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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희선 Mar 20. 2021

노란 집

1) 고향행

피가 따뜻해지는 느낌
한줄기의 빛이 들어오고 있었다.




기차는 서서히 기차역에 도착했다. 작은 시내의 기차역에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노란색 건물 쪽으로 걸어가는 여행객들 뒤를 따라 걸어가면서 윤희는 잊은 지 오래된 철로를 살짝 밟아 보았다.  어린 시절의 기억 한 조각이 철로 우에서 반짝인다. 참 많이도 밟고 다녔는데~그 수많은 발자국들은 굵고 무거운 기차 바퀴에 쓸려서 자리할 새 없이 사라져 버리고 눈부신 은빛 철로만 반짝이고 있다. 기차역의 집들은 거의 다 노란색 페인트를 칠하고 있다는 생각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사람들이 별로 없네요.”
“그때는 제법 있었는데…”
아들 준영이가 따라오면서 툭 던지는 따분한 목소리다.
한 낮인 데도 사람은 별로 없는 기차역 광장에서 잠깐 기억을 되살릴 수 있는 건물들이 있나 두리번거려본다.  그 시절보다 비어진 듯 스산하고 높이 치솟은 옆 건물 때문인지  작아진 느낌이다.
고향집으로 가는 길은 세 갈래로 뻗어 있다. 두 갈래는 다른 마을을 통하고 한 갈래는 철길 옆에 좁다랗게 생긴 오솔길이다. 마을을  통과하면 소란스러울 것 같아서 철길로 가기로 했다. 어쩌면 아직도 있을 것같은 철길 옆의 작은 노란집도 그대로 인지 궁금하다. 기억은 저편에서 가물거리는 그 작은 집을 준영이에게 보여주면 어떨까?
철길 량 옆으로 우거진 나무숲을 따라 걷노라니 옛일들이 새록새록 얼굴을 내민다.
20년 만에 오게 된 고향에는 아는 얼굴이 없을 것이다. 아빠, 엄마가 없는 고향은 고향 같지가 않다던 형제자매들도 삶을 찾아 뿔뿔이 흩어지고 친구들도 하나하나 철새처럼 떠나버린 고향, 아무도 없는 고향이라고 해도 고향에 대한 그리움은 마음속 깊은 곳에 늘 웅크리고 있었나 보다. 기다리는 사람이 없어서 잊고 산  같았는데 정작 고향에 오니 여기저기서 추억들이 튀어나온다. 그래서 할 일 없이 여기저기 기웃거려본다. 누군가는 있을 것 같아서 둘러보고 싶고 누군가의 목소리가 나를 부르는 것 같아서 목을 여기저기로 기웃거려 본다.
잔뼈를 키우며 자란 고향에는 울고 웃으며 보냈던 어린 시절로부터 소녀시절까지의 추억들이 고스란히 묻혀 있다. 고향을 그리는 것은 어린 시절의 지난 추억들을 먹고사는 그런 일이다. 화사한 봄날 같은 예쁜 학창 시절도, 생의 갈림길에서 우왕좌왕하던 이삼십 대 생사를 넘나들었던 파란만장한 그 잊을 수 없는 지난 이야기가 묻혀 있는 우리들 추억의 저장고 같은 것이다. 걸음은 더디지도 빠르지도 않게 추억과 함께 보폭을 맞추며 걷고 있었다.
 좁고 작은 돌멩이들로 가득한 기찻길을 따라 나무들이 줄지어 늘어서서 나뭇잎을 흐느적거리며  바람에  흔들거리고 있었다. 반짝이는 해 빛이 반들거리는 철로 로 빛 한줄기를 긋고 저 멀리까지 달려가는 그 철로를 다시 한번 걷고 싶어 진다. 간들거리다가 엎어져서 무릎을 찧더라도 다시 한번 느껴보고 싶은 그 아찔함을 맛보고 싶다는 충동으로 이  길을 택했던 것 같고 한참 가면 볼 수  있는 작은 노랑 집,  그 신비로왔던 그 집이 자꾸 생각이 난다.
차길 옆에는 한 사람만 걸을 수 있는 좁은 길이 량 쪽으로 네 갈래 반짝이는 철로를 사이 두고 나 있다. 버드나무와 잡풀들이 우거진 그 아래로 5~6미터 정도의 그 닥 위험하지 않는 경사지 밑으로 내도 강도 아닌 흐르지 않는 습지 같은 고인 물은 엉켜진 잡풀에 가려져 거의 보이지 않아도 퀴퀴한 냄새를 바람에 실어보내며 존재를 알린다.


