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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희선 May 03. 2021

삶을 다독이며

내리사랑,  치사랑


내리사랑, 치사랑



보슬비가 소슬히 내리는 7월의 오후, 어머님은 긴 투병 끝에 치매로 앓고 계시는 아버님을 홀로 두고 하늘나라로 가셨습니다.

하늘도 슬픈 듯 비를 뿌려주고 있어서 전주까지 가는  내내 아픈 가슴만 더 아프게 하고 슬픔을 참으며 운전하는 남편, 거 잡을 수 없는 슬픔이 우리를 삼켜버릴 것 같아 감히 남편의 얼굴도 쳐다볼 수가 없었습니다.

아침까지 의사 선생님과 간호사의 많이 좋아지셨다는 희망적인 말씀에 남편이 서울에 있는 집에 온 그 시간에 어머님은 그 어느 자식에게도 임종을 지킬 시간을 주지 않으시고 거짓말처럼 떠나셨습니다.


며칠만이라도 당신의 한평생을 보내온 희로애락이 깃든 집에서 드시고 싶은 거 드시다가 죽었으면 좋겠다던 어머님의 소원을 끝내 이루지 못하고 가슴속에 삭힌 채 떠나신 어머님을 생각하며 가슴 아파하는 남편을 보면 저도 코끝이 찡 하니 가슴이 아픕니다.

어머님은 평소 딸처럼 자상한 셋째 아들인 남편에게 많이 의지하셨습니다. 코로나 때문에 병문안도 어려운 그때 어쩌다 병문안이 허락되는 날이면 어머님은 남편을 잡고 퇴원을 하게 해달라고 애처럼 조르셨습니다. 그러시는 어머님을 남편은 늘 집에 모셔오고 싶은 충동으로 고민했습니다.

요양병원 바로 뒤편에 있는 시댁은 그냥 손만 뻗으면 문고리를 잡을 수 있는 환상으로 어머님은 매일 집에 대한 갈망으로 하루하루 집 앓이 하고 계셨습니다. 병원 옥상에서 보이는 집이 너무 그리운 어머님을 아버님의 폭력성 치매 때문에 두 분을 함께 계시게 할 수가 없었습니다.


저녁시간이면 돌변하시는 아버님과 함께 있게 하는 시간이 너무 위험하기 때문에 선뜻 결정을 할 수 없는 남편은 조금만 참고 계시라는 위안 아닌 위안의 말로 어머님을 위로하고 돌아와서는 헛헛하게 담배만 줄곧 태웠습니다.

평생 교직생활에 몸을 바쳐 열심히 살아오신 아버님께서 십몇 년 전 교통사고로 머리를 다치신 후 그 후유증으로 치매 판정을 받게 되었습니다. 치매는 참으로 사람을 당황하게 합니다. 옛날 일들은 너무 생생하게 기억하셔서 어쩌다 문안을 오신 친척들과 옛날 얘기로 회포를 나누실 때는 너무나 이론적이고 기억력도 좋으셔서 치매로 앓고 계신다고 믿기 어려울 정도로 건강해 보였습니다. 그 때문에 오해로 얽혔던 부분들이 어머님을 너무나 힘든 시간을 보내게 했습니다. 저녁만 되면 폭력성으로 변하시는 아버님 때문에 정신줄을 놓고 무슨 말, 무슨 일 하는지도 모르는 아버님 곁에서 얼마나 힘드셨을까? 그 힘든 시간 요양원으로 전전하시면서 아픈 몸과 마음을 달려야 했던 어머님께서 받았을 고통을 인지하지 못한 자신의 불효를 생각하면서 남편은 괴로워합니다.

