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 언젠가는 당신께 꼭 하고 싶은 말.
주기적으로 병원을 통원하며 검진을 받아야 하긴 했지만, 지우는 전생과 달리 꽤나 건강하게 지냈다. 축구나 수영 등, 지우는 종목을 가리지 않고 스포츠라면 하나 같이 몹시 좋아했다. 미희는 때때로 아들과 함께 학교 운동장에서, 공 차기를 하거나 달리기를 하곤 했다. 자전거를 나란히 한 대씩 사서, 강변을 달리는 일도 잦았다. 처음 페달을 밟을 때는 무섭다며 울음을 터트렸지만, 시간이 지나자 뒤에서 더 이상 잡아주지 않아도 곧잘 달리게 되었다. 지우는 반장선거에 나가서 부반장이 되어 돌아오거나, 여자친구를 사귀어서 자랑하는 등 재미있게 학교생활을 해냈다. 미희는 아들의 종알거림을 듣는 낙으로 하루를 보냈다.
미희는 지우가 크게 웃는 모습, 힘차게 뛰는 모습, 두 팔을 벌리고 잠든 모습 등, 틈틈히 아들의 성장사진을 기록물로 남겼다. 앵글 앞에서 삐걱거리며 어색해하던 지우도, 어느 순간부터는 카메라 앞에서도 자연스레 행동하게 되었다. 미희는 아들을 모델로 하여, 작업을 계속 해 나갔다. 원장님께는 작품의 판매 수익금을 전부 지우에게 후원한다는 조건으로 전시회도 허락받았다. 지우에게 조금이라도 피해가 있을 경우 사진 촬영 작업을 바로 중단하기로 약속했다. 몇 년 간 바지런히 사진을 찍어주자, 미희가 갑자기 카메라를 들이밀어도, 지우는 이제 당황하지 않고 씨익 웃으며 손가락으로 브이를 그려보일 정도의 여유가 생겼다. 스스럼없이 어리광을 부리는 녀석 덕분에, 미희는 항상 웃는 얼굴이었다.
중학생이 된 아들은, 갈라진 목소리를 부끄러워 했다. 오리처럼 이상한 소리가 나온다며, 가급적 말을 아꼈다. 코와 턱이 거뭇거뭇해지기도 했고, 키는 죽순처럼 자랐다. 미희는 하루하루 부쩍 자라나는 아들을 위해 영양가 높은 식재료를 덕애원에 공수했다. 운동을 좋아하고, 잘 먹는 지우는 또래에 비해 체격이 남달랐다. 이제 겨우 청소년인데, 자신보다 머리가 하나 더 있어 보이는 높은 신장. 미희는 큼직큼직 자라나는 아들이 기특하고 고마워서, 먹는 것에 더욱 신경을 썼다. 그리고 몸의 발달만큼 마음의 성장에도 각별히 정성을 쏟았다. 지우는 말 수가 차츰 줄고, 언행이 사내답게 묵직해졌지만 여전히 미희에게는 곧잘 속 이야기를 하곤 했다. 두 사람은 별 빛 아래 덕애원 놀이터에서 나란히 그네를 타는 일이 많았다.
“학교에서 장래희망을 써 오라는데, 저는 잘 모르겠어요.”
“좋아하는 걸 생각해보는 건 어때.”
“글쎄요, 내가 좋아하는 건….”
그네에 앉아서 몸을 흔들거리던 미희는, 전생의 아들의 장래희망을 떠올려 보았다. 그러고보니 첫째의 꿈에대해 서로 이야기를 나눠본 일이 없었다. 아들은 언제나 병실 침대에 누워 건강해지기만을 바랄 뿐. 기타 다른 꿈은 허락되지 않았다. 하지만 현생의 지우는….
“내가 좋아하는 건 아줌마의 카메라에 찍히는 거에요.”
“지우는 사진 찍히는 게 좋아?”
“카메라 렌즈 너머 아줌마가 서 있다고 생각하면, 그리고 나를 올곧게 바라봐주고 있다고 생각하면 한없이 기뻐요.”
말 끄트머리 지우는 부끄럽다는 듯 얼굴을 붉혔다. 미희는 아들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그럼 모델을 장래희망으로 꿈꿔보는 건 어때?”
“모델? 연예인이요?”
“응. 지우는 잘생겨서 모델을 해도 인기가 많을거야.”
수줍게 얼굴을 붉히는 아들의 모습에 미희는 웃음을 터트렸다.
“놀리지 마세요.”
“놀리는 거 아닌데? 지우가 진심으로 모델이 되고자 한다면 아줌마가 포트폴리오를 만들어줄 수 있어.”
미희는 그 날부터, 지우의 자연스러운 일상 사진과 함께, 철저히 계산된 구도와 포즈의 상업성 짙은 사진을 촬영해 주었다. 그렇게 아이가 모델로 성장할 수 있는 토대를 만들어주었다. 머쓱해하는 것도 잠깐, 지우는 곧잘 자세를 취해주었다. 대부분 장난스럽게 촬영했지만 결과물은 썩 좋았다. 미희는 공들여 작업한 사진들을 추려내, 아들의 18번째 생일에 맞춰 전시회를 열었다. 작품의 판매수익금은 원장님과 상의한대로 지우의 대학등록금으로 사용할 계획이었다. 명성있는 사진작가 답게, 미희의 전시회는 일정내내 호황이었다. 사람들은 입을 모아 작품 속 아름다운 피사체, 의문의 소년에대해 물었다.
