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갈피는 하얀 봄에, 18.

18. 세상 그 어떤 보석보다도….

by 신지연

삶의 기쁨이란 단어를 형상화 한다면 아들 지우의 얼굴이 될 것이다. 녀석이 쿠키를 한 입 크게 베어물고서 씨익 웃어줄 때면, 미희는 세상을 다 가진 듯 뿌듯하고 행복하기까지 했다. 미희는 주말을 포함 해 일주일에 4번, 꼭 덕애원을 찾았다. 처음에는 자신을 한껏 경계하고, 마음의 문을 일체 열지 않던 녀석이었지만, 직접 구운 쿠키를 가져가서 먹이거나 꾸준히 얼굴도장을 찍자 조금씩 눈길과 곁을 내어주었다. 미희는 직접 만든 스웨터를 가져와 선물하거나 손편지를 써오는 등 마음을 다했다. 주말이면 지우를 데리고서 놀이공원에 가기도 했고, 때때로 공부를 가르치기도 했다. 지우가 병원에 가는 날에는 무슨 일이 있든 꼭 녀석과 동행했다. 한 두걸음 떨어져서 걷던 아들이었지만, 언제부터인가 손을 잡고 나란히 걸어주었다.


“우리 지우, 앞머리가 눈을 덮는 걸 보니 머리카락이 많이 자랐네.”


놀이방에서 책을 읽어주던 미희는 한껏 자란 지우의 머리카락을 매만지며, 말을 이었다.


“불편하지 않아? 지우만 괜찮다면 아줌마가 머리카락을 조금 잘라줄까?”


지우는 조금 머뭇거리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눈치를 보는지 동공은 연신 이리저리 굴러다녔다. 미희는 원장님께 양해를 구하고, 덕애원의 빈 방에서 지우와 나란히 앉았다. 신문지를 바닥에 깔고 의자를 가운데 놓았다. 지우의 옷 속에 자른 머리카락이 들어가지 않도록 보자기를 목에 둘러주었다. 지우는 얌전히 앉아서, 미희의 지시를 따랐다. 순순히 응하는 지우가 귀여워서 미희는 웃음을 터트렸다.


“선뜻 허락해줘서 고마워. 머리를 맡기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일텐데….”


미희의 말에 지우는 보자기 안에서 손을 꼬물거리는지 조금 들썩였다. 녀석은 잠시 머뭇거리다가 작게 대답했다. 목소리는 봄날의 꽃잎보다 더욱 여렸다.


“싫다고 거절하면 아줌마가 더 이상 날 찾아오지 않을까봐.”


순간 미희의 눈에 별이 튀었다. 그녀는 의자에 앉아있는 지우를 덥썩 끌어 안았다.


“아니야, 머리카락 자르지 않아도 돼. 지우가 하기 싫은 건 하나도 하지 않아도 돼. 지우가 어떤 말을 하든 아줌마는 지우 곁을 절대 떠나지 않을 거니까, 싫은 건 싫다고 얼마든지 말해도 돼.”


지우는 부드럽게 미희를 밀어냈다.


“지키지 못할 말은 애초에 하지 마세요.”


지우의 말에 미희는 입을 벌렸다. 지우는 보자기 아래에서 손을 꼬물거렸다. 그리고 시선을 떨궜다.


“말을 앞세우지도 마시고요. 그런 건 의미 없어요.”


미희는 우두커니 서서, 지우를 바라보았다. 자신에게 마음을 왈칵 열었다가 행여 다치기라도 할까 두려웠던지, 지우는 한껏 웅크리고 있었다. 떠나지 말아달라는 진심이 느껴지는, 하지만 노골적인 불신과 은근한 방어적인 태도에 미희는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미희가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하자 녀석은 한동안 바닥만 바라보다가 조심히 눈을 맞춰왔다. 몸은 미약하게 떨고 있었다.


