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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캠핑은 무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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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느리게 걷기

캠핑은 어려운 여행이다. 더군다나 꼼꼼한 남자와 덜렁대는 여자가 함께 가는 캠핑이라면 더 말할 필요도 없이 힘겨운 여행이 될 것이다.


남편은 캠핑 가는 것을 좋아했다. 나도 캠핑 가는 것을 좋아하지만 그러나 준비하는 과정은 싫어했다. 캠핑 한 번 가려면 챙길 것은 너무나 많고 옮겨야 할 짐은 너무나 무거웠기 때문이다. 베란다에 꽁꽁 처박혀 있던 캠핑 용품들을 다 끄집어 놓고 보면 그 기세에 눌려서 캠핑을 떠나기도 전에 몸에 진이 다 빠지는 기분이었다.


우리 집에 있는 캠핑용품들은 전문적인 캠핑용품들이 아니었다. 요즘 캠핑용품들은 가볍고 미니멀하게 잘 만들어져서 나온다. 접으면 거짓말처럼 부피가 작아지는 용품들이 많다. 그러나 우리가 가지고 있는 물품들은 대부분 저렴하게 구매한 것들이라서 대형이고 무게도 엄청나게 무겁다. 차에 실으려고 잔뜩 꺼내놓으면 이사 가는 수준이 될 정도이다.


그날도 주말을 맞아서 캠핑을 가는 날이었다. 역시 남편은 준비에 여념이 없었다. 베란다를 들락거리면서 뭔가를 계속 꺼내오고 침낭을 차에 싣고 아주 분주했다. 그에 비해서 나는 잔뜩 여유를 부리고 있었다. 미리부터 체력을 다 소진하면 여행 갈 기운이 남지 않는다는 생각으로 거실에서 커피를 한 잔 마시고 있었다. 그리고 커피를 다 마시고서야 여유 있게 가지고 갈 물건들을 챙기기 시작했다.


우리가 캠핑을 가는 장소는 집에서 2시간 가까이 차로 가야 하는 강원도에 있는 캠핑장이었다. 거리는 좀 되지만 폐교를 개조해서 만든 캠핑장이라 시설이 좋은 편이었다. 그리고 여름에는 물놀이를 할 수 있는 작은 풀장이 있기 때문에 인기가 좋았다. 아이들은 벌써부터 물놀이를 할 생각에 들떠 있었다.


우리는 차에 짐을 쑤셔 넣었지만 짐은 차에 다 들어가지 않았다. 할 수 없이 지붕에 짐을 올리고 둘둘 묶어서 출발했다. 요즘은 자동차 위에 날렵하게 짐을 실을 수 있는 그런 용품들이 많이 나온다. 그러나 남편이 가지고 있는 것은 그런 근사한 물건이 아니었다. 각이 잡히지 않은 검은 가방처럼 생긴 것이었다. 남편은 그 안에 침낭이나 담요를 빵빵하게 채워 넣고 차 지붕으로 던져 올려서 양쪽으로 줄을 묶었다. 그걸 묶는 순간 차는 처량 맞은 몰골로 변신하게 된다. 아는 사람을 만나면 좀 부끄러울 것 같은 몰골이다. 그러나 남편은 그런 것쯤 아랑곳하지 않고 줄을 단단히 고정해서 흔들리지 않도록 묶었다.


차가 출발하고 30분 정도 달렸다. 차 안에는 비트가 강한 신나는 음악이 울리고 있었다. 나는 갑자기 수건을 챙겨 오지 않았다는 것을 생각해 냈다. 기본적으로 씻고 머리만 감으려고 해도 수건이 필요할 텐데 아이들이 물놀이까지 하면 여분의 수건이 훨씬 많이 필요할 것이다. 이걸 어떻게 해야 하지. 한참 고민을 하다가 남편에게 사실대로 실토했다.

" 여보, 나 말할 게 있는데 당신 화 안 낼 거지?"

남편은 아들과 앞 좌석에 앉아 있고 나는 뒷좌석에 딸과 나란히 앉아 있었다. 남편은 무슨 일이지 하는 눈초리로 백미러를 통해서 나를 쳐다보았다. 화 안 낼 테니 얘기해 보라고 남편은 말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차 안에 있는 우리 모두는 기분이 좋았고 설렘으로 가슴이 부풀어 있었으니 자연히 표정도 부드러웠다.

