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에게 금요일이란 맥이 탁 풀리는 시간이다. 하루 종일 시달렸다. 나를 찾는 메일과 지겹도록 걸려오는 전화를 받고 있노라면 숨이 턱 하고 막힐 것 같은 순간들이 있다. 그 순간들을 무수히 넘기고 드디어 퇴근 준비를 했다. 차에 오르고 나서 라디오 주파수를 맞출 힘도 없을 만큼 녹초가 되어 버렸다. 회사에 있을 때 나는 가끔 커다란 책장이 넘어지는 상상을 하곤 했다. 크고 무거운 책들이 가득 꽂혀 있는 책장 말이다. 그게 별안간 기우뚱하다가 내 쪽으로 넘어지는데 나는 얼이 빠져서 그 모양을 보고만 있는 것이다. 그러다가 이내 그 아래로 깔려 버릴 것이다. 그런 말도 안 되는 상상을 한다. 가끔은 더 끔찍한 상상도 한다. 뒤에 있는 차에 쿵 처박혀서 일주일쯤 어디 병원에 가만히 누워 있는 상상 같은 것 말이다.
물 먹은 솜처럼 무거워진 몸을 끌고 집으로 들어갔다. 남편은 양면 후라이팬에 삼겹살을 굽기 시작했다. 그리고 소주와 맥주를 섞어서 소맥을 만들었다. 남편은 돼지껍데기를 좋아한다. 오래 구워서 쫀득해진 돼지껍데기를 씹는 식감이 그렇게 좋다는 것이다. 못 먹는 맥주를 한 잔 얻어 마시고 삼겹살을 상추와 깻잎에 올려서 먹고 있으니 피로가 씻겨 내려가는 것 같았다. 집이란 참 좋은 것이라는 생각을 새삼 했다. 무거운 몸을 끌고 현관에 신발을 벗고 올라오는 순간 나는 비로소 자유의 몸이 되는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술에 얼큰해진 남편은 방에 있는 아들을 나오게 했다. 아들에게 금요일 밤을 장식할 연주를 부탁하기 위해서였다. 아들은 매일 방에 처박혀서 기타 연습을 하더니 어느새 수준급 실력이 되었다. 아들은 밖으로 나와서 튜닝을 시작했다. 아들은 자신만만한 성격이 아니다. 다른 사람들 앞에 섰을 때 그 사람이 자신감을 가지고 있는가 하는 것은 표정과 눈과 어깨와 동작에서 모두 묻어나는 법이다. 어릴 때부터 많이 상처 받고 주눅 들어 있는 아들에게는 그런 자신감이 없다. 어딘가 모르게 주변의 눈치를 살피고 수줍어하는 아들의 얼굴을 보고 있으면 아들이 조금 뻔뻔했으면 하는 생각을 나도 모르게 하게 된다.
그러나 아들은 이내 연주를 시작하고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김동률의 출발이었다. 아들은 자기가 이 노래를 알게 된 것은 초등학교 때였는데 엄마가 뮤직비디오를 틀어놓은 것을 보고 이 노래를 처음 알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했다. 내가 좋아하는 노래를 아들이 기타를 연주하며 불러주고 있다는 것이 나른한 행복감을 안겨 주었다. 나는 쇼파에 널브러져 아들의 노래를 감상하고 남편은 거실에 있는 기다란 테이블에 앉아서 노래를 듣고 있었다.
눈물이 날 것 같은 순간이 있다. 행복해서 감사해서 아니면 너무 슬퍼서. 이유도 다양한 눈물 날 것 같은 그 무수한 순간들, 이번에는 행복해서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이런 평화롭고 따뜻한 순간이 올 거라고 차마 기대할 수도 없었던 무수한 순간들이 스쳐 지나갔다. 꿈같은 순간이었다.
그러나 꿈같은 순간의 평화는 얼마나 살얼음처럼 깨지기 쉬운 것인가. 갑자기 아들은 새로운 화제를 꺼냈다. 남편이 알아보고 있는 입시 정보에 대한 불만이 그것이었다. 남편은 아들의 입시 정보를 찾기 위해서 며칠 밤을 꼬박 새다시피 하며 대학 전형을 찾고 엑셀로 그 자료들을 정리했다. 요즘 입시는 얼마나 복잡하고 어려운지 전문 컨설팅 업체와 상담을 하지 않고는 원하는 정보를 시원하게 얻기가 어려웠다. 성적이 좋지 않은 아들이 고민을 하는 걸 알고 있는 남편은 대학교 홈페이지마다 들어가서 정보를 찾고 엑셀로 그 자료들을 정리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자료를 근거로 해서 아들에게 조금이라도 목표를 가지고 입시를 준비할 수 있도록 도와주려 하고 있었다.
