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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느리게 걷기 Aug 26. 2020

사랑받는다는 것

나는 아직도 위로가 필요하다

  외할머니는 방학이 되면 나와 동생을 데리러 왔다. 우리는 할머니를 따라갔다. 외갓집까지는 꽤 먼길이다. 시외버스터미널까지 가서 버스를 타고 30분쯤 가서 내린다. 그리고 거기서부터 다리를 2개나 건너고 꼬불꼬불한 시골길을 한 시간쯤 걸어야 겨우 외갓집에 도착할 수 있었다. 외할머니는 마르고 걸음이 빨랐다. 나와 동생은 외할머니를 따라서 그 길을 걸어갔다.


  외할머니가 우리를 데리러 올 때마다 우리는 귀한 사람이 된 것 같았다. 그렇게 간절하게 우리를 데려가고 싶어 하는 사람은 없었으니까. 그때마다 우리는 할머니가 우리를 사랑한다고 생각했다.

 

 나는 멀미가 심했다. 버스를 타고 가다가 버스가 한 번씩 쿨렁거리면 이내 내 속은 출렁거리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배꼽 있는데서 신물이 조금씩 올라오다가 나는 몸에 힘이 쭉 빠져서 눕듯이 좌석에 기대앉아 있었다. 버스에서 토하는 건 정말 부끄러운 일이다. 그래서 버스에서 토하기 전에 내릴 수 있게 되면 나는 다행이라고 안도했다. 그리고도 한참을 가야 한다. 작은 냇가를 지나고 엉성한 다리를 지나고 제법 그럴듯한 다리를 건너 그렇게 한참을 걸어야 외갓집에 도착했다.

 

  우리가 외갓집에 갈 때면 서울에 사는 준수도 외갓집으로 왔다. 준수에게는 외갓집이 아니라 할머니 집이었다. 준수는 우리를 좋아했다. 우리가 없으면 시골에 오지 않겠다고 떼를 부리기도 했다. 준수는 얼굴이 하얗고 멀끔하게 생겼다.  그리고 서울 말씨를 사용했는데 끝을 올려서 하는 말이 어찌나 경쾌하고 듣기 좋은지 나는 매번 열등감을 느꼈다. 그러면서도 나는 그런 준수가 우리를 좋아한다는 생각에 으쓱했다.


 나는 마을 우물가 근처에서 삶은 옥수수를 먹고 있었다. 동네 아이들 몇이 있었다. 내 또래 남자아이가 다가오더니 옥수수를 달라고 했다. 나는 당연히 싫다고 했다. 그런데 그 아이는 갑자기 내 뺨을 때렸다. 나는  예상하지 못했다. 처음 본 아이가 옥수수를 주지 않는다고 그렇게 세게 뺨을 칠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눈물이 나왔다. 이 심술궂은 녀석은 내 얼굴을 보며 놀리기 시작했다. 옥수수를 배 터지게 먹고 죽으라고 했다.


  나를 도와줄 어른이 필요했다. 나에게는 외할머니가 있었다.

  

  며칠 전 준수하고 동네 아이가 싸운 일이 있었다. 이 동네 아이들은 일상이 무료해서인지 싸우는 걸 좋아했다. 할머니는 언덕에서 쏜살같이 뛰어내려왔다. 그리고 소리를 벼락같이 지르면서 그 녀석을 혼냈다. 아마 그 녀석은 다시는 준수 옆에 얼씬도 못할 것이다.


 이번에도 할머니가 쫓아간다면 나의 뺨을 때린 녀석을 눈물 콧물 쏙 빼놓게 해 줄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집으로 달음질쳐 갔다. 준수도 옆에서 같이 달렸다.


 할머니는 마당에 있는 수돗가에서 그릇을 씻고 있었다. 나의 얼굴은 온통 눈물범벅이었다. 나는 할머니에게 내가 얼마나 억울한 일을 당했는지 설명했다. 그리고 그 녀석들이 도망가기 전에 빨리 가야 한다고 다급하게 말했다.  할머니는 얼굴을 들었다. 주름이 많은 할머니 얼굴은 찡그릴대로 찡그려서 더 주름이 많아 보였다.

 "가시나가 얼마나 설치고 돌아다니면 동네에서 사내아이들한테 얻어 맞고 다니나 "

할머니는 그 녀석들을 쫓아갈 생각이 없었다. 할머니는 오히려 나에게 화가 난 사람처럼 보였다. 나는 울음을 멈췄다.

 

  나는 할머니가 그 꼬불꼬불한 길을 오래오래 걸어 우리를 데리러 오던 길을 가끔 생각해 본다. 그 길은 덥고 길고 지루했을 것이다.


 할머니는 우리를 사랑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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