수건을 깜빡하고 챙겨 오지 않았다는 나의 말에 남편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러나 연애할 때 나의 무수한 사고 뒤처리를 하던 버릇으로 금방 낙천적인 기분으로 돌아온 것 같았다.


우리는 외곽에 있는 커다란 마트를 발견하고 안으로 들어갔다. 옥상 주차장에 차를 주차하고 안으로 들어갔다. 시골에 있는 마트 치고는 제법 다양한 물건을 갖추고 있는 곳이었다. 우리는 수건을 한 묶음 샀다. 어차피 캠핑 가서 사용하고 나중에 집에 가서 사용하면 될 테니 문제 될 것이 없었다. 남편은 혹시 또 빠뜨린 게 없냐고 물었다. 나는 이제 더 살 것이 없다고 대답을 했다. 우리는 수건을 차에 싣고 출발했다. 시간이 조금 지체되긴 했지만 크게 문제 될 정도는 아니었다.


출발하고 얼마나 달렸을까. 나는 냄비를 챙겨 오지 않은 것을 알았다. 하필이면 저번 캠핑을 갔다가 바닥을 태워서 바닥이 시커멓게 탄 부분이 있었다. 그걸 깨끗이 씻어 본다고 싱크대에 다 꺼내서 수세미로 문질렀다. 그리고는 물을 뺀다고 뒤집어 놓고 그대로 온 것이다. 냄비를 안 챙기고 캠핑을 간다는 것은 총을 들지 않고 전쟁터로 나가는 것이나 진배없는 일이다.


캠핑장에 가서 밥을 하고 삼겹살을 구워 먹고 찌개를 끓여 먹어야 하는데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황인 것이다. 나는 막막했다. 왜 하필 코펠 세트를 다 꺼내서 설거지를 시도했는지 그 순간의 행동이 후회스럽기만 했다. 아니 설거지를 끝냈으면 잘 챙겨서 넣었어야 하는데 누구를 탓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나는 남편을 슬쩍 훔쳐보았다. 아직까지 남편은 기분이 좋아 보였다. 라디오에서 나오는 노래의 리듬에 맞춰서 고개를 흔들고 있었다. 나는 남편에게 운전이 피곤하지 않냐고 일단 운을 뗐다. 남편은 괜찮다고 대답을 했다. 남편의 기분 좋은 얼굴을 일그러뜨러야 한다는 생각에 쉽게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차 안에 흐르는 이 상쾌한 공기와 즐거운 기분들을 다 망쳐야 하는 순간이 온 것이다. 아이들은 과자 봉지 안으로 손을 넣어서 과자를 꺼내서 먹고 있고 남편은 음악을 들으며 텐션을 끌어올리고 있는데 이 모든 상황에 찬물을 끼얹어야 하다니.


그러나 나는 용기를 내야만 했다. 나는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남편에게 말했다. 냄비를 하나도 챙겨 오지 않았다고 말이다. 남편의 표정이 순식간에 변했다. 백미러로 나를 쳐다보는데 눈빛이 아주 사납다. 화가 단단히 난 것 같았다. 남편이 일장연설을 시작했다. 저번 캠핑 때 가위를 안 챙겨서 삼겹살을 자르지 못해서 얼마나 고생했는지 그 이야기를 꺼내기 시작했다. 그 외에도 크고 작은 사건들이 얼마나 많았는지 아냐고 남편은 호소를 했다. 할 말이 없었다. 나는 대꾸도 하지 않고 가만히 앉아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뭐라고 대답을 할 수 있단 말인가. 그저 죄인의 자세를 하고 조용히 처분을 기다리는 수밖에는 방법이 없다.


