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 외곽의 산등성이나 산비탈처럼 높은 지대에 가난한 사람들이 모여 사는 동네를 달동네라고 불렀다. 워낙 지대가 높으니 달이 잘 보인다는 뜻에서 그렇게 불렀을 것이다. 은수가 찾아간 동네가 바로 그런 달동네였다. 이 곳은 경사가 어찌나 가파른지 은수가 살고 있는 동네와 비교가 되지 않았다. 은수는 고개를 들어 까마득한 위를 올려다보았다. 정말로 달이 가까이 있는 것처럼 보였다.
처음 동네를 찾아간 날에는 허탕만 치고 돌아왔다. 은수가 퇴근하고 금호동을 찾았을 때는 이미 어두워진 후였다. 비슷비슷하게 생긴 집들이 어둠 속에 조용히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주소만 가지고 집을 찾는 것은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었다. 은수는 몇 번이나 길을 물었지만 엉뚱한 곳에서 헤매다가 돌아와야 했다. 구불구불하고 컴컴한 골목을 더 이상 헤매는 것이 무리라는 생각도 들었다.
며칠 뒤 은수는 휴가를 내서 금호동을 다시 찾았다. 이번에는 아침에 가 보기로 했다. 부동산 사장이 할머니가 새벽장사를 하는 것 같다고 했기 때문에 아침에 가면 만날 수 있을 것 같아서였다. 은수는 오르막이 시작하는 지점에 있는 미용실로 들어갔다. 미용실 사장은 의자에 앉아서 졸다가 일어났다. 그녀는 잠이 덜 깬 부스스한 얼굴이었다. 은수가 주소가 적힌 종이를 들이밀자 그녀는 기다랗게 이어진 좁은 길을 가리켰다. 그 위 쪽이 금호동 750번지 일대니 가 보라는 것이었다.
40개나 50개쯤 되는 계단을 올라갔다. 계단 양 옆으로 주인을 알 수 없는 화분들이 놓여 있었다. 계단 옆으로 입구가 연결되는 집들도 있었다. 집이 있을 것 같지 않은 곳에 집이 있고 문이 있을 것 같지 않은 곳에 문이 있었다. 계단을 어느 정도 오르고 나니 숨이 차 올랐다. 눈이나 비가 내리면 미끄러지기 좋은 길이었다. 은수는 잠시 멈춰서 계단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뒤로는 아찔한 경사로와 계단이 이어져 있었다.
계단이 끝나자 길이 나타났다. 간신히 차 한 대가 지나갈 수 있는 길이었다. 머리 위로는 전선줄이 늘어져 있었다. 길에는 담배꽁초와 휴지 조각들이 너저분하게 떨어져 있었다. 은수는 인상을 찌푸리며 조심성 있게 발을 내디뎠다. 갑자기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우산을 미처 챙겨 오지 못한 은수는 짜증스럽게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다행히 많이 내릴 비는 아니었다. 빗방울은 그저 부슬거리며 가늘게 내리고 있었다. 잔뜩 습기를 머금은 공기가 달동네를 더욱 을씨년스럽게 만들었다.
오르막은 시멘트가 발려진 길이었다. 그러나 시멘트를 대충 발라서 마감을 했는지 길은 울퉁불퉁했다. 오전인데도 길에는 지나다니는 사람이 없었다. 길 양쪽으로 3층이나 4층 연립 주택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었다. 담이 없어서 1층에 있는 집들은 내부가 훤히 들여다 보였다. 대부분의 건물에는 반지하가 있었다. 많이 쌀쌀한 날씨가 아닌데도 은수는 왠지 몸을 부르르 떨었다. 집들은 최소한의 간격을 확보하지 못한 채 다닥다닥 붙어 있었다. 햇빛이 비집고 들어올 틈도 없을 만큼 건물들은 가까이 살을 맞대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오전인데도 여기저기 불 켜진 집들이 많이 보였다.
형제 슈퍼라는 작은 가게가 보였다. 밖에서 보기에는 살림집과 다를 바가 없어서 형제 슈퍼라고 쓰인 기다란 간판이 없었더라면 그냥 지나쳤을 것이다. 은수는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빨간색 가디건을 걸치고 앉아 있던 아줌마는 주소가 적힌 쪽지를 건성으로 들여다보았다. 그리고 손가락으로 한 연립 건물을 가리키며 그곳으로 가보라고 말했다.
연립은 3층 건물이었다. 벽에는 오래전에 붙어 있다가 미처 떨어지지 못한 포스터가 얼룩덜룩 붙어 있었다. 가스계량기와 수도 계량기가 그대로 외벽에 붙어 있는데 그 아래로는 검은색 곰팡이들이 벽을 따라 퍼져 있었다. 보고만 있어도 곰팡이 냄새가 훅하고 풍길 것만 같은 건물이었다.
집주인 할머니가 정말 이 건물에 살고 있단 말인가? 은수는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건물을 올려다보았다. 은수가 세 들어 살고 있는 아파트는 낡고 허름하지만 소위 서울 역세권의 아파트였다. 서울 역세권의 아파트를 소유하고 있는 사람이 이런 동네에 살고 있다니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노릇이었다.