지우는 반 친구들과 함께 교복을 입고 전시회를 찾았다. 사진 속 모델을 알아본 사람들은, 지우를 둘러싸고 질문을 던졌다. 미희는 아들을 사람들 틈에서 빼내와 보호했다. 몇몇 회사에서는 모델 계약을 위한 명함도 두고 갔다. 전시회가 끝난 뒤 연락할 요량으로, 미희는 명함첩에 지우의 성장 가능성을 착실히 모아두었다. 지우는 이 모든 상황이 얼떨떨한 것 같았다. 녀석은 자신이 찍힌 사진들을 하나씩 살펴보며, 눈을 크게 떴다. 미희는 예전 태수의 모습이 떠올라 스스로의 심장을 다독였다.
지우가 데려온 친구들 역시 웅성거리며, 액자 안의 지우를 신기해 했다. 어깨를 두드리거나 크게 웃으며, 친구들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지우를 축하했다.
“지우의 전시회에 와줘서 고맙구나.”
미희는 두 손을 가지런히 모으고, 지우의 친구들 앞에서 인사를 했다. 친구들은 멀뚱멀뚱하며, 지우에게 눈짓을 보냈다. 이 분이 누구신지 소개해 달라는 의미였을 것이다. 자신이 해맑게 웃고 있는 모습이 담긴 사진액자. 그 앞에서 오랫동안 멈춰있던 지우는, 몸을 돌려 무리에 섞였다. 지우는 왜인지 눈물을 글썽이고 있었다. 미희는 녀석의 얼굴에서 오래 전, 태수를 찾아냈다. 지우는 약간 젖은 목소리로 말을 꺼냈다.
“얘들아, 이 분은….”
지우는 숨을 한번 삼키고서, 어깨를 폈다.
“이 분은 내 어머니야.”
지우의 말에 친구들은 소스라치게 놀라며, 손으로 입을 가렸다. 친구들은 지우가 덕애원 출신인 걸 모두 알고 있는 듯 했다. 지우의 말에 놀란 것은 친구들 뿐만이 아니었다. 미희 역시 자신의 귀를 의심하고 순간 숨 쉬는 것을 잊어버렸다. 지우는 차분하게 말을 이었다.
“내게 있어 세상에서 제일 소중한, 우리 엄마야.”
친구들은 쭈볏거리다가, 하나둘 고개를 숙였다. 안녕하세요. 지우 어머니. 전시회에 초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소년들은 입을 맞춰 감사인사를 꺼냈다. 미희는 심장이 어찌나 빠르게 뛰는지, 그리고 울컥 뜨거운 불덩어리가 목에 맺히는지, 표정을 제대로 관리할 수 없었다. 지우는 미희의 손을 잡았다. 미희는 맞잡은 아들의 손에 힘을 주었다. 기쁨이 밀려왔지만, 미희의 목소리도 울음에 잔뜩 잠겨 있었다.
“그래, 만나서 반갑구나. 아줌마는, 지우네 엄마야.”
아이들이 전시회장을 가로지르며, 다과를 즐기는 동안 지우와 미희는 나란히 서서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눴다. 지우가 크게 웃고 있는 사진을 배경으로 서서, 두 사람은 울며 또 웃으며, 마음을 나눴다. 지우는 미희의 손을 잡았다.
“제가 앞으로 아줌마를 계속, 어머니라고 불러도 괜찮을까요?”
“그래준다면 정말 기쁠거야.”
미희는 아들의 머리를 쓸어넘겨주었다.
“다른 사람들을 따라가지 않아서 다행이었던 것 같아요.”
“다른 사람들?”
“여태까지 저를 입양하고 싶어하셨던 분들이 많으셨어요. 가족이 갖고싶어서 따라갈까 생각도 했었지만….”
“전에 말했던 그 다정한 아저씨?”
“맞아요. 그 분도 그렇고요. 많은, 많은 감사한 분들이….”
“왜 그 분들을 따라가지 않았어?”
미희의 물음에 지우는 태양처럼 밝게 웃었다. 태수를 빼닮은 그 미소에, 미희는 행복감을 느꼈다. 지우는 웃는 얼굴로 대답했다.
“다른 사람이 아닌, 아줌마가 제 어머니가 되어주셨으면 했어요.”
미희는 아들을 향한 애틋함이 끓어넘쳤다. 차츰 뺨이 젖어들어 눈가를 매만지자, 지우는 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내서 미희에게 건냈다. 미희는 사진 액자 속, 아들의 웃음들 사이에서 혼자 훌쩍거렸다. 가냘프게 떨리는 미희의 어깨를 지켜보던 지우는 두 팔을 벌려 미희를 꽉 껴안았다.
“울지마세요. 이 좋은 날에….”
미희는 아들의 등에 팔을 두르고, 기뻐 울었다. 세상에 신이 있는지, 없는지 자신은 아직도 잘 모르겠지만 만약 있다면, 이 모든 은혜로운 기쁨이 그 분의 감사한 은총이라면, 온 힘을 다해 경배하리라. 영혼을 다해 찬양하리라, 마음 먹었다. 미희의 심장에서 발하는 행복이 가슴에서 가슴으로 전해지는지, 지우 역시 팔에 힘을 주어 미희를 더욱 세게 끌어안았다.
“항상 감사해요, 어머니.”
“사랑해, 지우야.”
사랑한다는 말에 지우는 수줍게 웃었다.
“언젠가 저도 어머니께 꼭 그렇게 말씀드리고 싶어요. 지금은 제 삶에 찾아와 주신 것에 깊이 감사하는 마음 뿐이지만…. 그 생각 외에는 감히 할 수도 없지만.”
지우는 천천히 몸을 떨어뜨렸다. 그리고 미희에게 마음을 건냈다.
“언젠가 어머니께 사랑한다고, 진심을 다해 꼭 말씀드릴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