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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희선 Jul 11. 2021

에고에 갇힌 광인

에고에 갇힌 광인

에고에 갇힌 광인

1)


시곗바늘이 12시를 넘기고 있었다. 남편은 전화 한 통 없이 지금까지 들어오지 않고 있다.
째깎째깎 소리 내며 돌아가는 초침이 말초신경까지 건드려서 잠을 잘 수가 없다.  초침이 돌아가는 소리가 아니어도 잠을 잘 들 수 없는 밤이다.  
요즘 들어서 자꾸 늦어지는 남편이 어진간히 신경에 거슬리지 않는다.
바람이라도 난 건지 통 예전 같지 않는 모습 때문에 윤혜의 신경이 날카로워졌다.
업치락 뒤치락하면서 이불을 머리 위까지 푹 쓰고 자려고 발악을 해도 여기저기서 튀여 나오는 무분별한 생각은 온몸에 생긴 신경 끝머리까지 침투를 했는지 뾰족한 신경초들이 일제히 몸을 쑤신다.
아침에 누구랑 통화하는 폼이 꼭 어떤 여자랑 하는 달콤함이 덕지덕지 묻어나는 것 같아서 마음이 불쾌했는데 차마 아무 증거 없이 일가는 남편을 붙들고 옴니암니 따질 수 없어 그냥 보낸 것이 휘회된다.  따지고 물었어야 했는데 이 인간이 요즘 뭐하고 다니는지 꼬치꼬치 캐여물었어야 했는데 그것이 지금 휘회된다.  오기만 해 봐~가만 안 둬~
윤혜는 남편과 서로 밤 12시를 넘기는 일은 없어야 한다고 약속을 했고 지금까지 그런 일은 없었다.
그런데 지금 시곗바늘이 새벽 1시를 향해 달고 있다.
윤혜는 핸드폰을 들었다. 겁이 난다. 버튼을 누르는 것이~ 받지 않으면 어쩌지? 받지 않으면 거침없이 누를 것 같아서 감히 누르지 못한다. 일단 시작되면 거침없는 스스로의 행동을 감당할 수가 없을 것 같아서 윤혜는 지금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단가마에 든 개미처럼 진정하지 못하고 갈팡질팡 한다.
받지 않을 것 같은 예감은 윤혜를 불안으로 몰아갔다. 왜?  무엇 때문에 이 시각까지 집에 들어오지 않을까? 전화 한 통  하지 않는 이유가 뭘가?
미순이의 화사한 모습이 눈앞에 어른 거린다.  남편의 술 취한 모습도~ 윤혜는 머리를 거세차게 흔들면서 더 이상을 넓혀가는 상상에 미칠 것 같아서 눈을 감는다.
아무 일도 없을 거야~ 곧 들어오겠지~
혹시 차사고?
그제야 황급히 휴대폰 번호를 누른다.  어디에 사고를 당한 남편이 아무 도움도 받지 못하고 피못에 쓰러져있을 것 같아서 더럭 겁이 나서 눈물까지 흐른다. 아~ 남편이 잘못되면 어쩌지? 나 혼자 어떡해? 요즘은 하는 짓이 웬쑤 같아도 안 좋은 일이 생길까 걱정이다. 이 세상에 혼자 남겨진다는 거는 상상도 할 수 없다. 좀 전의 질투로 불타던 가슴은 금세 세상을 다 잃을 것 같은 여인처럼 불안과 초조함으로 허둥거리고 있다.
신호가 여러 번 건너가도 받지 않는다.
《받아라! 빨리 받아라! 제발 받아라!》
거의 믿칠 것 같다. 가슴으로부터 솟구치는 불안의 파도는 윤혜를 삼키고 있었다.
언제  이불에서 빠져나왔는지 거실 거울에 사자머리에 축 처진 잠옷 바람으로 왔다 갔다 하는 미친 여자가 퀭한 눈에 눈물까지 흘리며 핸드폰을 든 채로 윤혜를 뚫어지게 보고 있다. 화들착 놀란 윤혜는 그만 거실 바닥에 풀썩 주저앉아 거울 속에 있는 여인을 멍하니 바라본다.
여보—윤혜야, 전화를 걸었으면 말을 해야지 뭐야~》
거실 바닥에 떨어진 휴대폰 속에서 남편이 부르는 소리가 윤혜를 현실 속으로 끌어오며 렸다.
《왜 이렇게 늦게 받아?》황급히  전화를 받은 윤혜는 신경질적으로 언성을 높였다.
남편의 안정된 목소리에 다시 되살아난 신경질적인 목소리와 모습이 가관이다. 사람의 감정은 순식간에 여러 가지 모습으로 변할 수도 있다는 생각에 자신이 요즘 점점 이상해 지고 예민해져 있다는 것을 느끼며 울고 싶어 졌다. 왜 이렇게 된걸가?  무엇이 어째서 언제부터 잘못된 걸까? 넓은 집안에 작은 벌레처럼 옹송그리고 앉아 종일 창밖을 내다보며 이제나 저제나 퇴근할 남편만을 기다리는 자신이 너무 초라하고 불쌍해 보인다.
《거의 다 왔어. 집에 가서 얘기하자》
남편은 조용히 할 말만 하고 전화를 끊었다. 그러는 남편이 괘씸했지만 가슴을 누르던 돌덩어리 같은 걱정거리는 스르르 사라지는 듯 온몸이 다 나른해져 거실 바닥에 그냥 드러눕고 싶어 졌다.  
좀 전까지만 해도 오기만 하면 당장 머리털 다 뽑아버리겠다고 윽윽 벼르던 그 광기는 다 사라지고 없다.
번호키 누르는 익숙한 소리가 들리면서 문이 열렸다.  남편 재민이가 겨울의 한기를 가득 안고 들어왔다. 술에 취해서 떡이 되어 돌아올 것 같던 남편이 말짱했다. 술은 입에 대지도 않은 것 같았다. 피곤함이 가득한 얼굴로
《여태 자지 않고 기다린 거야?》
《달랑 둘만 사는 집에 당신이 들어오지 않았는데 당신이면 잘 수가 있겠어요?》
윤혜의 말속에 가시는 사라지고 원망만 잔뜩 서려 있었다.
《내가 언제 올 줄 알고?》
《그니깐 전화 없이 웬 반칙이에요?》
《반칙이라니?》
《약속했잖아요? 밤 12시 넘기지 않기로~근데 지금 새벽 2시가 다 돼가잖아요~》
《민기 아버님이 돌아가셔서 경황이 없었어.》
《그러면 전화나 문자 한 통이라도 넣어야죠. 왜 사람 걱정시켜요?》
윤혜의 목소리는 다소 안도감으로 가라앉아있었다.
《경황이 없었다고~전화하자고 보니 당신 잘 시간인 것 같았어. 먼저 자! 씻고 한자 하고 잘 거야!》
《내가 언제 당신 먼저 잔적이 있나요? 나도 잠 다 깼어요. 뭐 좀 만들어 드려요?》
《아니, 그냥 마른안주에 독한 양주 한잔만 마시고 잘게~ 아니면 잠을 청할 수가 없을 것 같아서.》