갑자기 차 안의 공기가 냉각된 것을 감지한 아이들은 우리의 눈치를 살폈다. 차 안에는 불편한 침묵만이 흐르고 있었다. 그때 갑자기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우리 차 지붕에 짐을 올리고 끈으로 둘둘 묶어 놓는 바람에 창문을 완전히 닫아도 틈새가 있는 모양이었다. 비는 창문을 통해서 제법 '똑똑'하고 새어 들어왔다. 잘못하다가는 자동차 시트가 다 물에 젖어 버릴 것 같았다. 나는 할 수 없이 조금 전 마트에서 산 수건을 창문 가까이 받히고 최대한 물이 시트에 떨어지지 않도록 했다. 그러나 비가 제법 굵어지는 바람에 빗방울이 내 이마 위로 떨어져서 또르르 굴러 떨어졌다. 나의 오른쪽 어깨는 어느새 축축해져 버렸고 앞 머리는 물에 젖어서 이마에 찰싹 달라붙었다.


내 몰골이 우스웠던 걸까. 백미러로 나의 모습을 흘깃 구경한 남편의 입이 갑자기 실룩거렸다. 그러나 남편은 끝내 자존심을 지키고 싶었는지 소리 내어 웃지는 않고 목구멍으로 삼켜 버렸다. 남편은 화가 꺾였는지 마트가 나오면 냄비를 사러 가자고 했다. 나는 남편의 아량에 감탄할 뿐이었다. 우리는 조금 작은 마트에서 전골 프라이팬을 샀다. 남편은 전골 프라이팬으로 삼겹살도 구울 수 있고 라면도 끓여 먹을 수 있으니 최선의 선택이라고 했다. 이제 정말 모든 것이 준비되었다. 우리는 다시 차를 출발시켰다. 캠핑장에 도착할 무렵에 남편이 나에게 물었다.

" 설마 당신 세제하고 수세미는 챙겼지?"

" 그럼 당연하지"

그렇다. 당연히 세제와 수세미를 안 챙겼다. 냄비도 못 챙기고 오는 정신머리에 어떻게 세제와 수세미를 챙겼을 것인가. 이제 더 이상 마트가 나올 것 같지 않은 시골을 달리고 있었다. 수세미까지 안 챙겨 왔다고 하면 남편이 또 뭐라고 할까. 막막한 심정으로 앉아 있는 나를 싣고 차는 시원하게 내달려서 캠핑장 주차장으로 진입했다.


캠핑장에 와 보니 작은 마트가 있었다. 나는 숯을 사러 갔다. 마트 안에는 할아버지가 앉아서 신문을 보고 있었다. 나는 간절한 마음으로 혹시 수세미와 세제를 파느냐고 물었다. 할아버지는 팔지 않는다고 대답했다. 오 마이 갓. 세제와 수세미를 챙겨 오지 않아서 남편이 알면 싸움이 날 것 같아요. 나의 말에 할아버지는 빙그레 웃더니 빌려 줄 테니 마음껏 쓰라고 말했다. 그리고 정말로 수세미와 세제를 나에게 내밀었다. 그러면서 한마디 덧붙였다.

" 그 집 남편 참 성격 이상하네. 수세미 안 가져온 게 무슨 대수라고 싸우고 그래?"

속사정을 모르는 할아버지에게 더 자세한 설명을 할 수는 없었다. 지금 여기까지 온 것도 기적이라고 말 할 수는 더더구나 없었다. 사정을 다 듣는다면 아마 남편을 불쌍한 시선으로 바라볼지도 모를 일이다.


나는 저녁을 먹고 나서 빌린 세제와 수세미로 설거지를 잘 끝냈다. 다행히 남편은 내가 세제를 챙겨 오지 않은 것을 눈치채지 못했다. 그 날 캠핑은 특히 좋았다. 궁중 프라이팬에 구워 먹은 삼겹살과 라면의 맛도 환상적이었다. 모닥불을 피워 놓고 마시는 한 잔의 커피는 머리 속에 잔뜩 쌓여 있던 세상의 시름과 먼지를 씻어주는 것 같았다.


그 후로 남편은 캠핑 가는 것을 두려워 하는 것 같다. 그리고 캠핑을 가게 되면 예전보다 꼼꼼하게 짐을 챙기는 버릇이 생겼다. 참기름과 조미료통까지 잘 챙겼는지 확인을 하거나 직접 챙기고 있다.


캠핑을 좋아하면서 이렇게 준비에 서투르다니 딱한 노릇이다.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도 마찬가지다.

나에게 캠핑 준비는 너무나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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