아들이 불만스러운 것은 몇 달 전에 아빠가 제시한 정보와 최근 정보가 조금씩 달라진다는 것이었다. 그건 어쩌면 당연한 것이었다. 시간이 가면서 남편이 알게 된 정보는 더욱 구체적으로 바뀌었고 더 자세한 내용을 알게 되었으니 조금 더 확신에 차 있기도 했다. 아들은 아빠의 단정적인 말투와 뉘앙스가 싫다고 했다. 거기서부터 끝이 나지 않는 논쟁이 시작되었다. 아빠가 수고를 했으니 자신이 다 이해해야 하는 거냐고 아들은 따지고 들었다. 아들과 이런 논쟁은 자주 일어나는 일이었다. 그러나 자주 일어나는 일이지만 언제나 힘들고 진이 빠져 버리는 일이었다.
아주 사소한 말과 상대방의 태도와 단어 하나하나를 문제 삼기 시작하면 이야기를 하고 있는 당사자도 지금 무엇 때문에 이렇게 서로 논쟁을 벌이고 있는지 알 수 없는 순간이 도래한다. 그렇게 한 시간이나 흘렀을까. 당연히 결론이 날 수도 없는 논쟁과 팽팽한 긴장감이 계속되었다. 서로가 질리고 지치고 지긋지긋한 순간이 찾아왔다. 그렇다고 이야기를 중간에서 끊어버릴 수도 없는 노릇이다. 아들은 끝까지 자신의 의견을 얘기하고 싶어 하고 그걸 우리는 들어야 했다. 아들은 한 가지에 꽂히면 쉽게 이야기를 끝내지 못한다. 남편은 아들에게 섭섭하다고 말을 했지만 화를 내거나 짜증을 내지는 않았다.
상처뿐인 작은 콘서트는 끝이 났다. 남편은 조용히 밖으로 나갔다. 나는 알고 있었다. 남편이 힘들게 끊은 담배를 피우러 나간다는 것을. 겨우 종지부를 찍었다고 생각한 담배의 힘을 빌리러 나간 남편에게 화가 치밀었다. 왜 금요일 밤에 아이를 방에서 나오게 했는지 왜 기타 연주를 해 보라고 했는지 남편에게 원망스러운 눈길을 던졌다. 남편은 밤새 잠을 못 이루는 눈치였다.
아이를 키우는 것은 부모에게 겸손함을 가르치기 위한 신들의 배려일지도 모른다. 아이를 키우면서 가늠할 수 없는 행복을 느끼고 세상에 감사함을 배우지만 반대로 아이를 통해서 내가 어쩌지 못하는 한계를 알게 되고 나 자신도 알지 못했던 나의 못난 모습을 보기도 하고 세상을 내가 함부로 평가하고 재단할 수 없다는 겸손함을 배우게 된다. 아이를 키우면서 나는 어른이 되기도 하고 많이 울기도 했지만 시간이 지난 후에는 그 모든 것이 나라는 사람을 더욱 단단하게 만들 것이라 믿었다. 아니 그렇게 믿으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그 순간은 반복되어도 힘들고 오랜만에 찾아와도 마찬가지로 힘든 것이다. 가장 사랑하는 아들과 감정의 교감이 잘 되지 않는다는 것, 그리고 오래도록 얘기를 해도 서로가 소통하지 못하는 것은 가슴이 답답하고 멍해지는 그런 감정을 수반한다.
다음 날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밖으로 나갔다. 집에 계속 있으면 어제의 공기와 같은 공기를 들이마시고 어제와 같은 감정의 곡선을 그릴 거라는 생각 때문에 필사적으로 밖으로 나갔다. 한 시간쯤 달리니까 시골 풍경이 펼쳐졌다. 추수하고 텅 비어 있는 회색의 논이 보이고 완만하게 경사진 구릉지가 펼쳐졌다. 도로에는 강원도로 빠지는 차들이 꼬리를 물고 있고 커다란 화물차들이 속도를 내며 옆으로 지나쳤다.
물을 사기 위해서 편의점을 찾는데 도통 보이지 않았다. 국도를 한참이나 달렸을까 파란색으로 칠해진 편의점이 보였다. 로그인 편의점이라고 쓰여 있는 편의점이었다. 밖에서 흘깃 보니 뭔가 색칠이 요란하게 되어 있는 것이 이상해 보여서 선뜻 들어가지 못했다. 남편이 먼저 문을 밀고 안으로 들어갔다.
