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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느리게 걷기 Apr 05. 2021

국밥 한 그릇, 사소하지 않다.

사람 사이의 관계란 신기한 속성을 가지고 있다. 아주 사소한 일로 인해서 그 사람이 좋아지기도 하고 아주 사소한 일로 그 사람이 싫어지기도 한다. 생각해 보면 나에게 좋은 사람으로 기억되는 그 사람이 어떤 계기로 좋은 사람이 되었는지 설명하기 어렵고 마찬가지로 나에게 부정적인 사람이 어쩌다가 그런 이미지를 갖게 되었는지 설명하기 어렵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아주 사소한 것일지라도 혹은 유치한 것일지라도 쉽게 잊지 못하는 기억이 실재하고 그 기억 때문에 그 사람과의 관계를 그냥 끊어내고 싶어 진다는 것이다.


 과학기술부에서 점검이 나왔다. 내 업무 중에는 과기부에서 내려주는 규정이나 지침을 각 팀에서 잘 이행할 수 있도록 시달하고 전달하는 업무가 있다. 매년 달라지는 복잡한 법 규정을 해석하고 실무자들이 잘 이행할 수 있도록 교육하는 일도 포함된다. 그러나 내 업무는 거기까지다. 실제 규정을 이행하고 체크리스트를 보관하는 것은 각 팀의 실무자들이 해야 할 일이다.


 이번에는 내 업무의 경계를 가뿐히 넘어서서 일에 매달렸다. 그 이유는 여러 가지였다. 일단은 작년 그 팀 점검 결과가 좋지 않았기 때문이고 그 팀 직원들이 과기부 공무원들의 대답에 대응을 잘 못하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내가 그 팀 직원들하고 각별히 친하기 때문에 기꺼운 마음으로 일을 도와야겠다는 생각을 한 것도 이유였다.


 점검은 오전 내내 계속되었고 점심시간이 되었다. 이런 상황에서는 보통 그 팀의 팀장이나 차석이 법인카드 혹은 개인카드로 점심을 사는 것이 일반적이다. 나도 당연히 같이 식사를 하러 가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 팀의 직원들은 나에게 같이 가자는 말도 없이 가 버렸다.


 나중에 보니 다른 기관에서 온 여직원 한 명은 챙겨서 나간 모양이었다. 그 순간의 화끈거림을 뭐라고 설명할 수 있을까. 그냥 바보처럼 말없이 기다린 것도 아니었다. 그 팀의 차석에게 전화를 해서 1층에서 기다리고 있겠다는 말도 전했다. 그런데  그 사람들이 무신경한 탓인지 아니면 전혀 나의 존재를 생각하지 못했는지 우물쭈물 서 있는 나를 보고서도 자기들끼리 몰려서 나가 버렸다. 그 자리에 서 있는데 말할 수 없이 부끄럽고 창피한 생각이 들었다. 누가 나를 지켜보고 있는 것도 아닌데 나는 얼굴이 붉어졌다.


 그들은 국밥을 먹고 돌아왔다. 밥 한 그릇, 고작 7천 원짜리 국밥 한 그릇에 이토록 마음이 상하다니 참으로 이상한 일이었다. 그러나 생각하면 단순히 7천 원으로 설명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 며칠 동안 같이 서류를 준비하고 출력물을 챙기면서 지원을 했는데 밥 먹자는 말 한마디 듣지 못하고 그 자리에 남겨진 것은 꽤나 상처가 되는 일이었다. 무안하고 어색한 감정은 꽤나 오랫동안 내 얼굴에 달라붙어 있었다.


 나는 그 팀을 특별하게 생각했었다. 작년에 개인 표창으로 상금 20만 원이 나왔을 때 그 팀 직원들을 데리고 가서 점심을 산 일도 있었다. 애써 섭섭한 감정을 잊으려고 밖으로 나왔는데도 쉽게 마음이 풀리지 않았다. 이제는 그 팀 일에 내 일처럼 뛰어들지 말아야겠다. 도와 달라고 전화가 오면 만사 제치고 달려가지 말아야겠다. 그런 다짐을 나도 모르게 하고 있었다. 마치 혼자만 생일 초대를 받지 못한 꼬맹이처럼 나는 그렇게 오래도록 약이 오르고 분한 심정을 느끼고 있었다.


