찾아왔다. 늘 좋은 아빠가 되는 것이 꿈이었지만 어떻게 해야 할지 전혀 몰랐으니 말이다. 무엇보다 코로나 기간이라 혹시라도 아이가 잘못되면 어떡하지 걱정하는 마음이 앞섰다. 산부인과를 다녀온 와이프가 건넨 태아의 사진을 봐도 도무지 내가 아빠가 된다는 것이 실감이 나지 않았다. 아직 남편으로써 소임을 제대로 다하고 있는지도 모르겠고 변변한 재산이 있거나 사회적 커리어가 월등한 것도 아닌 소시민에 불과한데 내가 과연 자식을 잘 길러낼수 있을까라는 두려움이 몰려왔다. 임신 소식을 접한 지 1주일 정도가 지나자 서서히 현실에 대한 자각이 뚜렷해지기 시작했고 단 하나의 결심으로 모든 자질구레한 생각을 정리했다.

'그래, 여보가 하자는 대로 무엇이든 하자. 그럼 결국엔 모든 것이 잘 될테니.'

그렇게 우린 팔자에도 없던 출산에 대한 준비를 차근차근 준비하기 시작한다. 코엑스에서 열리는 베이비페어도 다녀오고, 주민센터와 지역사회에서 얻을 수 있는 임신 및 출산 정보 등을 하나하나 모으기 시작했다. 전에 타던 경차도 처분해서 좀 더 큰 차로 바꾸고 주변 친구들로부터 육아 용품들을 나눔 받았다. 여름휴가 시즌에는 많이들 간다는 해외 태교 여행을 가려했으나 코로나로 하늘 길이 막혀 제주도로 다녀왔다. 육아 4년 차, 두 아이의 아빠인 지금 시점으로 보았을 때, 다소 유난을 부린 것은 맞다. 하지만 돌이켜 생각해 보면 그때에만 할 수 있는 것들이고, 그때에 꼭 해야만 할 것들을 잘했다는 생각이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출산 예정일 d-7일, 한참 원격수업이 한창이던 시절, 우리 반 학생들이 Zoom 수업 마지막에 응원 메시지를 보내줬다.


"선생님 아기 잘 낳으세요"

"고맙다 얘들아. 하지만 아기는 선생님이 낳는 게 아니에요. 대신 잘 키워볼게."


때마침 그 시기에 우리는 살고 있던 집에서 좀 더 큰 빌라로 이사하게 되었다. 방 3개에 화장실 2개가 있고 아랫집이 정육식당이라 층간소음을 전혀 신경 쓰지 않아도 되는 곳이었다. 거실 한쪽은 흔히 말하는 '국민육아 아이템'으로 아들을 맞이할 준비를 했다. 그리고 며칠 뒤, 파스타가 먹고 싶다는 와이프와 함께 맛있는 저녁 식사를 하고 이른 잠자리에 들었다.


그리고 그날 새벽.


와이프의 진통이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