《무슨 일 있었어요?》

《...》

아무 대답도 없이 샤워실로 들어가는 남편의 뒤통수에 대고 작은 주먹을 휘두르고는 주방을 향하는 윤혜는 그냥 볼품없는 40대를 넘어서는 아낙의 모습이다.
주방에 서니 좀 전까지 누구와 한바탕 전쟁을 치른 것 같은 머릿속은  조용해졌다.
남편이 씻는 동안 윤혜는 남편이 즐겨먹는 음식을 두 가지에 밑반찬 몇 가지를 차려놓고 침실로 들어갔다. 예전 같으면 캔맥을 들고 마주 앉아서 홀짝거렸을 텐데 시간도 너무 늦었고 너무 쥐여 짜서 띵한 머리 때문에 자리에 눕고 싶어서 이불을 뒤집어썼다. 말짱해서 잠들 수 없을 것 같더니 금방 잠이 몰려왔다.  남편의 존재는 모든 위험으로부터 윤혜를 구원해주는 듯이 뾰족하니 살아나 있던 신경의 탕개가 풀리며 잠 속으로 빠져들었다.


2)


미순이가 화사한 봄 원피스를 받쳐 입고 요염하게 웃으며 남편 재민이의 목을 감고 있었다. 그러는 미순이를 내려보며 행복한 미소를 짓는 남편 재민이의 눈은 실눈으로 변하여 거의 눈동자가 보이지 않았다.

《이것들이~ 저 미친년이 감히 누구 목을 휘감고  염병이야? 야! 야---》

손을 뻗어 머리채를 휙 감아서 땅에 패 던지고 싶지만 웬일인지 몸이 움직여주지가 않았다.  아무리 발버둥 치며 뛰여 가려고 해도 그 자리에서 발만 동동 구르고 있는 자신을 보자니 확 돌아버릴 것 같았다.  선 자리에서 뭉개고 있는 사이 미순이는 남편의 팔짱을 끼고 남편 재민 씨는 미순이의 허리를 감싸고 거의 안고 안기다 싶히 윤혜를 거들떠보지도 않고 호텔 쪽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여보-여보-》

악을 쓰며 불러도 목소리가 목젖에서 깔딱거리기만 하고 입은 물 마시는 물고기처럼 입술만 열렸다 닫힌다.

《여보-여보- 왜 래? 일어나-》

거세게 흔들며 깨우는 남편의 목소리에 놀라 눈을 떴다.  꿈이었다.

