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 수 있는 삶이 줄어들 때
요즘 내 삶은 병원 예약을 중심으로 돌아간다.
어느 요일에 어디를 가야 하고,
이번 달엔 이미 얼마를 썼는지,
다음 진료까지 버틸 수 있을지를 계산한다.
아픈 건 손과 팔인데,
실제로 무너지는 건 생활 전체다.
병원비는 생각보다 빠르게 쌓인다.
검사비, 진료비, 약값.
“조금 더 지켜봅시다”라는 말은 가볍지만
그 말 한 번에 또 몇 만 원이 빠져나간다.
그리고 그 대가로 돌아오는 건
뚜렷한 호전이 아니라
“호전이 잘 되지 않는 병입니다”라는 답뿐이다.
아픔이 길어지면
희망보다 먼저 현실이 앞에 선다.
나는 요즘
몸이 나아질 수 있을지를 기대하기보다
이 상태로 얼마나 더 버틸 수 있을지를 먼저 생각한다.
통증은 고정비가 되고,
병원비는 생활비를 잠식한다.
문제는
아파도 쉬면 안 된다는 사실이다.
쉬면 수입이 줄고,
수입이 줄면 치료를 미루게 되고,
치료를 미루면 상태는 더 나빠진다.
이 악순환 속에서
‘회복’은 선택지가 아니라
사치처럼 느껴진다.
할 수 있는 삶이 줄어든다는 건
단순히 일을 못 하게 되는 문제가 아니다.
미래를 계획할 권리를 잃는 일이다.
다음 달, 다음 해를 상상하는 대신
이번 달을 넘길 수 있을지만 생각하게 된다.
나는 요즘
“앞으로 뭐 하면서 살 거야?”라는 질문이 두렵다.
대답이 없어서가 아니라,
대답할 수 있는 자격이 사라진 것 같아서다.
의욕이 없는 게 아니라
몸이 허락하지 않는다.
그 차이를 설명하는 건
늘 내 몫이다.
아픔은 점점 내 정체성에 스며든다.
예전의 나는 무언가를 해내던 사람이었는데
지금의 나는
무리하지 않는 사람이 되고,
기대하지 않는 사람이 되고,
가능성을 미리 접는 사람이 된다.
병원에서는
“스트레스받지 마세요”라고 말하지만
스트레스는 선택이 아니다.
아픈 몸으로 살아가야 하는 현실 자체가
이미 충분한 압박이다.
몸이 아프면
마음도 같이 아파야 한다는 법은 없는데,
현실은 늘 둘을 묶어놓는다.
가끔은 이런 생각도 든다.
이 상태가 계속된다면
나는 어떤 삶을 받아들여야 할까.
예전과 같은 삶은 어렵다는 걸
이제는 인정해야 하지 않을까.
이 인정이
포기는 아니었으면 좋겠다.
하지만 솔직히 말하면
아직은 잘 모르겠다.
지금의 나는
희망을 말하기엔 너무 지쳤고,
괜찮다고 하기엔 너무 정확히 아프다.
그래도 분명한 건 하나다.
나는 게으른 게 아니고,
의지가 없는 것도 아니다.
지금 나는
아픔과 불확실함을 동시에 안고
하루를 통과하고 있을 뿐이다.
할 수 있는 삶이 줄어들 때
사람은 강해지는 게 아니라
정직해진다.
무엇이 가능한지,
무엇이 허상인지
더 이상 속일 수 없게 된다.
나는 지금
선택지가 줄어든 삶의 한복판에 서 있다.
그리고 이 현실을
미화하지 않기로 한다.
아프고, 비싸고, 답이 없다는 사실까지 포함해서
이게 지금의 나라고 말해보기로 한다.
아직은 끝을 말할 수 없지만
적어도
지금 이 상태를 외면하지는 않겠다.
그게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 버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