홍연이의 웃음소리가 고요한 공기를 가르며 명랑하게 철로 우에서 햇살과 함께 통통 튀며 울려온다.
“얼른 와! 누가 더 오래 걸어갈 수 있는지 비겨보자! 호호호”
핑크색 나이론 치맛자락이 바람에 나부낀다. 철로 우로 두 팔을 쫙 펴고 간들간들 걸어가는 홍연이가 저만치 보인다. 그 뒤로 노랑나비가 얇은 날개를 나풀거리면서 잔잔한 분말을 조금씩 흩날리며 쫓아가고 있다. 오렌지 치맛자락도 바람에 나부끼며 한들한들 위태위태한 흔들림으로 따라가고 있다.
홍연이랑 걷는 길은 늘 심심하지가 않았다. 종일 그 작고 예쁜 입으로 온 동네에 생기는 일들을 누에가 실을 토하듯이 술술 토해내는 홍연이는 앞으로 꼭 아나운서 아니면 변호사쯤 은 되어있을 법한 말솜씨를 가지고 있었다.
쉴 새 없이 깔깔거리고 종알거리며 좁은 길을 밀치닥 거리며 걷다가 기차가 지나지 않을 때는 에 올라가 그 좁은 철로 를 두 팔을 쫙 펴고 한 발작씩 걸으며 누가 더 오래 걸을 수 있는지 내기를 하면서 걷던 시내로 가는 길은 언제나 웃음과 이야기 꽃으로 넘쳐나는 즐거운 길이였다.