연립을 찾았다고는 해도 다음으로 무엇을 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가만히 살펴보니 똑같이 생긴 현관문이 여러 개 있었다. 아무래도 꼭대기층에는 이 건물의 주인이 살고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은수는 계단을 따라 3층으로 올라갔다. 계단은 퀴퀴한 냄새를 풍겼다. 3층에 이르자 크고 화려한 문양의 현관문이 나타났다. 은수가 벨을 누르자 한 여자가 고개를 내밀었다. 퉁퉁하고 혈색이 좋아 보이는 여자는 보라색 원피스를 입고 있었다. 그녀는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 할머니를 찾고 있는데요. 혹시 이 건물에 우숙자 할머니라고 살고 있나요?"
여자는 고개를 갸우뚱하더니 대답했다.
" 이름은 모르겠고 손자하고 둘이 사는 할머니가 있어요. 그 할머니 말하는 건가 보네"
제대로 찾았다는 안도감이 몰려왔다. 은수는 다시 확인을 했다.
" 머리에 비녀를 꽂고 다니고 많이 마르셨어요. 그분 맞을까요?"
" 맞아요. 그 할머니, 집에 있을 테니 가봐요. 104호예요"
주인은 현관문을 닫으려다가 다시 얼굴을 빼꼼히 내밀었다.
" 그 집 손자가 또 사고를 쳤나요?"
"아니요. 할머니한테 볼일이 있어서 왔어요. "
은수의 대답을 듣자 주인 여자는 흥미를 잃은 듯이 문을 닫아 버렸다. 은수는 계단을 내려왔다. 계단 바로 아래에 104호가 있었다. 104호는 반지하에 가까운 일층이었다. 경사가 심해서 앞 쪽으로는 1층이고 뒤로는 지하였다. 그러나 엄격하게 본다면 반지하라고 보는 것이 맞을 것이다.
문 앞에는 초인종이 따로 없었다. 은수는 조금 망설이다가 문을 두드렸다. 안에서는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은수는 조금 기다렸다가 다시 문을 두드렸다. 이번에도 사람이 나오는 기척이 없었다. 안에 아무도 없는 건가. 은수는 힘이 쑤욱 빠졌다.
은수는 바닥에 쭈그리고 앉았다. 여기에서 계속 기다려야 할지 포기하고 집으로 가야 할지 결정하기가 어려웠다. 그러나 여기를 다시 마음먹고 오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은수는 다시 일어서서 문을 두드렸다. 이번에는 전보다 더 크게 힘을 주어서 탕탕탕하고 세게 두드렸다. 그때였다. 분명히 인기척이 들렸다. 안에는 누군가 있는 것이 틀림없었다. 은수는 다시 한번 문을 두드렸다. 드디어 문이 열렸다. 그것도 아주 조심스럽게 말이다. 그리고 누군가가 얼굴을 내밀었다. 처음에 은수는 그 사람이 주인 할머니라는 것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할머니가 긴 머리를 풀어헤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녀는 기다란 머리를 어깨 뒤로 넘기며 은수를 힐끔 올려다보았다. 경계하는 눈빛이었다.
" 누구요?"
" 할머니, 저 상수 아파트 세입자예요"
"그런데 여기 왜 왔어?"
할머니의 눈동자는 불안에 흔들리고 있었다. 표정도 놀란 것처럼 상기되어 있었다.
"할머니가 전화를 안 받으시니까 왔죠. 새로운 세입자하고 계약서를 써야 하는데 연락이 안 돼서요"
할머니를 만났다는 안도감이 밀려왔다. 할머니는 그 사이에도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살피고 있었다. 현관문을 살짝만 열어 놓고 얼굴만 내밀고 있어서 그녀는 언제라도 안으로 다시 사라져 버릴 것 같았다.
"할머니, 21일에 부동산으로 나오셔야 돼요. 아셨죠? "
할머니가 고개를 건성으로 끄덕거렸다. 어서 은수를 보내고 싶은 눈치였다.
" 할머니, 왜 전화를 그렇게 안 받으세요?"
" 세상이 무서우니까 그렇지. 무서워. 하여간 알았으니까 얼른 가"
할머니는 어딘가로 도망가려고 준비하는 사람처럼 급해 보였다. 그녀는 괴기스러운 기다란 머리를 풀어헤친 채로 엉거주춤 서 있었다. 그녀가 입고 있는 내복은 물이 다 날리고 힘없이 늘어져 있었다. 그녀는 집 앞에 길을 연신 흘금거리고 있었다. 눈동자는 한 곳을 진득하게 보는 것이 아니라 불안에 차서 연신 주변을 살피고 있었다. 은수는 할머니에게 날짜를 다시 한번 일러주고 인사를 했다. 할머니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서둘러 문을 닫았다. 은수 뒤에서 문이 철컥하고 잠기는 무거운 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이내 조용해졌다. 안에는 불도 켜지지 않고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은수는 올라왔던 길을 다시 내려갔다. 비는 아까보다 조금 굵어졌다. 길은 축축한 데다가 군데군데 웅덩이에는 빗물이 고여 있었다. 은수는 가파른 계단을 조심스레 내려가기 시작했다. 중간에 움푹 파인 곳에서는 발을 헛디뎌 넘어질 뻔하기도 하였다. 앞으로 쏟아질 듯이 가파른 계단이 드디어 끝이 났다. 은수는 넘어질까 싶어 잔뜩 숙이고 내려오던 허리를 폈다. 이제 반들반들하게 잘 닦인 보도 블록이 나타났다. 아파트 단지와 4차선 도로가 나타났다. 차들이 도로 위를 시원하게 달리고 있었다.
은수는 신발에 묻은 더럽고 진득거리는 흙을 바닥에 탁탁 쳐서 털어냈다. 그녀가 타고 갈 버스가 오고 있었다. 그녀는 버스를 타기 위해서 뛰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