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8월, 친구 결혼식에서 남편과 함께 축가를 불렀다. 원래 친구에게 축사를 해주기로 했지만 혼자 무대에 올라가는 게 생각보다 더 부담이 됐다. 특히 나는 눈물이 많아서 적어온 글을 읽는 거 자체가 불가능할 거 같았다. 남편은 노래를 워낙 잘해서 여러 지인에게 축가를 불러준 경험이 있었다. 원래 무대체질이기도 했다. 그래서 남편에게 같이 축가를 부르자고 했다. 듀엣을 한다고 생각하면 보통 외울 가사도 적고, 부를 구간도 적어 편하겠다 싶었지만 오히려 더 어려웠다. 비슷한 가사들이 반복되는 노랫말 속에서 내가 부를 타이밍을 잘 찾아서 불러야 하고, 일정 부분 서로 화음을 맞춰야 했다. 처음 불러보는 축가였기에 그런 부분까지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남편의 우안은 치료시기를 놓쳤지만 실명만큼은 막아냈다. 다만 당장 재수술을 하기에는 위험해서 2020년부터 쭉 경과를 지켜보고만 있었다. 그러던 중 좌안에서도 망막박리가 진행되기 시작했다. 눈은 수술을 하는 순간부터 마이너스라고 생각하면 된다. 원래대로 돌아간다거나 더 좋아지길 기대할 수 없는, 정말 예민하고 까다로운 신체부위가 아닐 수 없다.
"수술이 꼭 필요하기 전까지는 추적검사만 하면서 최대한 버텨봅시다."
의사선생님의 조언대로 남편은 수술을 최대한 미뤘다. 그 사이 아바스틴 주사를 맞고 몇 번의 레이저 광응고술을 받았다. 그렇게 버틴 지도 어언 3~4년이 흘렀다. 우리는 수술을 받아야 하는 날이 머지않았다는 걸 직감했다. 남편이 쓰던 안경을 벗고 지내기 시작했다. 써도 눈앞이 잘 안 보인다고 했다. 축가를 연습하러 코인노래방에 갔지만 남편은 화면 속 가사를 잘 읽어내지 못했다. 집중해야 그나마 보일 텐데 가사는 노래에 맞춰 빠르게 나타났다가 사라졌다. 내가 선창을 하고 남편이 뒤따라 불러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가사암기, 화음, 타이밍 등 연습하는데 많은 우여곡절을 겪었다.
결혼식 당일, 혹시나의 상황에 대비해 큰 글씨로 가사를 프린트해갔다. 하지만 무대를 향해 내리쬐는 조명 때문에 보면대 위 종이가 잘 보이지 않았다. 특히 남편은 빛 번짐에 취약해 정면을 보는 것도 어려웠고, 결국 종이를 손에 든 채 축가를 불러야 했다. 얼굴을 찌푸리며 종이에 집중을 해야 겨우 가사가 보이는 수준이었다. 다행히 우리부부는 가사를 보지 않고도 외웠던 대로 축가를 잘 불렀다. 서로가 들어가야 하는 타이밍도 사전에 준비한 눈맞춤도 잘 해냈다. 하지만 남편은 평소와 다른 몸상태 때문인지 무대에 만족하지 못했다. 나는 축가를 끝낸 후 뿌듯함을 느꼈지만 남편은 아쉬움에 표정이 좋지 않았다. 괜히 무리한 부탁을 한 거 같아 미안했다.
남편의 눈에 실핏줄이 터지는 날이 늘어갔다. 덩달아 시야도 불편해졌다. 회사에서 일을 처리하는 속도도 느려졌다. 본인의 건강 때문에 다른 사람에게 폐를 끼치기 싫었던 남편은 집으로 일을 갖고 오기 시작했다. 돋보기 프로그램을 켜고 엑셀에 적힌 숫자를 하나하나 보고 있는 남편의 모습을 지켜보는 게 힘들었다. 나는 남편의 서류작업을 돕기 위해 남편네 회사의 업무를 배웠다. 내 일을 스스로 조율할 수 있는 프리랜서로 전향하길 참 잘했다는 생각을 했다. 남편은 회사에서도 서류에 고칠 부분이 있으면 팀원 대신 나를 찾았다. 하지만 그것도 오래가진 못했다. 수술이 결정되면서 남편은 회사를 쉬어야만 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