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 어떠한 형태로든 다시 만날 수 있을 거에요.
쉬울 리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미희는 대륙 사이를 오가며 그의 흔적을 쫓았다. 살아있다면, 살아만 있다면 분명 이 지구 상에 단 한 사람이라도 접점이 있을 것이라 여기며.
유럽의 고대 도시에서, 미희는 잊혀져가는 전생의 기억들을 되새겼다. 한 쪽 귀퉁이가 무너진 신전 기둥을 보고 있노라니, 아파 병상생활을 하는 첫째 아들 지우가 무심결에 떠올랐던 것이다. 금발의 백인들 틈에서, 미희는 검은 머리카락이 하얗게 새어버릴 때까지 흐느껴 울었다. 오열하는 동양인 여성의 머리카락이 순간, 하얗게 변하는 모습을 본 사람들은 놀라워 했고 그 중 낯선 남성이 한 명 다가와 손수건과 함께 위로를 건내주었지만, 그녀는 손사레를 쳤을 뿐 화답하지 않았다. 태수, 떠난 그의 말이 맞았을 런지도 모른다. 우리의 아이들을 포기하면서까지 그와 내가 이 세상에서 이루고자 하는 바가 있을까, 설령 있다 한들 그것이 의미 있을까. 지우를 만나지 못하는데, 그 어떤 부귀영화가 가치 있을까. 미희는 자신의 아랫배를 쓰다듬었다. 텅 빈 마음 한 켠이 허전했다. 백발이 된 그녀는 손등으로 눈물을 닦고서, 태수를 찾아 다른 도시로 걸음을 옮겼다.
붉은 사막 한 가운데에서 낙타를 타고 걷던 미희는, 멀리 오아시스를 한 곳 발견했다. 다가가기 전까지 그것이 진짜인지 아닌지 알 수 없었지만 미희는 그 오아시스가 진짜일 거라고 생각했다. 태수와의 불행한 미래가 예정되어 있다고 믿었던 어리석음처럼. 미희는 낙타에서 내려 오아시스 방향으로 걸어가 보았다. 걷고 또 걸어도, 심지어 아무리 달려도 오아시스는 가까워지지 않았다. 입자 고운 붉은 모래에 발목까지 잠겨 걷기도 어려웠고, 붉은 모래산 너머로 타는 듯한 노을이 지고 있었다. 지친 미희는 무릎이 꺾인 채 무너져 모래를, 뜨거운 불덩어리를 움켜 쥐었다. 날선 울분이, 두 손 가득 잡혔다.
“어째서 닿을 수 없는거야…!”
미희는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예정되어 있다고 믿었던 그와의 불행한 미래는 어쩌면 저 신기루와 닮은 것이었을 지도 모른다. 현실이 되기 전까지 모든 것은 허상일테니까. 다가올 내일의 형태는 아무도 알지 못하는 게 당연했건만. 미희는 모래를 움켜쥔 채 그 날의 자신에게 고함을 내질렀다. 도대체 뭐가 남편을 위한 결정이란 말이냐. 세상에 정 붙일 사람 한 명 없던 그로부터 가족이 되자는 권유를 받고도, 끝끝내 거절하여 눈물을 흘리게 만든. 이 어리석고도 한심한…!
미희는 마구 눈물을 흘렸다. 한참을 울어도 사막은 젖지 않았다. 자신의 고함 소리를 아무도 듣지 못한다는 것을 깨달은 그녀는 마음 속 넘실대는 바다를 모두 꺼내놓았다. 끝모를 그리움이 넘쳐 온통 파도가 일었음에도 모래 언덕은 모습이 달라지지 않았다. 미희는 젖은 눈을 하고 소란스러운 사막을 가로질렀다. 신기루 오아시스를 뒤로 한 채, 태수를 찾아서 다음 도시로 걸음을 옮겼다.
맹수가 달리는 초원에서, 눈 외엔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 설원에서, 적포도와 라벤더가 보랏빛으로 땅을 물들인 평원에서 미희는 태수의 이름을 재차 입에 담았다. 푸른 눈을 가진 그들은 태수를 전혀 알지 못했다. 갈색 심지어 회색의 눈을 가진 사람들도, 그의 이름을 한번도 들어본 적 없다고 했다.