《악몽 꿨어? 울고 난리던데~》

<야! 너 바람피우지? 미순이년이랑 내 꿈속까지 찾아와서 날 무시하고! 이 나쁜 자식아--->

윤혜는 광기를 쓰고 있는 또 다른 윤혜를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남편은 걱정되는 눈빛으로 윤혜의 머리에 손을 얹으며 다정하게 물어본다.

《왜 울어?  어디 아파? 악몽 꿨어?》

미순이는 사라지고 남편 재민 씨만 눈앞에서 가증스러운 얼굴로 나를 일깨워준다.

그것이 악몽이라고? 너무 리얼한 꿈속의 장면이 머릿속에 재현되면서 그것이 꿈인지 사실인지 구별이 잘 되지 않는다.  현실에서 일어나서는 안될 악몽이라면 참으로 고것이 악몽이길 윤혜는 바라면서도 어딘가에 미순이가 숨어 있기라도 한 것처럼 두리번거린다.

《뭘 찾아?》

《아무것도 아니에요. 지금 몇 시예요?  당신 출근 안 해요?》

《좀 늦는다고 회사에 전화했어.

겨우 악몽에서 벗어나 현실에 온 윤혜는 자신이 꾼 악몽을 남편 재민 씨께 말할 수도 없어 계면쩍기만 하다.  묘하게 명지 끝을 자극하는 미순, 고년의 요염한 미소를 지울 수가 없다.

늦은 아침의 침대 위에는 지난밤의 꿈의  흔적을 가뭇없이 거두어가고 게으름의 잔해들이 여기저기 널브러져 있다. 불안이 떠나간 자리에는 공허만 뒹군다.


3)


한 달 전쯤 윤혜는 남편회사 근처로 갔다가 우연찮게 남편이 커피숍에서 나오는 것을 보고 뛰여 가려다가 뒤 따라 나오는 미순이를 보고 그만 멈춰 섰다. 예전 같지 않게 둘은 너무 다정한 모습이었다. 서로 웃으면서 대화하며 다정한 듯 자글거리는 작은 손짓들에서 말 못 할 행복 같은 기운이 발사하면서 윤혜의 가슴에 알싸한 통증을 유발했다.  

미순이는 남편이랑 윤혜의 동창 친구다.  같은 반,  같은 대학 같은 회사까지~ 쭉 십몇년을 그림자처럼 붙어 다니는 친구다.

윤혜가 재민 씨랑 결혼하고 혼자 남은 미순이가 맘에 걸려 자꾸 소개팅을 시켜줘도 퇴짜 놓는 미순이 때문에 어지간히 속이 썩었지만 영원히 혼자 살겠다는 비혼 주의 미순이 앞에서 둘은 두 손 두 발 다 들고 소개팅을 멈췄다.

결혼 뒤에 윤혜는 사랑하는 남편 재민 씨와 시어머님의 요구대로 집에서 가사 일만 하면서 남편께 내조하기로 하고 회사를 그만두고 집에 눌러앉은지도 십 년이다. 일하지 않고 집에서 가사만 하면서 취미 생활을 하는 것도 별로 나쁘지는 않을 것 같아서 생각 없이 그들의 요구에 오케하고 집안 살림을 하는 아낙으로 탈락된 자신이 요즘 들어 너무 초라해 보인다.

왜 그렇게 쉽게 수락했을까 얼마나 가고 싶었던 대학인데~안정함이라는 탈을 뒤집어쓴 결혼 앞에서 윤혜는 행복하기만 했다.  그때  재민 씨랑 있었던 그 공간과  햇빛, 맑은 공기와 탱글 거리던 웃음이 그립다. 시간은  윤혜곁에서 아주 천천히  조금씩 무언가를 앗아가고 있었다. 윤혜의 삶을 받쳐주던 기둥도 어느새 세월의 풍화 속에 헐거워져 숭숭 구멍 나고 드디어 서늘한 바람이 시도 때도 없이 윤혜의 아늑한 삶의 공간을 배회하면서 무너져 박산 나기를 기다리고 있는 듯했다. 행복이라는 허상에 가리어진 실체를 바로 볼 수 없는 아둔한 윤혜만 느끼지 못하다가 어느 날 갑자기 다 빠져나간 헐거운 공간에 혼자서 떨고 있는 자신을 맞닥뜨리게 된 것이다. 

거울을 비추며 출근 준비를 하는 남편의 눈부신 모습이  시야를 찌르며 들어왔다. 그 뒤로 미순이의 요염한 빨간 입술이 재민 씨의 혈관 피를 다 빨아드릴 기세로 도발 적인 붉은빛을 발산하고 있었다.


내가 멈춘 세계


미래의 어는 코너

더 이상의 낭비는 죄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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