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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느리게 걷기 Apr 25. 2021

택배를 기다리는 마음

 우리 옆집에는 60대 초반의 부부가 살고 있다. 원래는 20대 후반쯤으로 보이는 아들 둘이 같이 살았는데 얼마 전 결혼을 해서 분가를 했다.

  아줌마는 얼마 전부터 매일 뭔가를 주문한다. 퇴근하고 엘리베이터에서 내리면 옆집 앞에 쌓여 있는 택배 박스를 마주치게 된다. 크고 작은 박스와 비닐 포장지에 들어 있는 물품까지 택배 물건은 다양하다. 어느 날은 10개 가까이 박스가 놓여 있는 적도 있고 어느 날은 대여섯 개일 때도 있지만 일관된 사실은 택배가 끊이지 않고 온다는 것이다. 나는 가끔 현관문 앞에 서서 아줌마에 대한 오지랖을 부리기도 한다. 이 정도면 쇼핑 중독 아닐까. 너무 많은 택배를 시키는 아줌마가 가끔 걱정스럽다.


   그런데 우리 집 현관문 앞의 풍경이 달라졌다. 옆집의 풍경은 그대로다. 아줌마는 아마도 일관된 쇼핑 패턴을 유지하고 있는 것 같다. 그런데 우리 집 앞에도 옆 집 못지않게 매일 택배 박스가 쌓이기 시작했다. 가끔은 문을 막고 있어서 옆으로 밀고 문을 열어야 할 때도 있다.


   남편은 얼마 전부터 불면증이 생겼다. 회사에서 벌어지는 정치와 파벌 싸움에 진저리가 난다고 했다. 그러더니 인터넷 쇼핑으로 뭔가를 주문하기 시작했다. 남편이 처음 주문한 물건은 계란찜기였다. 계란찜기는 8개의 계란을 올려서 찌는 물건으로 동그란 플라스틱으로 되어 있다. 그것은 작고 조잡해 보이는 물건이었다. 남편은 삶은 계란과 찐 계란은 식감이 다르다고 강조했지만 내 입에는 그놈이 그 놈이었다.

  두 번째는 와플 펜이었다. 남편은 와플을 집에서 구워 먹는 게 유행이라고 하면서 브랜드도 없는 저렴한 와플 펜을 주문하더니 몇 번 홀랑 태워먹고 싱크대 깊숙한 곳에 처박아 놓았다.

 지난주는 더 다양한 물건들이 도착했다. 남편은 10개짜리 유리 커피잔을 주문했고 색색의 우산 세트, 캠핑 갈 때 사용할 소형 전기매트, 종아리 마사지기, 악력 운동기를 주문했다. 계란을 원하는 모양으로 프라이할 수 있는 계란 틀까지 주문했는데 도대체 이 물건이 왜 필요한지 나는 한참을 고심했다.

 이렇게 우리 집과 옆 집은 경쟁하듯이 물건을 주문하고 있다.


  회사에 남자 팀장 S가 있다. 그는 늘그막에 해외직구 쇼핑에 빠졌다. 이틀이 멀다 하고 미국에서 신발과 티셔츠와 시계를 주문한다. 나중에는 와이프가 경고하는 바람에 집으로 택배를 받을 수 없는 지경이 되었다. S팀장은 할 수 없이 회사로 물건을 받고 캐비닛에 물건을 보관한다. 가끔은 사이즈에 실패한 옷이나 신발을 꺼내서 미니 벼룩시장을 열기도 한다. S팀장에게 왜 그렇게 쇼핑을 하냐고 물었더니 그 낙에 살고 있다고 자조적으로 답한다. 쇼핑이 그만큼 재밌다는 것은 사는 재미가 그만큼 없다는 거겠죠. 그는 말했다.


 나도 한때 쇼핑으로 밤을 지새우던 적이 있었다. 회사는 실적으로 줄을 세웠고 퇴근하고 오면 집은 7살, 4살짜리가 기다리고 있는 또 다른 일터였다. 그때 나의 유일한 낙은 아이들을 다 재우고 밤늦게까지 하는 인터넷 쇼핑이었다. 필요도 없는 바람막이와 운동화를 주문하고 새로운 간식거리를 검색하면서 일상에 덕지덕지 묻은 고단한 스트레스를 해소해 보려고 했었다.


    채울 수 없는 외로움과 무기력함을 느낄 때 사람은 컨트롤할 수 있는 세계로 들어가고 싶어 한다. 그것이 때로는 쇼핑의 형태가 되기도 한다. 자신이 가진 경제적 범위 안에서 마음대로 무언가를 고르고 주문하고 그것이 도착하기까지의 기다림이 짧은 설렘을 안겨주고 선물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가끔 인터넷 쇼핑을 '내가 나에게 주는 선물'이라고 부르는 것이 아닐까.  


 그럴 때 택배박스는 그냥 직육면체의 종이 상자가 아니다. 택배는 기다림이고 설렘이고 작은 행복이 되기도 한다. 쇼핑에 열을 올리는 옆 집 아줌마, 불면의 밤을 쇼핑으로 달래고 있는 나의 남편, 아내 몰래 회사 캐비닛에 쇼핑 물품을 정리하고 있는 S팀장, 밤잠을 설치며 인터넷 주문창을 띄워놓던 과거의 나.  

결핍을 가지고 있는 우리 모두에게 택배는 잠깐의 위안을 건네준다.    


  택배를 기다리는 그 마음이 어쩌면 바깥에서 누군가를 기다리는 마음과 닮았다는 생각이 든다. 그 기다림이 너무 막막하고 길지 않기를 바래본다



사진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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