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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느리게 걷기 Aug 25. 2020

무서운 이야기

나에게 아이란 무엇인지 말할 수 없습니다

 아주 어릴 때 텔레비전에서 무서운 이야기를 봤다. 부잣집 아가씨가 시집을 가는 날이다. 아가씨는 가마를 타고 친정에서 자기를 키워 준 몸종과 함께 신랑집으로 향했다.  신부 어머니는 어쩐 일인지 가마에서 내리지 말고 곧장 신랑집으로 가라고 당부를 했다. 그러나 신부는 가는 길에 너무나 오줌이 마려워 산 중턱에서 내려 볼일을 보고 나왔다.

 

 그런데 신랑집에서는 밤마다 닭이 한 마리씩 사라지는 것이다. 사람들은 밤마다 산에서 여우가 내려오는 것 같다고 했다. 몸종은 아가씨가 어딘가 이상하다는 것을 알았다. 아씨 옷에서는 털 같은 게 묻어났다. 그리고 뒷간에 갔다가 새벽에 마주친 아씨 손에는 피가 묻어 있었다.

 

  몸종은 짚이는 게 있었다. 몸종은 아가씨가 시집올 때 넘어오던 그 산으로 올라갔다. 그리고 아가씨가 가마에서 내렸던 곳을 정신없이 찾았다. 여기쯤이었다고 생각한 으슥한 산속에는 아가씨가 색동저고리를 입은 채 죽어 있었다. 몸종이 놀라서 소리를 지르려고 할 때 아가씨로 변신한 구미호가 뒤에서 스윽 나타났다.

 

 무섭고 끔찍한 이야기였다. 그 드라마를 본 후로 한 동안 밤에 화장실도 가지 못했다.


아이는 8살이 되었지만 유난히 겁이 많았다. 아이는 외계인을 무서워했다. 아이는 외계인이 먼 우주에서 자기를 보고 있다고 그래서 자기를 찾아올 거라는 말을 자주 했다.


 오후부터 눈이 어마어마하게 쏟아졌다. 회사에 있던 나는 불안감에 마음이 바빠졌다. 아이는 오늘도 외계인을 무서워하고 있을 것이다. 빨리 집으로 가야 했다.  


 아파트는 정문과 후문에 각각 경비실이 있었다. 우리 집은 1층이었다. 우리 집은 후문 경비실을 마주하고 있었다. 거실 블라인드를 다 걷으면  환하게 안이 들여다 보였다. 경비실과 가까웠기 때문에 아저씨가 무얼 하고 있는지도 다 보였다. 나는 그게 싫어서 늘 블라인드를 쳐 놨다. 하지만 아이는 혼자 있을 때 블라인드를 다 걷었다.  


  차량 차단기가 올라가고 나는 경비실 앞에 서 있는 아이를 발견했다.  아이는 언제나처럼 초록색 점퍼를 입고 가방을 얌전히 메고 있었다. 얼굴에는 살짝 턴 자국이 있었는데 빨갛게 얼어 있었다.  아이는 눈을 털 생각을 하지 못했다. 아이의 머리와 어깨에는 너무나 많은 눈이 쌓여 있어서 아이는 눈사람처럼 보였다. 나는 눈물이 나올 것 같았다.


  나는 쉽게 그 날의 풍경을 잊지 못했다. 그리고  그런 상상을 한다. 아주 어릴 때 봤던 그 무서운 이야기처럼 그 아파트 단지를 찾아 가면 경비실 앞에 작은 꼬마가 서 있는 건 아닐까 하고.


나는 아이를 그곳에 두고 온 것은 아닐까? 나는 아직도 두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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