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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을 찾습니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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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느리게 걷기

집주인은 전화를 받지 않았다. 처음에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그저 부재중이려니 짐작했다. 그러나 하루 이틀이 지나도록 전화연결이 되지 않자 은수는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나중에는 오기가 발동하기 시작했다. 이제는 보이지 않는 공간에 있는 집주인과 신경전이라도 벌이는 심정이었다. 전화벨은 고집스럽게 울려댔고 어느 순간부터는 전화를 받을 거라는 기대보다 받지 않을 거라는 믿음이 더 커져 버렸다.


은수는 전화번호가 적힌 종이를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이 종이와 번호에 무슨 특별한 비밀이라도 숨겨져 있는 듯이 말이다. 그렇게 오래 들여다본다고 해서 뾰족한 수가 나올 리 없었다. 은수는 이마를 잔뜩 찌푸렸다. 고민에 잠길 때마다 그녀 이마에 나타나는 주름이 살짝 나타났다가 사라졌다.


처음부터 집주인은 평범하지 않았다. 잔금을 치르는 날, 은수는 집주인을 처음 만났다. 그녀의 행색은 특이했다. 그녀는 패딩이나 코트 같은 겨울 외투를 입고 있지 않았다. 그녀는 얇은 티셔츠 위에 셔츠를 걸치고 그 위에 얇은 가을 점퍼 같은 것을 두 개나 껴 입고 있었다. 추위가 맹위를 떨치고 있는 날씨였다. 두툼한 롱패딩을 입고도 무릎 아래가 시릴 지경이었는데 그녀의 옷차림은 도무지 추위를 막아줄 것 같지 않았다. 키가 작고 볼품없이 마른 사람이었다. 60대쯤 되었을까. 아니 70대 일지도 모른다. 그녀의 얼굴이나 옷차림으로 나이를 가늠하기 어려웠다. 더구나 그녀는 비녀를 쪽 진 머리를 하고 있었다. 기다란 머리를 땋아서 꽈리를 틀고 비녀로 단단히 고정시킨 머리였다. 요즘에 그런 헤어 스타일을 하고 있는 사람을 본 적이 있었던가. 아주 오래전에 외할머니가 저런 머리를 하고 있었던 것을 은수는 기억해 냈다. 집주인은 서울 도심에 아파트를 소유한 집주인이라기보다는 폐지를 줍는 할머니 같은 느낌을 풍겼다.


어쨌든 그녀가 집주인이었다. 아파트는 3개 동으로 이뤄져 있었다. 지하철 역에 내려서 500미터쯤 언덕배기를 올라가다 경사가 가파른 곳에 다다르면 오른쪽에 아파트가 있었다. 아파트는 모두 20평이었고 복도식이었다. 겨울이면 아파트 진입로에는 자주 살얼음이 얼었다. 아파트를 빠져나가는 차들은 그 구간에서 속도를 줄이고 엉금엉금 기어 나갔다. 경사가 아주 가파르고 위험했기 때문이다. 종종 어린아이나 노인들이 그곳에서 넘어지고는 했다. 아파트 안에는 조형물이나 나무가 없었다. 그저 오르막에 덩그러니 세 개의 동이 멋대가리 없이 ㄷ자 형태로 배치되어 있는 것이 전부였다. 어둠이 깔리면 사람들은 밖으로 잘 나오지 않았다. 그래서 밤이 되면 아파트는 을씨년스러운 분위기를 풍겼다.


이 아파트에 사는 사람들은 넉넉한 형편의 사람들이 아니었다. 20평이 조금 넘는 집에 대가족이 모여 사는 집도 있었다. 은수는 위 층에 사는 사람들이 밤늦게까지 쿵쾅거리는 바람에 항의를 하러 올라간 적이 있었다. 문이 열리고 안을 슬쩍 보았을 때 대가족이 살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매일 밤마다 여러 사람들이 있는 것처럼 시끄럽고 소란스러운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은수는 ' 조심 좀 해 주세요' 하고 내려왔다.