“이런 말을 했다고, 저를 싫어하지 말아주세요. 아줌마에게 미움받고 싶지 않아요.”


미희는 지우의 뺨을 어루만졌다.


“지우야. 너를 왜 싫어하겠어, 내가 널 어떻게 미워하겠어.”


지우는 자신의 뺨을 만지는 미희의 손도 거둬냈다.


“우리 엄마와 아빠도 나를 여기에 버렸는데.”


녀석의 중얼거림에 미희는 자신의 아픈 명치를 꾹 눌렀다. 지우는 담담하게 말을 이었다.


“우리 엄마와 아빠도 나를 싫어하고 미워하니까, 나를 여기에….”

“아니야.”


미희는 지우의 말을 단박에 잘랐다. 그녀는 숨을 고른 뒤 말을 이었다.


“지우는 엄마와 아빠를 만나기 위해 덕애원에 온거야. 사랑하는 부모님을 찾기 위해 덕애원에 잠시 들린거야.”

“아줌마는….”


지우는 말을 삼키려는 듯 입을 오물거리다가 결국 말을 꺼냈다.


“아줌마는 내가 좋아요?”

“응. 아줌마는 지우를 사랑해.”


“그럼 나랑 가족이 되고 싶은 생각은 없어요?”


미희는 심장이 바닥에 쿵하고 떨어졌다. 미희가 쉽게 대답하지 못하자 지우는 입을 다물었다. 한참 침묵을 지키던 미희는 사실대로 털어놓았다.


“아줌마는 결혼을 안해서 지우를 데려갈 수 없대.”

“왜 결혼을 안하는데요?”


“사랑하는 사람이 따로 있으니까.”

“사랑한다는 그 사람이랑 결혼하면 되잖아요.”


“아줌마가 잘못해서 놓쳐버렸어. 사라져서 이젠 찾을 수가 없어.”


풀이 죽은 미희의 모습에 지우는 길게 숨을 내쉬었다.


“…앞머리, 잘라주세요.”


고요한 침묵 속, 가위질 하는 소리만 들렸다. 미희는 거울 속 아들의 얼굴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 지우는 얌전히 눈을 감고 있었다. 가위질 소리와 자신의 손길을 느끼며 잠자코 머리를 맡기는 모습에 미희는 마음이 먹먹해졌다. 내가 더 이상 찾아오지 않을까봐 거절을 하지 못했다니, 곁을 절대 떠나지 않겠다는 약속에 지키지 못할 말은 하지도 말라고, 또 말을 앞세우지 말라고 대답하다니. 미희는 작게 숨을 토해냈다. 우리 지우가 평소 이런 생각들을 하고 있었구나. 잘라낸 머리카락들을 손으로 부드럽게 털어내자, 한결 깔끔한 모습의 아들이 웃음을 보여주었다. 미희는 녀석의 미소에 쓴웃음으로 화답했다. 마음껏 따라 웃을 수 없었다.


“아줌마처럼 저를 좋아하는 후원자가 한 명 있어요.”


생각지 못했던 말에, 미희는 눈을 둥그렇게 떴다.


“누군데?”

“다정한 아저씨인데, 가끔씩 찾아와줘요. 그 때마다 나를 아들로 삼고 싶다는 이야기를 몇번이나 해줬어요. 저도 그 아저씨가 싫지는 않지만 덕애원을 떠나면 아줌마를 더 이상 볼 수 없게 될까봐 무서움이 들어요.”


미희는 손톱 끝을 깨물었다. 지우가 덕애원에 있는 이상, 양부모를 만날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었다. 지우는 미희의 낭패감 어린 표정을 애써 못 본체 하며 말을 이었다.


“가족이 생긴다는 건 제게 정말 꿈같은 일이지만, 아줌마를 더 이상 보지 못한다고 생각하면 기쁜 마음으로 따라갈 수가 없어요.”


