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하지 않은 성장 - 영화 이사 리뷰

좋은 성장만 존재 하는 것은 아니다.

by 동물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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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은 성장 과정에서 여러 상황과 다양한 감정에 직면한다. 누구나 그런 것 처럼 아이들에게도 좋은 일만 발생하진 않는다. 고통 없는 성장이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아이들 또한 크고 작은 고통을 감내할 것이며, 그래야만 한다. 이렇듯, 아이들이 중심이 되는 영화에서 “성장”은 필수 불가결한 요소다. 아이들은 성장을 거치며 어른이 되어간다. 그렇다면 성장 과정에서 생긴 상처는 성장 후, 완전히 낫게 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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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마이 신지의 <이사>는 한 아이의 성장 서사를 다룬다. 렌코는 이미 영화의 전사에서부터 갈등 상황의 중심에 있다. 부모님의 불화로 인한 별거가 코앞이기 때문이다. 렌코는 엄마, 아빠와 함께 저녁을 먹으며 부모님의 불화가 어떻게든 전복되길 바란다. 아이는 시종일관 웃음을 잃지 않지만, 그 모습은 불안이 내재한 행동일 것이다. 어째선지, 가족 구성원 중 가장 어른스러운 인물은 렌코처럼 보인다. 음식을 골고루 먹지 않는다며 아빠에게 잔소리하고, 엄마의 한탄을 받아준다. 세모나게 각진 렌코네 식탁처럼 렌코 가족의 관계는 어딘가 덜컹거리는 듯하다.


가정에서뿐만 아니라, 학교라는 외부에서도 렌코의 스트레스는 지속된다. 이혼 가정인 같은 반 친구가 따돌림을 당하고 있기 때문에 렌코는 친구들이 자신의 상황을 모르길 바란다. 하지만 렌코 또한, 이혼 가정인 친구를 놀린 전적이 있기에 이는 꽤 모순적으로 다가온다. 정상 가족 외의 가족 형태는 불완전하다고 믿는 정상가족 이데올로기는 렌코를 포함한 대다수의 아이에게 내재해 있는 것이다. 아이들은 사회의 거울이기도 하다. 아이들에게 비친 사회의 모습은 아이들을 통과해 그대로 상에 맺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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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전반에 이 모든 불안감을 품은 렌코를 주변으로 계속해서 불이 떠돈다. 영화 초반부, 아빠는 별거 후 드럼통에 각종 쓰레기를 넣어 태운다. 불타는 쓰레기 더미 속에서 렌코는 셋의 가족사진을 발견하곤 사진을 덥석 건져낸다. 일그러진 채 반쯤 불탄 사진은 사진이라고도 할 수 없다. 그럼에도 렌코는 아빠가 가족사진을 가지고 있길 바란다.


학교 과학실에서 실험하는 장면에서도 불은 존재한다. 친구들은 왜 요즘 이혼 가정인 친구와 가깝게 지내는 것이냐며 렌코를 몰아세운다. 그렇지 않아도 심란한 렌코는 불붙은 알코올 램프를 책상 위로 던지고, 엉망진창이 된 과학실은 아이들의 비명 그리고 뒤엉킨 발소리로 가득해진다. 렌코의 혼란스러움 속 숨은 분노는 좀처럼 꺼지지 않는 불처럼 타오른다.


렌코는 불로서 다시 가족을 예전처럼 복귀시킬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기도 한다. 오랜만의 가족 외식을 끝낸 후, 렌코는 아빠와 오토바이를 타며 동네 축제의 불 대문자를 보게 된다. 비와 호수에서 불놀이하며 세 가족 모두 행복했던 추억은 렌코에게 희망의 불씨를 지핀다. 다시 비와 호수에 가면 예전처럼 모두 돌아갈 수 있을 것 같단 생각은 렌코를 들뜨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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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비와 호수는 렌코를 과거로 되돌려주지 않았다. 렌코는 투덜거리는 엄마와 자신의 마음도 몰라주는 아빠를 두고 달린다. 도망일 수도 있겠지만, 어쨌든 도망은 새로운 길을 만들어준다. 렌코는 하루 동안의 여정에서 현실과 환상의 경계에 놓인 경험을 한다. 그 경계에서 렌코는 다시 불과 조우한다. 부모님과 함께 봤던 달집태우기와 불놀이를 혼자 보며 따스함보다는 공허를 경험한다. 렌코는 재가 되어버린 추억은 더 이상 잡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는다.


렌코는 바닷가에서 또 다른 자신과 부모님을 본다. 또 다른 자신을 안아주고, 부모님을 떠나보내며 렌코는 끝없이 소리친다. “축하합니다!” 이 축하는 진심 일수도,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진심이라면 렌코는 분명히 성장한 것이다. 과거는 과거일 뿐이지만, 행복했던 그 시절을 향한 축하를 할 수 있는 큰 그릇으로 말이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고 하더라도, 렌코는 성장했다. 아픈 감정을 느낄 수 없는 것이 어른은 아니다. 느끼지만, 아닌 척할 뿐. 아프지만, 아닌 척할 수 있는 어른아이가 되었다고 보는 편이 맞을 것이다.


엔딩 크레딧이 올라감과 동시에 렌코가 자신의 미래 이곳저곳을 기웃거리는 장면은 렌코의 염원이 담긴 꿈일지도 모른다. 어디로 가냐는 물음에 미래로 간다는 밝은 대답은 마냥 희망차게 들리지 않는다. 빨리 미래로 가야만 한다는 강박일 수도 있다. 엄마, 아빠의 그늘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성장뿐이다. 렌코가 그토록 바랐던 과거의 행복했던 가족은 없다. 과거로 돌아갈 수 없다면, 성장해야만 한다. 그 추억의 나날들은 불과 함께 재가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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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은 분명 성장해야만 하는 숙명을 가진 존재다. 그러나 아이들의 상처를 먹고 자라난 성장은 어딘가 텅 비어 보인다. 성장은 중요하지만, 겪지 않아도 될 성장통은 흉터만 남길 뿐이다. 그렇게 남은 아이들의 흉터가 그 시간을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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