아파트 내부도 별다를 것이 없었다. 벽의 몰딩은 오래전 유행하던 연한 민트색의 몰딩으로 마감되어 있었다. 욕실은 오랫동안 수리한 흔적이 없었다. 타일은 군데군데 금이 가거나 누런 때로 찌들어 있었다. 그나마 은수가 사는 집은 싱크대를 교체한 집이었다. 그전에 살던 세입자가 집을 비운 사이에 싱크대 상부장이 저절로 떨어져서 박살이 나 버렸다고 했다. 사람이 다치지 않은 것만도 다행이라고 여길 정도로 싱크대는 완전히 박살이 났다는 것이다. 집주인은 기존의 민트색 싱크대를 버리고 그 자리에 하얀색 인조 목재 싱크대로 교체를 해 준 모양이다. 은수가 이 집으로 꼭 이사를 오고 싶었던 이유 중에 하나도 바로 싱크대 때문이었다. 다른 집들은 아직 민트색의 싱크대를 사용하고 있었다. 이 집만이 유일하게 새로 싱크대를 바꾼 집이었다. 현관문을 열자마자 바로 싱크대가 보이는 구조였기 때문에 하얀색 싱크대만으로도 집안이 환해 보이는 효과가 있었다. 집 내부가 형편없이 낡고 허름하더라도 싱크대가 하얀색이면 그럭저럭 견딜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잔금을 치르는 날, 부동산에서 집주인을 처음 만났을 때 은수는 뭔가 알 수 없는 불안감을 느꼈다. 집주인의 행색이 평범하지 않고 표정이 이상하리만치 어두웠기 때문이다. 그녀의 얼굴에서는 상처 받은 사람의 얼굴에서 풍기는 어두운 그림자가 어른거렸다. 그녀는 두려움에 휩싸인 사람처럼 소파 구석에 몸을 웅크리고 앉아 있었다. 한참 후 그녀가 입을 열어서 내뱉은 말은 부동산에 대한 불만의 목소리였다. 그녀는 중얼거리듯이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 그러니까 나는 옥샘 부동산 사장하고만 거래를 합니다. "

그러더니 조금 더 큰 목소리로 다시 말을 이었다.

" 옥샘 부동산 사장은 믿을 수가 있어요. "

우리가 계약서를 쓰고 있는 부동산은 수목 부동산이었다. 사장은 40대 후반의 남자 사장이었다. 인상이 특별히 좋거나 나쁘거나 할 것이 없는 평범한 얼굴의 사람이었다. 그는 커다란 문양이 있는 셔츠를 입고 있었다. 그는 할머니에게 설명을 했다. 마치 어린아이에게 설명을 하듯이 또박또박 문장을 끊어가면서 천천히 상황을 이해시키려고 하는 말투였다.

" 할머니, 제가 옥샘 부동산하고 공동으로 중개를 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저하고 하는 것이 결국은 옥샘 부동산하고 하는 거라고 보시면 되는 겁니다. "

그러나 수목 부동산 사장의 친절한 설명도 그다지 소용이 없었다. 할머니의 눈은 불안하게 흔들렸다.

" 옥샘 부동산 사장은 오래전부터 아는 사람이에요. 믿을 수 있는 사람이에요. "

할머니는 처음보다 더 불안해 보였다. 부동산 사장이 커피 믹스를 타서 내밀었는데 그 컵을 받아서 탁자 위에 올려놓고는 손도 대지 않았다. 할머니는 수목 부동산 남자 사장에게 적의가 섞인 눈빛을 보냈다.

" 나는 아무도 믿지 않아요. "

수목 부동산 사장은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허허허 하고 애써 웃으며 분위기를 만회해 보려고 하는 눈치였다. 그러나 부동산 안의 분위기는 점점 가라앉고 무거워졌다.


계약서를 확인한 할머니는 급한 일이 있는 사람처럼 황급히 사라졌다. 그녀는 한글을 모르는 것 같았다. 사장이 계약서를 한 글자 한 글자 천천히 읽어서 할머니에게 설명을 했다. 중간에 할머니가 이해를 하지 못해서 다시 읽으라고 할 때면 같은 구절을 반복하고 설명을 마친 후에 다음 문장으로 넘어갔다. 할머니는 이해가 갈 때는 고개를 크게 끄덕이고 그렇지 않을 때는 불안한 표정으로 " 거기를 다시 설명해요. 그게 도대체 무슨 소리지요?" 하고 눈을 끔벅거렸다. 그래서 계약서를 확인하고 절차를 끝내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할머니가 사라지고 난 후에도 은수는 선뜻 일어나지 못하고 자리에 앉아 있었다. 저렇게 이상한 집주인을 만난 것은 처음이야. 앞으로 아무 문제가 없을까? 저 이상한 집주인하고 나중에 이야기가 잘 될까? 여러 가지 걱정들이 머릿속에서 출렁거렸다.