여느 편의점처럼 커피 머신이 놓여 있다. 남편은 1500원짜리 아메리카노를 사고 나는 2000원짜리 카페라테를 주문했다. 편의점 내부가 카페처럼 꾸며져 있어서 사장님에게 이 공간이 뭐냐고 물어봤다. 사장님이 취미로 꾸며 놓은 공간인데 손님들이 커피를 마시거나 쉬어 갈 수 있는 공간이라고 했다. 신기한 눈으로 내부를 살피는 우리의 모습에 사장님은 기분이 좋았는지 2층으로 올라가 보라고 안내를 했다.
좁은 계단을 타고 위로 올라가니 빨강머리 앤 입간판이 보이고 안에는 오래된 만화책들이 빼곡히 꽂혀 있는 실내가 나타났다. 창 밖으로는 탁 트인 바깥의 풍경이 그대로 들어와 보였다. 그곳에 앉아서 커피를 마셨다. 내가 남편에게 먼저 말을 꺼냈다.
" 우리는 속상해도 이렇게 서로 얘기라도 할 수 있는데 아들은 얘기할 사람이 없어서 외롭고 힘들겠어"
남편은 말이 없다. 생각에 잠긴 표정이다. 언제나 사랑하고 상처 받는 그 일들이 힘들 것이다.
" 기복이 있는 거겠지. 주가도 올라갔다 내려갔다 하는데. 아들의 감정도 올라갔다가 내려갔다가 하는 거야. 우리와의 관계도 마찬가지고"
남편의 말을 가만히 되뇌어 보았다.
힘들 때 가장 힘이 되는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힘내라는 말도 값비싼 선물도 아니었다. 승진을 못한 사람에게는 자기처럼 승진에 실패한 사람이 가장 위로가 되는 것이고 철거당하는 철거민에게는 같은 처지의 철거민이 가장 위로가 되는 것이고 오늘처럼 아이 때문에 마음이 힘들 때는 똑같은 감정을 느끼고 있는 서로가 가장 위로가 된다. 왜냐하면 힘들 때는 나의 마음을 이해해 주고 그대로 공감해 주는 사람이 가장 필요하기 때문이다. 울타리 안에 서서 밖에 있는 사람을 바라보며 힘내서 어서 울타리 안으로 들어오라고 파이팅을 외쳐도 별로 가슴에 와 닿지 않을 것이다.
외롭고 힘들고 마음이 다칠 때는 나처럼 다친 사람과 같이 있는 것, 그리고 그 사람의 눈에서 나의 감정과 같은 감정을 읽는 일이 가장 위로가 되는 것이다. 나는 남편이 상처 받았음을 알지만 그만큼 아들을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느낀다.
우리는 길을 지나치다 우연히 들른 편의점에서 커피를 마셨는데 거기에서 마신 것은 커피만은 아니었다. 계단을 올라올 때는 세상의 모든 짐을 다 짊어진 것처럼 마음이 천근만근 무거웠는데 내려가는 길에는 뭔가 마음이 조금 가벼워진 것 같았다. 다시 힘을 낼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남편과 나는 마트에 들렀다. 아들이 좋아하는 연어회와 콜라를 샀다. 부모는 참 신기하기도 하지. 자식한테 섭섭하고 속상했던 것은 금세 잊어버리고 아들이 좋아하는 것만 머리에 떠올리고 있으니 말이다.
남편은 화분을 하나 샀다. 이파리가 양 쪽으로 뻗어나간 화분이 살아 있음을 온몸으로 말하고 있어서 거실에 가져다 놓고 싶다고 했다.
장을 본 박스를 들고 집으로 들어섰다. 아들이 방에서 나왔다. 식탁에 몇 가지 음식을 차렸다. 유리잔에 콜라까지 따라 놓으니 그래도 제법 식탁이 그럴듯하다. 아들은 어색한 듯이 핸드폰을 꺼냈다. 고개를 잘 들지 못한다. 아들, 연어회 먹어봐라.
아들은 머뭇머뭇거리면서 입을 열었다. " 어제 사소한 일에 제가 갑자기 흥분해서 화를 냈던 것 같아요. 생각해 보니까 죄송해서요. " 아들은 다시 남편 쪽을 쳐다보며 다시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거면 되었다. 가족은 논리적으로 다투지 않는 사람들이다. 누가 잘했고 누가 못했고 그런 거 다 의미가 없다. 아들아. 그냥 식탁에 다 모여 앉아서 머리를 맞대고 음식을 먹고 있노라면 어제의 일들은 아무것도 아닌 것이다. 어제도 그랬고 과거에도 그랬고 아마 미래에도 이것은 변함없는 사실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