정 반대의 일도 있었다. 요일마다 근무지를 옮기면서 일을 하다 보니 공교롭게도 금요일에는 혼자서 일을 할 때가 종종 있다. 낮은 파티션을 경계로 해서 옆 팀에는 10명 남짓의 직원들이 앉아 있고 우리 쪽 파티션에는 나 혼자 앉아 있다. 금요일 오후가 되면 다들 느긋해지는 지라 그들은 자주 모여서 과자를 먹으며 티타임을 벌인다


 그럴 때마다 민망할 때가 있다. 여러 사람들이 모여서 웃고 떠들고 있을 때 혼자 모니터 앞에 앉아서 일하는 것은 참으로 고역이다. 떠들고 있는 그들은 내가 일하는 소리가 거슬리고 일하는 나는 그들의 떠드는 소리가 거슬린다. 그럴 때마다 나는 왕따나 은따의 심정이 이런 건가 하는 생각을 해 본다.


 게다가 내가 수석팀이자 인사팀 소속이다 보니 직원들은 나를 어렵고 비밀스러운 존재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럴 때마다 나는 조용히 키보드를 두드리며 모니터 아래로 고개를 낮춰서 나의 존재를 숨긴다. 그 장소에 있어서는 안 되는 존재라도 되는 것처럼 숨을 죽이고 말이다.


그럴 때마다 과자나 초콜릿을 들고 내 자리로 오는 직원이 한 명 있다. 좀 쉬면서 하세요 하는 다정한 인사를 건네면서 말이다. 그때서야 사람들은 내 존재를 알았다는 듯이 한 마디씩 인사를 하거나 과자를 권한다.


 그러면 나는 불편한 커튼 뒤에서 나온 것처럼 조금 편해진다. 그리고 초콜릿을 뜯어서 입 안에 넣고 우물거린다. 그런 시간이 지나면서 나는 그 직원에게 특별한 감정을 느꼈다. 나를 배려하고 챙겨준 것에 대한 감사한 마음 말이다. 나는 가끔 집에서 특별한 간식을 가져오거나 음료수를 가져올 일이 있으면 그 직원을 챙기게 된다.


 초콜릿 하나, 과자 하나를 받았을 뿐이지만 내 기억에는 단순한 과자가 아닌, 그 직원의 따뜻한 배려와 관심을 받았다는 기억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어릴 때는 40이나 50이 된 어른이 과자나 초콜릿 같은 걸로 감정이 상하거나 기분이 나빠질 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그 정도 나이가 되면 지혜롭고 원숙해져서 고차원적인 일만 생각하고 철학적인 문제만 고민할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나이가 들고 육체가 늙어가도 정신이 같이 늙어가는 것은 아닌 것 같다. 초콜릿 하나에 행복해지기도 하고 국밥 한 그릇에 마음을 다쳐서 며칠 속앓이를 하기도 하니 말이다.


사람을 대할 때는 특히 먹는 것으로 마음을 상하게 하지 말라는 교육을 어릴 때부터 받았다. 무엇이든 나눠 먹고 공평하게 나눠 줘서 먹는 것으로 마음을 다치게 하지 말라는 말씀이었다. 국밥 한 그릇의 소외감으로 며칠 속상해하는 나를 보고 있자니 그 말이 참으로 옳은 말이라는 생각이 든다.


  한편으로 민망한 웃음이 나오고 한편으로 생각이 많아진다. 사람을 좋아하는 것과 좋아하던 사람을 더 이상 좋아하지 않게 되는 일, 모두 엄청난 일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다. 아주 작고 사소한, 그래서 미처 기억하지도 못하고 흘려버리는 그런 사소한 것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국밥 한 그릇, 초콜릿 한 개, 결코 사소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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