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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윱맹 Oct 11. 2024

내 무릎 위 고양이, 김말이

위기를 기회로 (2)

이른 나이에 결혼을 하고 꽤 오랫동안 아이를 갖지 않자, 지인들은 우리를 '딩크족'이라 불렀다. 정확히 말하자면 우리부부는 '강제 딩크족'이었다. 결혼 이후부터 피임을 하지 않았음에도 아이가 생기지 않았다. 물론 임신을 적극적으로 준비한 적도 없긴 했다. 사는 게 너무 바빴고 우리는 아직 젊었다. 난임을 걱정하게 된 건 그로부터 꽤 오랜 시간이 지난 뒤였다.




나는 동물공포증이 심했다. 어릴 적 큰 개에게 쫓긴 후부터 동물만 보면 온몸이 떨렸다. 반려견을 키우는 친구들 집에는 가본 적도 없고, 길에 지나가는 아주 작은 강아지만 봐도 먼 길을 돌아가거나 지인들 뒤에 숨어 지나가곤 했다. 하물며, <동물농장>을 보면서도 종종 공포영화를 보는 것 같은 쫄깃한 감정을 느꼈다. 그나마 길고양이는 다가오지 않아 덜 무서워했는데 그럼에도 귀엽다거나 챙겨주고 싶다는 생각조차 들지 않았다. 그러니 나는 이번 생에서 반려동물과는 인연이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프리랜서로 전향 후 시간적 여유가 생겼다. 여유가 생기면 우울 같은 건 금방 사라질 줄 알았다. 하지만 나에게는 평온한 일상이 과분하다는 듯 우울은 이유 없이 불쑥 튀어나와 나를 괴롭혔다. 원래는 사람을 만나고 술을 마시면 금방 해결되었는데, 코로나19 시기라 그마저도 어려웠다. 바쁘기라도 하면 잊어보겠는데 가만히 있으니 우울에게 잡아먹힐 것만 같았다. 마지막으로 심리상담센터에 방문한 날, 갑자기 나쁜 생각이 들면 주저 없이 연락을 달라며 명함을 주셨다.


나는 죽고 싶지 않은데, 우울증이라고?


나는 끝까지 내 우울에 '증'이란 문자를 붙이지 않았다. 뚜렷하게 보이는 건 없지만 그럼에도 죽는 것보단 사는 게 훨씬 낫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맘때 친한 친구가 회사 앞 고양이들에 대해 얘기하기 시작했다. 험한 길에서 꿋꿋하게 살아가는 동네고양이들의 모습을 보니 위로가 되었다. 가서 보거나 만지는 건 여전히 싫었지만 랜선이모 같은 마음이 생겼다.


친구가 그 고양이들의 중성화 수술을 돕다가 한 고양이의 임신 사실을 알게 되었다. 중성화를 시키려다 얼떨결에 출산을 돕게 된 것이다. 그 고양이에게서 4마리의 새끼가 태어났다. 어쩌다 보니 친구가 새끼들의 입양을 맡게 되었다. 3마리는 순차적으로 입양을 보냈는데 남은 한 마리는 입양되지 못한 채 임시보호처에서 친구의 집까지 넘어오게 되었다. 하지만 친구는 이미 원룸에서 2마리의 고양이를 키우고 있었다. 이 상황을 계속 전해 듣다 보니 입양을 못 간 아이에게 눈길이 가기 시작했다.


나는 남편에게 지나가는 말로 그 고양이가 눈에 밟힌다고 얘기했다. 남편은 동물을 무서워하지도, 싫어하지도 않았다. 다만, 가족이 된 반려동물의 마지막을 마주하는 게 두렵다고 했다. 그건 나도 동의했다.


"그렇게 신경 쓰이면 입양될 때까지 임시보호만 하겠다고 해봐."


처음에 친구는 날 보며 걱정했지만 남편이 동물에 대한 거부감이 없다고 하니 보내겠다고 했다. 우리는 고양이를 놓고 업무분담을 했다. 내가 밥, 물, 화장실을 담당하고 남편이 놀이와 만지는 걸 책임지겠다고 했다. 그렇게 그 녀석이 우리집에 왔다.


2020. 11, 첫 만남


거실 한구석에 고양이존을 만들어 놓았다. 녀석은 삐쩍 마른 몸에 색상도 무늬도 무엇 하나 뚜렷한 게 없었다. 처음에는 구석에서 나오지도 않던 녀석이 1시간 뒤부터 화장실도 가고 밥도 먹으며 움직이기 시작했다. 남편과도 곧잘 놀더니 하루 만에 제 집처럼 집안을 편하게 돌아다녔다. 나는 녀석이 안 보이면 불안했고 (언제 날 덮칠지 모른다는 생각에) 항상 먼발치에서 눈으로 좇고 있었다. 과연 우리는 친해질 수 있을까? 솔직히 안 친해져도 그만이라 생각했다.