미희는 아들의 머리를 쓸어넘겨주었다. 그리고 두 눈을 가만히 맞췄다. 태수를 닮은 지우의 눈동자. 자신을 닮은 작은 코. 미희는 지우를 부드럽게 끌어안았다. 앞선 포옹과 같이 덥썩, 힘으로 끌어안는 것이 아닌 영혼으로부터 애틋하게 팔을 벌려 온기 안에 품었다.


“지우는 가족이 있었으면 좋겠지.”

“네.”


미희는 아들의 등을 조심스레 토닥였다.


“지우에게 가족이 생기더라도, 아줌마는 네 곁에 있을거야.”

“지금처럼 자주 만나지는 못할 거에요.”

“물론 그렇겠지만.”


불안해 하는 아들의 표정을 보며, 미희는 마음을 다독였다.


“나중에 우리 지우가 초등학교에 들어갈 때, 처음으로 매는 등교 가방을 함께 고르고, 학교 운동회에도 따라 갈거야. 학예회에서 춤추고 노래하는 모습도 꼭 지켜봐야지. 중학생 무렵이 되어서 목소리가 굵어지고 코와 턱이 거뭇거뭇해지는 모습도, 고등학생이 되어 교복을 갖춰 입은 지우의 멋진 모습도 아줌마는 보고 싶어.”


“새로 생긴 가족이 아줌마를 만나는 걸 좋아하지 않을 수 도 있잖아요.”

“그건 어른들끼리 이야기 해볼 문제야. 지우는 걱정하지 않아도 돼.”


지우는 그제서야 미희의 등에 팔을 둘렀다.


“아줌마를 더 이상 보지 못하게 될까봐, 항상 걱정이 돼요.”


미희는 아들의 작은 등을 어루만졌다.


“괜찮아, 우리는 어떠한 형태로든 함께 할거야.”


지우는 미희의 손을 잡고 방을 빠져나왔다. 긴 앞머리로 눈 앞이 가려져, 답답함을 견디던 때와 달리, 한결 후련해진 표정으로. 미희는 놀이방으로 지우를 데려가 읽어주던 책을 도로 펼쳤다. 지우는 반짝이는 눈으로 책장을 들여다보았다. 천진한 아이같은 표정에 미희 역시 마음이 한결 편안해졌다. 녹록지 않은 환경 탓에 너무 빨리 어른이 되어버린 아들. 미희는 책을 낭독하는 틈틈히 지우의 눈을 들여다보았다. 별이 가득 담긴 그 눈이 사랑스러워서, 미희는 그제서야 활짝 미소지을 수 있었다. 내 아들이라서 이렇게 예쁜 걸까, 남에 눈에도 귀여워 보일까.


미희가 자신을 바라보며 자꾸만 웃자, 지우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미희는 아들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떠오른 생각 하나를 조심히 꺼내놓았다.


“지우야, 아줌마가 사진작가인 거 알고 있지.”


지우의 끄덕거림에 미희는 음, 하고 생각에 잠겼다가 부드럽게 물음표를 건냈다.


“아줌마가 지우의 모습을 사진으로 찍어도 괜찮을까?”

“제 모습을 요?”


“따로 원장님께 허락을 받을 생각이긴 한데, 지우에게도 허락을 받고 싶어.”

“거절해도 나를 만나러 와 줄건가요?”


미희는 엷게 웃었다.


“당연하지. 지우가 싫어하는 일은 절대 하지 않을거야.”


미희의 즉답에 지우는 활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요, 그렇다면 사진 찍어주세요. 많이요. 아줌마 눈에 내가 어떻게 비추는 지 궁금해요.”


미희는 지우의 이마에 뽀뽀를 해 주었다. 지우는 싫지 않은지 베시시 웃었다. 미희는 지우의 손을 감싸잡고 말을 이었다. 아들에대한 애틋함을 숨길 수 없었다.


“내 눈에 너는 세상 그 어떤 보석보다 더 찬란히 빛난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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