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의 병은 죽을병이 아니었다. 다만 눈이 조금 불편해졌고, 주기적으로 병원을 다녔으며, 약을 먹기 시작했다. 여전히 남편은 직장을 다녔고 큰 틀에서 내 일상은 여전했다. 그냥 가끔, 사소한 일에서 변화를 느끼곤 했다. 옷을 살 때 사이즈표를 대신 봐준다거나 자막이 있는 영화를 점점 멀리하게 되었다. 그간 남편이 주구장창 마셔오던 음료수도 모두 버려버렸다. 같이 아이스크림 무인가게에 가는 게 취미였는데 그것도 그만뒀다. 시골에서 매년 받아먹던 흰쌀을 더는 먹지 않게 되었고, 나는 흔히 '집밥'이라 불리는 메뉴들을 요리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일상이 조금 달라졌을 뿐이다.
광고영업회사로 이직 후 술자리가 잦아졌다. 업무강도는 현저히 낮아졌지만 다른 이유로 퇴근이 늦었다. 보통 그 자리에서 나는 막내였고 분위기를 띄우기 위해 열심히 술을 마셨다. 광고주들은 항상 '이런 인재를 어디서 구했대'라고 말하며 대표님을 띄워주었고, 나는 그럴 때마다 그들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더 열심히 노력했다. 한 날은 여의도에 있는 바에 갔는데 이른 시간이라 무대가 비어있었다. 조용하니 분위기가 처졌다. 그때 내가 택한 건 무대로 올라가는 거였다. 나는 어릴 적 8년간 피아노를 배웠고 한때 피아니스트를 꿈꾸기도 했다. 남들보다 재능이 없다고 생각해 포기했던 피아노인데 그 장기를 이럴 때 써먹을 줄이야. 15년 만에 건반 위에 손을 올렸는데 신기하게도 음악이 흘러나왔다. 한때 좋아했던 노래, 더 클래식의 <마법의 성>이었다.
언제나 너를 향한 몸짓엔 수많은 어려움뿐이지만 그러나 언제나 굳은 다짐뿐이죠 다시 너를 구하고 말 거라고 . . 우리 앞에 펼쳐질 세상이 너무나 소중해 함께 있다면
남편이 수술을 받은 그 시기에 시부모님의 경제상황도 나빠졌다. 없는 돈을 쪼개서 시부모님에게 2천만 원을 빌려드렸다. 아빠에게 빌린 5천만 원은 목돈이 생길 때까지 이자만 보내는 걸로 이야기를 마쳤다. 언젠가부터 술에 취해 퇴근을 하면서 우는 버릇이 생겼다. 술이 깨면 울었다는 사실만 기억할 뿐 눈물의 이유를 알 수 없었다. 남들처럼 흔한 주사겠거니 생각했다. 결혼 후부터 서서히 찌기 시작한 몸무게는 어느덧 20kg이나 불어 있었다. 남편과 연애 때는 55kg을 유지하며 지냈었다. 55사이즈, 66사이즈 그리고 77사이즈까지 버겁게 된 후에야 심각한 몸 상태를 깨달을 수 있었다.
어느 날 대표님과 연말회식으로 낮술을 마셨다. 보통은 밤에 취해서 퇴근을 하다 보니 혼자 울고 말았는데, 그날은 낮에 취해서 퇴근을 하게 되었다. 길을 걷다 문득 아빠생각이 나 전화를 걸었다. 그리고 기억도 나지 않는 혼잣말을 하면서 이유 없이 계속 울었다. 아빠도 생전 처음 있는 일에 적잖이 당황을 했다. 그리고 그날 밤, 숙취에 찌든 몸을 일으키면서 '나 뭔가 잘못되어가고 있구나'를 깨달았다. 남편에게 정신과를 방문해 보겠다고 했다. 보수적인 남편은 그런 곳에 꼭 가야만 변하냐며 핀잔을 주었다. 결국 몰래 심리상담센터를 방문했다. 상담실 문을 열고 들어가는데 이미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BGT, HTP, K-WAIS-IV, Rorschach, SCT, MMPI-2까지 다양한 검사를 받았다. 내 상태는 일종의 번아웃 증후군이었다.
[일부]
- 기존의 지식을 활용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상황에서 융통성과 인지적 유연성을 발휘해 새로운 지식을 형성하거나 즉각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이 상대적으로 원활하지 않다. 특히, 시각 자극을 가이드라인에 따라 구성하는 시각-운동 협응 및 통합 능력은 '경계선' 수준으로 낮다.
- 일상에서 거의 즐거움을 얻지 못하며 때로는 삶의 가치에 대해 의문을 느끼기도 한다.
- 타인에 대해 믿기 어렵고 이기적이며 배려심이 없다고 보는 냉소적인 태도로, 현재는 사회적 회피 수준도 증가해 사회적 상황을 적극적으로 피하고자 할 수 있다.
- 투사검사에서는 모호하고 불확실한 상황 자체를 스트레스로 느끼며 탐색 자체를 포기하는 경향이 나타났다.
"자기 욕구에 대한 탐색을 통해 스스로 만족하고 충족감을 느낄 수 있는 경험을 일상에서 증진시킬 필요가 있다"가 결론이었다. 남편에게 비밀로 한채 첫 상담과 검사까지 마쳤다. 하지만 지속적인 상담이 필요하다는 결과가 나왔고 당분간 다녀보기로 했는데 생각보다 비용이 컸다. 남편에게 상의를 할 수밖에 없었다. 심리 평가 보고서를 내밀며 다녀도 되겠냐고 물었다.
"네가 거길 가는 게 해결책이라고 확신을 한거면 받아봐. 대신 나한테는 굳이 다니는 거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끝까지 남편은 상담 결과지를 열어보지 않았다. 과연 우리부부에게 미래가 있을까? 많은 생각이 들었다. 거기다 꽤 많은 돈을 들여 3달간 상담을 받아봤지만 바뀌는 건 크게 없었다. 금전적인 부담을 안고 상담을 받다 보니 오히려 '다른 데서 돈을 아껴야겠다'는 쓸데없는 잡념만 늘어갔다. 할머니가 오랫동안 알코올 의존증을 앓고 있다. 상담센터에서 유전적 요인이 없다고 보기 어렵다며 금주를 권했다. 생각해 보면 아빠도 20-30대 시기에 주사가 꽤 심해서 엄마를 고생시켰다. 그 사실을 받아들이고 나니 술을 끊는 게 조금은 쉬워졌다. 나는 이직한 지 1년 만에 다시 퇴사를 했다. 그리고 자기 욕구에 대한 탐색을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