입양될 때까지 편하게 있다 가렴, 고양아.


두 번째 밤, 안방 문을 닫고 자는데 거실에서 녀석이 계속 울어댔다. 남편은 자면 누가 업어가도 모를 만큼 깊게 자는 스타일이라 결국 내가 거실로 나섰다. 방문을 여니 녀석이 울음을 그치고 말똥말똥 나를 쳐다봤다. 나는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해 담요로 온몸을 감싸고 앉았다. 주변을 맴돌던 녀석이 내 무릎 위이자 담요 위로 철퍼덕 누웠다. 등줄기에 식은땀이 흘렀다.



뱀이 허물을 벗듯, 나는 담요만 남긴 채 쏙 빠져나왔다. 녀석은 피곤한지 담요에 묻혀서 꾸벅꾸벅 졸았다. 지금 보니 담요로 너무 감싸놔서 못 빠져나온 건가 싶기도 하다. 녀석은 졸다가도 내가 방으로 들어가면 금세 일어나 울기 시작했다. 그럼 나는 또 거실로 나왔다. 이렇게 반복하다 보니 새벽 5시가 되었다. 이제는 나도 녀석과 같이 졸기 시작했다. 졸음이 녀석에 대한 무서운 감정을 이겨버렸다. 나는 거실에 앉아서 그대로 아주 푹 잤다. 그리고 놀라서 번쩍 눈을 뜨니 녀석이 내 무릎 위에 올라와있었다. 그리고 수면잠옷에 꾹꾹이를 했다. 나는 피하지도 못한 채 강제로 솜방망이 같은 안마를 받았다.



저 눈을 어떻게 안 무서워할 수 있겠나. 그런데 자면서 최면이 걸린 건지 뭔지 녀석을 봐도 아까만큼 무섭지가 않았다. 나는 그렇게 하루하루 녀석에게 스며들었다. 마침내 10일이란 시간이 지나고 우리집에는 캣폴이 설치되었다. 그걸 본 친구가 놀라서 '너 설마 입양하려고 하는 거야?'라고 물었다. 사실 입양이란 대단한 단어까지 생각한 적은 없었고 녀석이 심심해 보여서 나도 모르게 그 커다란 물건을 사버린 것이었다. 친구가 "입양"이란 단어를 꺼낸 순간, 나는 내 마음을 깨달았다. 녀석은 우리집에 온 순간부터 이미 내 가족이었다.



그 후로도 얼마동안 나는 녀석을 안거나 발톱을 깎기거나 양치를 시키지 못했다. 그렇지만 모든 건 시간이 해결해 주었다. 나는 녀석의 이름을 내 성을 따서 '김말이'로 지어주었다. 반려동물의 이름을 음식 이름으로 지으면 오래 산다는 미신을 믿기로 했다. 남편은 반려동물의 죽음이 제일 두렵다고 했으니 나는 이 녀석을 장수묘로 키워볼 생각이다. 김말이는 얼마 전 4번째 생일을 보내고 건강한 5살을 맞이했다.



김말이가 우리집에 온 이후부터 나는 더 이상 혼자 일하는 프리랜서가 아니었다. 녀석은 컴퓨터 책상 위에 앉아 매일 나와 함께했다. 갑자기 불쑥 우울이 찾아올 때 나는 녀석에게 말을 걸었다. '지금 이거 때문에 우울해진 거 같은데 조금 지나면 또 괜찮아지겠지?' 그럼 녀석은 내 손등에 을 비볐다. 말이의 등을 쓰다듬으면 세상 모든 근심걱정이 사라졌다. 요즘 유행하는 싱잉볼을 볼 때마다 말이의 등이 떠올랐다. 그렇게 우리는 기쁠 때나 슬플 때, 모든 순간을 함께 했다.




우리부부는 우리가 난임상태인 걸 어렴풋이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걸 직면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첫 번째로는 난임의 원인이 남편에게 있다는 것과 두 번째로는 나는 임신보다 남편의 건강이 먼저였다. 그래서 임신을 영영 포기할까 생각하던 시기도 있었다. 하지만 그때마다 김말이라는 존재가 너무 소중해서, 우리가 주고받은 사랑이 너무나 커서 새 생명에 대한 기대를 놓을 수 없었다. 머지않아 말이에게 받은 사랑을 나눌 수 있는 새 생명이 찾아오길 바라본다.


말이야, 사랑해

말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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