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 건너편에 카페가 있다. 카페 안으로 들어가면 1층과 1. 5층의 구조로 되어 있다. 1층에는 테이블이 6개 정도 있고 1. 5층에는 테이블이 4개 정도 있다. 실내에 특별한 장식은 없고 그저 단정한 테이블과 의자가 놓여 있다. 테이블은 모두 원목 테이블이고 색감은 약간 어두운 톤의 나무 색깔이다. 카페 안에는 항상 음악이 흐르는데 소리가 작아서 거의 음악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대신에 이 카페에 들어가면 원두를 가는 소리와 사람들의 두런거리는 이야기 소리가 주를 이룬다.
사실 회사 주변에는 카페들이 많이 있다. 회사 옆문으로 나와서 몇 걸음 떼지 않으면 큰 상가가 나타난다. 그 상가에만 카페가 6개 정도 오밀조밀 붙어 있다. 주변에 법원 건물도 있고 보건소나 보험회사 건물이 있어서 상권이 괜찮을 거라는 짐작을 해 본다. 카페들은 나름의 특색을 가지고 있다. 어떤 카페는 과일차를 전문으로 하고 어떤 카페는 타르트를 기가 막히게 구워낸다. 가격 할인으로 밀어붙이는 카페들도 있다.
그런데 그런 무수한 카페를 물리치고 우리 회사 사람들은 건너편 카페로 간다. 사실 건너편 카페로 가려면 2차선 도로를 건너야 하기 때문에 접근성은 오히려 떨어진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훨씬 가까운 상가 카페들을 물리치고 2차선 도로를 좌우 살펴가며 잽싸게 건너서 그 카페로 간다.
그 카페의 비결을 생각해 보면 뭐라고 정의하기가 어렵다. 카페의 인테리어가 특별히 고급스럽거나 세련된 것도 아니고 커피 맛도 평범하다. 라테가 고소하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놀랄 정도의 맛은 아니다. 아마 굳이 이유를 꼽아 본다면 카페 사장님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카페 사장님은 살집이 있는 체형이고 얼굴은 개그맨 유민상을 살짝 닮았다. 말이 많은 스타일이 아니기 때문에 주문은 간단하고 명료하게 진행된다. 사장님은 가볍게 눈인사를 보내지만 그렇다고 질문을 하거나 말을 걸어서 불편하게 하는 스타일은 아니다. 그러니까 사장님은 적당한 친절과 젠틀한 무관심 사이에서 균형감각을 잃지 않는다.
주문을 하면 쿠폰 찍어드릴까요? 하는 질문을 받느다. 이 카페는 커피 한 잔마다 스탬프를 찍어 주는데 10개를 모으면 무료 커피를 마실 수 있다. 회사 직원 대부분이 이 카페를 이용하고 있기 때문에 계산대 앞에 있는 쿠폰 상자에는 직원들의 이름이 적힌 쿠폰들이 가나다 순으로 정리되어 있다.
그런데 점심시간에 새로운 뉴스가 들어왔다. 그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고 온 직원이 만나는 사람마다 카페의 폐업 소식을 전했다. 그 카페가 오늘까지만 영업을 하고 내일은 문을 닫는다는 것이었다. 직원들은 놀라서 웅성거리며 그 소식통에게 다가갔다. 카페에 무슨 일이 있는지 사장님의 신변에 변화가 생겼는지 몹시 궁금해서 질문을 한꺼번에 쏟아냈다.
소식통은 대답했다. 카페가 코로나 이후로 계속 매출이 떨어져 더 이상 버틸 수 없어서 폐업하기로 했답니다.
직원들의 입에서 탄식이 새어 나왔다. 이제는 습관처럼 밀고 들어가던 카페 안으로 들어가는 일이 더 이상 없을 거라는 생각에 당혹스럽고 아쉬운 표정들이었다.
이제까지 모아놓은 쿠폰은 어떻게 하죠? 누군가 쿠폰 얘기를 꺼냈다. 거의 모든 직원이 쿠폰을 모으고 있었으니 상당히 모였을 거라는데 생각이 미친 것이다. 사람들은 쿠폰을 오늘까지 사용하러 가자고 얘기를 한다. 어떤 사람은 미리 사용할 수 있도록 안내도 하지 않고 폐업하다니 너무 한 거 아니냐고 성토를 하기도 했다.
가장 나이가 많은 선배가 입을 열었다. 이 분은 회사 직원 중 카페에 충성도가 가장 높은 사람이다. 매일 커피를 두 세 잔씩 꼭 그 카페에서만 마셨으니 아마 VVIP 고객쯤 될 것이다.
" 그냥 둡시다. 장사가 안돼서 문을 닫는데 쿠폰 가지고 가서 무료 음료 받아 오는 거 좀 그렇죠"
선배의 말에 다들 아차하는 표정이었다. 맞는 말이었다. 우리 입장에서야 그 쿠폰에 찍힌 스탬프만큼 권리를 살뜰히 챙기고 싶지만 카페의 딱한 사정을 생각한다면 인정머리 없는 아이디어였다.
사람들이 회의 테이블에 둘러 앉아서 아쉬움을 토로했다. 그 카페와 함께 한 세월이 벌써 10년을 넘었다. 그냥 단순하게 카페가 사라지는 것 같지 않다고 누군가 말을 했다. 그 카페에서 보냈던 익숙한 시간과 숱한 추억까지 사라지는 것 같다고 말이다. 항상 가까운 곳에 자리를 지키고 있던 그 곳이 이제 없어진다고 하니 얼마나 특별한 곳이었나 다들 비슷한 심정이라고 말을 했다.
손에 닿을 듯 가까이 있는, 가장 편하고 익숙한 것의 존재를 다시 생각해 본다. 우리는 얼마나 익숙한 것의 고마움을 잊고 사는걸까. 그 존재를 완전히 잊고 있다가 갑작스런 부재에 당면하고서야 그 존재에 대한 고마움을 되집어 보는 안타까운 자신과 마주치는 것이다. .
이제 그 카페가 사라진 자리에는 무엇이 들어올까. 유민상을 닮은 카페 사장님은 어디로 떠나는 걸까. 미처 묻지 못한 질문과 건네지 못한 안부 인사가 입가에서 맴돈다.
부디 작은 실패가 큰 상처가 되지 않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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