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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희선 Jan 21. 2022

시가 머무는 곳

집을 잃은 소녀

집을 잃은 소녀


파랑새가 되는 것이 꿈인 소녀


동구 밖 술레가 되어


숨어버린 친구들 찾다가


구렁 창에 떨어진 꿈속의 미아



산을 돌고 강을 돌아


흩어졌던 동무들을 찾은 기쁨은


찢긴 구름처럼 날려가고


낯선 공포에 짓눌려


뭉개진 작은 벌레가 되어


껍질을 벗고 날아갈 날개를 짠다



먹구름에 동화된 검은 태양이


입을 벌리고 세상을 삼킬 때


혼돈의 안갯속으로 들리는


늑대들의 울음소리에


갈비뼈 숭숭 구멍 뚫려도


진창에 침전하는 무게를 감내하며


사처로 끌려가는 몸


잠자리 날개와 다리가 찢기듯이


가볍게 뜯겨 나가


새의 작은 심장이 굳어져도


제비꽃을 닮은 나비가


날아오르는 소로길 끝자락에


희미하게 아른거리는


날개뼈에 붙은 꽃술은


코끝 저린 향기를 흘리며


기억에 가물거리는 고향을 건져 올린다



그 사이로 민들레 꽃처럼 흔들리는 엄마


가시방석 같은 불온의 땅을 밀칠 수 없어


지피는 군불 에 가마는 끓고


저릿저릿한 엄마의 부엌 냄새에


위장이 곤두선다


감겨야 할 허기진 눈은


긴 기다림으로 굳어져


허공에 고드름처럼 매달려 흔들거리다


비워진 내장에 꽂인다



다시 벽을 쌓고


다시 피를 채워 넣고


문신처럼 따라다니는


낙인  죄스러움  말쑥하게 지워내면


자궁 깊숙한 곳에


아기처럼 다시 누울 수 있을까




깃을 다듬는 파랑새의 부리


구구구 허파를 가르는 부름 소리 따라


피가 모이는 따뜻한 그곳


엄마의 궁전에 깃을 내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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