어머님께서 돌아가시고 남편은 매주 주말마다 시골에 계시는 부모님 댁에 가서 아버님께 밥과 약을 챙겨드립니다. 평일에는 요양사 선생님께서 돌봐 드리니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이지만 주말 이틀 부모님 댁에 가서 아버님과 함께 하는 동안도 저녁만 되면 돌변하여 어머님께 하시던 아버님의 치매 성 폭언은 시작됩니다. 땅을 치시며 호통하시는 아버님을 감내하기란 참으로 힘든 일입니다. 아직도 장남, 장손을 첫 손으로 꼽는 아버님은 매일 같이 장남, 장손을 기다립니다. 수십 통의 전화에도 반응이 없어도 아버님은 하루 맡은 일과를 완성하듯 하루도 거르지 않고 버튼을 누릅니다. 잘 못 눌러서 다른 사람들에게 넘어가면 언성을 높여가면서 싸울 때도 한두 번이 아닙니다. 그러면 남편은 다시 전화해서 아버님의 상황을 설명해드리고 연신 사과를 드립니다.

 장남에 대한 아버님의 기다림과 사랑, 그런 편애로 인한 다른 자식들에게 받는 고통을 아버님은 마음에 둘 여유가 없으신 가봐요.
“너희들은 소용없어! 니들이 와서 갸들이 오지 않는 것 같아! 그러니 니들은 가고 갸들을 데리고 와---"
그렇게 매일 저녁 늦은 시간까지 작은 방에서 아버님께서 하시는 욕을 다 참아가면서 그 시간을 버티면 혼자 하시는 독백을 끝마치고 지칠 대로 지친 아버님은 잠자리에 듭니다. 그리고 이튿날이면 지우개로 지운 듯이 깨끗이 잊으십니다.

며칠씩 휴무가 생길 때면 남편을 따라 시댁으로 가 이런 모습들을 마주하게 됩니다. 시댁에 가서 그냥 하루 셋 끼 밥만 해드리는 일 밖에 없는데 편식이 심하신 아버님은 비릿한 생선도 육류도 국도 잘 드시지 않습니다. 어머니 생전에 하루 세끼 새로 지은 밥을 드리는데 습관이 되셔서 밥은 꼭 새로 한 밥만 찾으십니다. 반찬은 유일하게 어머님께서 평소에 하시던 김자반 하나면 끝입니다. 너무 조촐한 식단이라 국도 끓여 놓고 여러 가지 반찬을 차려 봐야 그냥 들러리처럼 옆자리에 차려져 있다가 다시 냉장고 속으로 들어갑니다. 이런 밥상을 마주하면 음식을 잘하시는 어머님이 생각나서 눈 굽을 찍으십니다.


아버님의 편식 때문에 건강이 늘 걱정인 남편은 아버님께 영양을 보충을 할 만한 건강식품을 고르느라 인터넷을 뒤지고 이것저것 사서 아버님께 챙겨드립니다.
아버님과의 전쟁인 주말이 끝나고 집에 돌아올 시간이 되어 인사할 때면 아버님은 뭔가 떠오르시는지 왜 가냐 고 묻습니다. 내가 니들 더러 가라고 했냐? 니들이 가면 나 혼자 외로워서 어쩌냐? 엄마는 왜 아직도 안 오냐? 눈 굽을 찍으며 우시는 아버님을 혼자 두고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옮기며 5일 뒤면 온다는 약속을 하고 떠나는 우리의 눈에도 이슬이 맺힙니다.

하루에도 수십 번씩 같은 물음에 답해드리고 밥과 약을 챙겨드리려고 찾아온 아들은 쫓는 아버지를 견디느라 요즘 남편은 우울증세를 보이고 있습니다. 해가 지고 창가에 어둠이 짙어 가면 아버님의 불안증세는 발작하고 이방에서 저 방으로 옮겨 다니는 아버님의 한숨소리가 섞인 특유한 중얼거림은 늦가을 갈대의 슬픈 소야곡처럼 가슴을 훑고 다닙니다.

저녁이 되면 쫓기고 집으로 돌아오는 날 아침이면 눈물로 작별해야 하는 날들을 견디며 한동안은 이런 삶을 살아가야 할 것 같습니다. 부모님에 대한 효가 자식에 대한 사랑을 넘을 수 없는 내리사랑의 본능은 그 누구라도 어쩔 수 없는 세상, 저렇게 애쓰는 남편을 보면 안쓰러워도 어쩌면 부모님께 행해야 할 효가 사라지는 이 팍팍한 세월에 이렇게 인성이 착한 사람이 내 남편이라는 것이 참으로 다행스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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