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극을 대하는 태도 - <그을린 사랑> 리뷰

분노와 복수의 굴레를 끊는 방법

by 동물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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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그을린 사랑>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그을린 사랑>의 원제는 <Incendies>다. 이는 프랑스어로 큰불, 화재를 뜻한다. 더불어 전쟁 중의 상황을 표현할 때도 이 단어를 사용한다고 알려져 있다. 이처럼 <그을린 사랑>은 화염에 휩싸인 전란의 이미지를 떠올리게 한다. 이를 본 자연스레 관객은 미디어에서 자주 접했던 “전쟁 영화”의 전형적인 이미지를 상상할 것이다. 하지만 <그을린 사랑>은 전쟁을 스펙터클로 표현하며 소비하는 장면을 보여주지 않는다. 오히려 영화는 전체적으로 조용하게 진행되며, 주인공인 나왈이 품고 있던 진실에 서서히 다가가는 일종의 로드무비 형식을 보인다. 관객은 나왈의 쌍둥이 자녀인 잔느와 시몬이 어머니가 남긴 유언에 따라 그녀의 족적을 밟으며 진실에 다가서는 여정을 함께 체험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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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왈의 진실이 드러남에 따라, 우리는 자연스레 오이디푸스 신화를 떠올릴 수밖에 없다. 오이디푸스 신화의 핵심은 “진실을 모른 채 행한 일에 대한 책임”으로 요약 가능하다. 신화에서는 ‘진실을 모른 채 행한 일’을 아들이 어머니에게 행한 근친 행위로 든다. <그을린 사랑> 또한 나왈의 아들인 나하드가 고문 기술자로 나왈을 만나 행한 강간과 이의 결과로 태어난 잔느와 시몬 쌍둥이 모두 오이디푸스 신화적 요소를 차용한 부분이라 볼 수 있을 것이다.


오이디푸스 신화는 말 그대로 신화이며, 일종의 은유로 독해 가능하지만, <그을린 사랑>에서 나타나는 전시 상황의 영향으로 인한 나왈의 개인적 비극은 “현실”이다. 정확히 영화 내에 명시되진 않지만, 영화의 배경은 실제 일어났던 레바논 내전을 다룬다. 이는 신화나 은유가 아닌 실제로 벌어진 상황인 것이다. 이렇듯 인물이 감내해야만 했던 비극은 스크린을 넘어 현실이 되어 관객에게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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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극의 시발점은 어디일까. 종교 갈등이라 할 수도 있을 것이고, 나왈의 가문과 종교가 달랐지만 서로 사랑했던 무슬림 난민 와합에게 가해진 명예살인이었을지도 모른다. 혹은 전시 상황 그 자체를 꼽을 수도 있을 것이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인지는 정확히 따질 수 없다. 하지만 명백한 사실은 종교 갈등으로 인해 상대를 해하고, 그에 따른 복수를 하는 과정이 반복되었다는 것이다. 신을 앞세워 명분을 만들고 인간을 살상한다는 것은 종교적 가치를 실현하는 방법이 될 수 없다. 이미 종교는 인간을 떠났고, 사라진 것이나 다름없는 것이다. 신의 이름으로 행한 모든 것들의 피해는 고스란히 인간이 떠안게 될 뿐이다.


나왈은 이 모든 비극의 직접적 피해자였다. 하지만 영화의 종반부, 그녀는 결국 사랑과 용서를 택했다는 것이 드러난다. 나왈의 모든 진실을 직면한 잔느와 시몬은 자신의 아버지이자 형제인 나하드에게 편지를 전달한다. 그 편지는 나왈이 직접 고문 피해자로서 쓴 편지와 어머니이자 쌍둥이의 아버지에게 쓴 편지 각 두 편이었다. 후자의 편지에서 나왈은 나하드를 사랑으로 용서한다며 직접적으로 언급한다. 이는 전쟁의 비극과 그 모든 분노의 고리를 끊는 인류애적 사랑이자, 가장 이상적인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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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영화가 택한 엔딩을 다른 시각으로 본다면 조금의 우려를 품게 한다. <그을린 사랑>은 실제 내전을 모티브로 하였지만, 픽션 영화이다. 스크린 밖으로 눈을 돌린다면 실제 레바논 내전을 겪은 피해자들이 존재한다. 또한, 2025년 현재까지도 내전이 지속되고 있는 국가가 있으며,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전쟁도 진행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전쟁의 모든 피해자는 각자의 상황이 다르듯, 피해를 본 상황 또한 가지각색일 것이며, 현재 각자의 심리 상태도 다를 것이다. 분명 나왈이 택한 결정은 올바른 길이다. 결국 지향해야 할 지점이란 사실도 명백하다. 하지만 영화로 인해 전쟁의 피해자들에게 인류애적 사랑과 모든 것을 용서하라는 태도를 강요하는 의견이 생성될까 노파심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각자의 상황과 심리 상태가 다른 만큼 속도를 맞추어가는 것도 중요한 부분일 텐데 당장의 무조건적인 용서를 강요하는 것으로 독해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 우려되는 지점이었다.


나왈이 여성 캐릭터이기에 모성애와 인류애적 사랑을 연관 지을 수도 있을 것이다. 이는 여성이 입은 피해는 여성이 더 큰 모성애적 사랑을 발휘하여 용서해야 한다는 식의 논리 전개로 악용될 수 있기에 여성과 모성애를 한 데 묶는 결정은 아쉬움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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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불구하고 서로를 향한 인류애적 관점은 필수적인 것임엔 틀림없다. 전쟁의 진정한 비극은 전쟁이 종식되었다 할지라도, 세대를 타고 다양한 피해 양상이 드러난다는 점일 것이다. 남겨진 잔느와 시몬은 현재의 역사를 쓰이게 하는 장본인들이기도 하다. 현재가 모여 미래가 되듯 역사 또한 현재의 일들이 쌓여 쓰이게 된다. 그렇기에 전쟁의 상흔을 어떻게 바라보고 나아가야 할지에 대한 태도는 부드럽고 섬세하게 진행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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