동쪽으로 가는 차길 이랑 서쪽으로 가는 차 길은 가까이에서 나란히 쭉 이어가다가 다리와 가까워지면서 거리가 점점 넓어지고 그 사이에는 싱크 홀처럼 넓고 꽤 깊은 웅덩이가 생기면서 다리는 땅으로부터 한층 높은 곳에 올라선다. 다리 머리 쪽에는 전쟁시기의 치카가 그때까지도 커다란 입을 벌리고 흉물스럽게 서있었다. 여기저기 뚫려 있는 커다란 구멍으로 기관총이 언제라도 불을 토할 것 같은 으스스한 영화의 한 장면을 떠올리면서 자리하고 있다. 비와 바람에 씻겨져서 낡을 때로 낡은 건물 같지도 않은 거무칙칙한 토치카에는 전쟁시기의 시간을 삼킨 채 그곳에 머물러 있다. 잊지 못할 아픔과 수치심이 응결되어 시간의 흐름을 저 애하 듯이 지금도 서있다. 이제는 없어져도 될 법도 한데 모두들 바쁜 세상에 아직도 존재답지 않는 존재로 눈을 거슬리게 하고 저렇게 서 있게 하다니 놀랍기만 하다고 말했던 그 시간도 이젠 20년이라는 세월을 뒤로하고 있다. 그 옆으로 조금 떨어진 곳에도 앙증맞고 귀여운 노랑 집이 대조를 이루며 나무들 사이에  한쪽 벽을 내밀고 신비스럽게 유혹의 빛을 발사하며 서있다. 누군가 저 집에서 다리를 지키는 모양이다. 밝은 해 빛을 노랗게 받아 안고 자꾸 피워 올리는 아지랑이는 아빠 뒤를 따라 걸어가던 언덕 우에 피어나던 그 아지랑이를 닮았다. 고요 속에서 바람이 풀잎을 스쳐가는 소리가 술렁이며 들려온다. 정오의 태양은 네 가닥의 철로 에서 반짝거리고 그 태양 아래 노랑 집은  타오르듯 아지랑이를 피어 올리고 있다.
갑자기 바람이 풀잎을 스치는 소리가 거세지는 가 싶었다. 그 소리는 바람과 풀잎이 내는 순수한 소리가 아니라 덩치 큰 짐승이 풀숲을 헤치는 소리 같았다. 여름날 태양의 열기로 축 처져 있는 후덥지근한 공기를 팽창시키며 우직한 소리가 두 소녀의 심장을 위축시키며 들려왔다. 두 소녀는 걸음을 멈추고 그곳을 쳐다보다가 그만 아악- 하는 외마디 소리를 지르며 순식간에 다리를 향해 달려간다. 뒤에서는 어떤 일이 일어나든 그런 생각을 할 새도 없이 정신은 이미 구중천에 절반 이상이나 날려버린 채로 평소에 무서워서 벌벌 떨며 건너가던 다리를 후딱 건너서 뒤돌아보았을 때는 허무하게도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다리 밑으로 검푸른 강물이 타래를 치며 흐르고 있었고 그 다리를 겁 없이 순식간에 건너온 것이 신기했지만 그때는 놀란 토끼 가슴을 달래느라 그 경이로운 순간을 즐길 수가 없었다.
“좀 전에 뭘 봤어? “
몰라! 거뭇하고 덩치가 큰 게 짐승인지 사람인지~ 넌 뭘 봤는데?”
“난 네가 소리치는 바람에 그냥 놀라서 자세히 보지 못하고 덩달아 튀었지!
“다시 돌아가서 볼 가?”
홍연이가 궁금하다는 뜻 눈을 동그랗게 뜨고 쳐다본다.
미쳤니? 어디라고 거길 또 가? 덩치 큰 곰이면 어떡해? 혹시~”
“혹시 뭐?”
“아니야.”
홍연이의 궁금증으로 폭발해버릴 것 같은 눈을 재빨리 피하고 가던 길을 재촉했다.
혹시 언니가 말하던 가끔씩 나타난다던 바바리 맨이 아닐 가하는 생각이 머리를 스쳐 지나갔으나 왠지 그 말을 입에 올리기 싫었다. 거북한 기분이 묘하게 위를 자극하면서 명치끝이 불편하다. 집요한 홍연이의 입에 물리기 전에 피하는 게 상책인 것 같아서 부리나케 도망가면서도 되돌아올 때의 걱정으로 머리가 복잡하고 속이 울렁거렸다.
뒤쪽에서 무엇이 자꾸 머리를 당기는 것 같은 기분에 머리칼이 쭈뼛이 일어선다. 몇 번이나 뒤돌아봐도 다리 건너 쪽에는 검푸른 나무숲 사이에 네 갈래로 뻗은 철로만 해 빛에 반짝거릴 뿐 좀 전에 보았던 검고 덩치 큰 물건은 증발해버렸는지 가뭇없다. 도통 무슨 일이 있었는지 너무나도 조용하여 대낮에 말도 안 되는 허황된 꿈을 꾼 것만 같았다.
콩닥거리는 마음을 안고 거의 뛰다시피 걸어서 시내에 도착했을 때는 해가 중천에서 서쪽하늘로 조금 기울어진 때였다. 한시나 두 시가 되었을 가? 그림자가 조금 비뚤어진 걸 보니~
아빠는 해를 보고 시간을 잘 맞추셨다. 이렇게 해를 보며 맞추는 시간을 아버지는 해시계라고 가르쳐 주셨다. 아마 일곱 살 되던 해였던가? 일찍 엄마를 잃고 늘 아버지 뒤꽁무니를 쫓아다니던 나에게 이런 재미있는 상식도 가르쳐 주신 무뚝뚝하나 꽤 자상 신 아버지였다. 


저 앞에 노랑 집이 보인다. 그곳에서 민준이랑  홍연이가 문을 열고 나올 것 같아 숨도 바로 쉬지 못하고 휘청거린다.

《엄마! 왜 그래?》

 준영이가 놀라며 허리를 받쳐준다.  민준이다. 실없이 싱글거리던 민준이 얼굴이다. 너무 닮아서 헷갈리게 하는 아들의 얼굴에 반가움보다 허탈함에 기운이 빠진다.

《오랜만에 너무 걸었더니 어지러워.》

《좀 쉬다 갈까?》

《그게 좋겠구나!》

맑은 물이 돌돌 흐르는 냇가에 앉아 있으려나 홍연이의 청아한 목소리가 또 귓전에서 울려온다.

《내 아들 잘 컸네! 고마워!》

소스라치게 놀라서 눈을 떠보니 잠깐 졸았나 싶었는데 그 사이에도 홍연이는 꿈결 인양 우리 사이를 오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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