하긴 집주인하고 연락할 일이 얼마나 된다고 그런 걱정을 하는가. 은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자잘한 문제는 알아서 수리할 것이다. 할머니가 어딘가 평범해 보이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고약하거나 심술궂은 사람처럼 보이지도 않았다. 무슨 사연이 있는 거겠지. 은수는 계약서를 챙겨서 부동산을 나왔다.


아파트로 올라가다 보면 언제나 숨을 헐떡거렸다. 이렇게 낡고 허름한 아파트라도 내 것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서울에서 아파트를 소유하고 있다는 것은 대단한 일이다. 비록 그 할머니가 낡고 수상한 행색을 하고 있지만 그렇게 검소하게 돈을 모은 덕분에 이런 아파트를 장만했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 할머니를 걱정할 게 아니라 이 아파트에 세 들어 살고 있는 자신의 처지를 걱정해야 한다는 생각이 머릿속에 스쳤다. 은수는 쓴웃음을 지으며 집으로 가는 걸음을 재촉했다.


아파트 정문 근처에 오면 커다란 마트가 있었다. 이 마트는 오래된 건물 1층에 있었다. 주변 건물 중에는 재개발 때문에 철거된 건물이 많았다. 이 건물도 아마 30년은 족히 넘었을 것이다. 건물은 보수가 되지 않아서 금방이라도 푹 꺼져버릴 것처럼 낡아 빠져 있었다. 건물 입구부터 울퉁불퉁하게 마감이 되어 있고 입구가 어두컴컴해서 밖에서는 마트가 잘 보이지 않았다. 게다가 이 마트 안에는 수산물을 파는 코너가 있었는데 관리가 잘 되지 않는지 입구에서부터 비린내가 훅 끼쳐왔다. 은수는 이 마트에서 장을 보는 것이 언제나 내키지 않았다. 수산물 코너 근처에 오면 바닥에 물이 흥건하게 고여 있고 마트 안에서는 기분 나쁜 냄새가 났다. 그렇다고 가격이 저렴한 것도 아니었다. 마트에서 몇 번이나 계산을 잘못 한 것을 확인한 뒤로는 더더욱 이 마트에 가는 게 꺼려졌다. 고의적인 장난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주변에 여기 말고는 마땅한 마트가 없으니 어쩔 도리가 없지만 마트를 갈 때마다 은수는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가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는 했다.


마트에서 나오면 막걸리를 파는 술집이 몇 개 있었다. 한 번은 술에 취해 비틀거리는 남자를 만난 적이 있었다. 남자는 아이를 업고 가는 은수의 팔을 툭 치며 술주정을 했다. 은수는 놀라서 아이를 등에 업은 채 집으로 뛰어 올라갔다. 술에 취한 남자가 따라오지 않는 것을 확인하고도 은수는 겁에 질려 뒤를 계속 흘금거렸다. 이 지긋지긋한 동네를 떠나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희망이 없는 사람들, 술에 찌들어 있는 사람들, 이 동네에서 아이를 키우기 싫었다. 이렇게 낡고 지저분하고 질서가 없는 동네에서 제대로 된 인생을 살 수는 없는 거겠지. 이 동네에 사는 사람들의 표정만 봐도 알 수 있었다.


얼마 전에는 길에서 큰 소리로 싸우고 있는 아버지와 아들의 모습을 본 적이 있었다. 고등학생은 되어 보이는 아들은 아버지보다 키가 한 뼘은 커 보였다. 아버지는 아파트 정문 앞에서 격렬하게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호기심 어린 시선을 보내며 멈춰 있는데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러다 감정이 폭발한 아버지는 아들을 때리기 시작했다. 은수는 아이가 그 장면을 보고 놀랄까 봐 아이의 손을 잡고 옆도 돌아보지 않고 곧장 뛰듯이 집으로 갔다.


이 동네에 사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어둡고 의욕 없는 표정을 하고 있었다. 하기는 이 아파트까지 올라오는 경사로가 얼마나 사람을 진 빠지게 하는지. 이런 곳에 사는 사람들의 삶이란 뻔한 것이다. 여름에 집에 가려면 해가 산으로 넘어간 저녁에도 금세 땀이 줄줄 흐르곤 했다. 이 동네는 정이 들지 않는단 말이야. 은수는 습관처럼 한숨을 푹 내쉬었다. 은수 손에 매달린 아이는 그런 엄마의 한숨을 알지 못하고 발을 종종거리며 즐거운 다람쥐처럼 폴짝거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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