미희는 태수를 찾으며 지나온 길을 묵묵히 사진으로 남겼다. 그녀의 작품들은 [당신은 지금 어디에 있습니까?] 라는 동일한 제목으로 몇 번 전시되었다. 평론가들은 미희가 수년 째 찾는 것이 삶의 이유 혹은 목적이자 인간이라면 누구나 숙명적으로 마주할 수 밖에 없는 자아의 부재를 논하고 있는 것이며, 그녀는 세계 각 국을 떠돌아다니며 각 문화권의 인간상을 앵글 안에 담아 그 안에서 자신을 역으로 들여다보는 숭고하고 내밀한 작업을 하고 있는 거라 말을 보탰다. 그럴 때마다 미희는 지금 무슨 소리를 하고 계신 거에요, 라고 되묻곤 했다. 미희의 심드렁한 태도에도 평론가들과 관람객들은 세상을 바라보는 그녀의 시선을 사랑했다. 작품들은 전시회를 열 때마다 하나 남김없이 모두 판매되었다. 사라진 연인을 찾아 세상을 헤멜 뿐인 자신의 작품을, 그 기록물들을 아껴주는 사람들에게 미희는 깊은 감사함을 느꼈지만, 작품 의도인 속 이야기를 털어놓지는 않았다.
하늘과 땅의 경계가 사라지는 우유니 소금사막에서 각오가 옅어지는 것을, 그렇게 마음의 경계가 흐려지는 것을 느꼈다. 이렇게 될 줄 알았다면, 이토록 그리워 견딜 수 없을 줄 알았다면, 하루를 살더라도 그냥 그와 결혼을 하는 것이 나았을 런지도 모른다. 투명한 소금 사막에 눈물 방울을 더하고 귀국한 미희는 집에 틀어박혔다.
뉴욕과 런던, 도쿄같은 대도시는 물론이고 사람들이 잘 찾지 않는 태초 원시의 땅에서조차 태수의 이름을 아는 사람을 찾을 수 없었다. 미희는 거울을 들여다보았다. 하얗게 새어버린 머리카락과 눈가의 주름, 말라 버석거리는 입술까지 모두, 그가 알고 있던 자신의 모습이 아니었다. 미희는 카메라를 거울에 집어 던지려다가, 대학 진학 당시 아버지께서 사주신 귀한 선물이라는 것을 가까스로 기억해 내, 들썩이는 마음을 다스렸다. 미희는 감정을 가지런히 하려 애썼다. 그를 찾을 때까지 정신적으로 무너져 내릴 수 없었다.
자신의 기억이 맞다면, 8년 아니, 아마 10년 만일 것이다. 기억 속의 덕애원을 다시 찾은 것은…. 미희는 아이들의 간식을 잔뜩 사다가, 덕애원 현관에 박스 채로 옮겼다. 소란스러움에 밖으로 나오신 원장님은 미희를 한 눈에 알아보고, 손뼉을 치셨다. 미희는 부끄러운 마음에 고개만 재차 숙였다. 원장님은 반가움을 감추지 않고, 그녀의 손을 맞잡으셨다.
“그간 모습이 많이 달라졌는데도 알아봐 주셔서 감사해요.”
“얼마나 스트레스를 받았던 거에요, 까맣게 윤기돌던 머리카락이 하얗게 새어버렸군요.”
“나이가 들어서 눈가에도 주름이….”
“그런 말 말아요, 예쁜 얼굴은 그대로인걸요.”
미희는 원장님의 손을 잡고 덕애원으로 들어섰다. 몇 무리의 아이들이 그녀에게 다가와서 귀염성있게 인사를 하고, 애교를 부렸다. 아이들의 재롱을 웃으며 바라보던 미희는, 홀로 구석에 앉아 창 밖을 응시하는 아이에게 시선이 꽂혔다. 뒷모습이 묘하게 낯익은 느낌을 주는….
미희는, 저 아이가 누구냐고 원장님께 묻기 위해 옆을 바라보았는데, 원장님은 미희가 가져온 간식들을 아이들에게 나눠주느라 정신이 없어 보이셨다. 왜 일까, 미희는 창가의 아이에게서 눈을 뗼 수가 없었다. 그녀는 원장님이 나눠주시는 간식을 조금 갖고, 아이에게 다가갔다. 별 다른 뜻은 없었다. 그저 무리에 섞이지 못하는 그 아이가 가엾기도 했고, 뒷모습에서 알 수 없는 친밀감이 느껴졌기에. 꼬마야, 하고 살갑게 부르는 말에 아이는 창 밖을 내다보던 것을 멈추고, 미희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아이의 얼굴을 확인한 미희는 순간 동공이 크게 떠졌다.
“지우야!”
미희는 아이의 얼굴을 감싸 안고, 이목구비를 조목조목 살폈다. 또래에 비해 큰 눈, 작은 코와 입술, 숱많은 머리카락, 파리한 안색까지 전부 전생, 자신의 첫째 아이였던 지우와 똑 닮아 있었다. 미희는 아이를 품에 세게 끌어안고, 재차 신을 찾았다. 머릿 속에서는 우리는 가족이기에 어떠한 형태로든 다시 만날 수 있을 거라던 지우의 마지막 말이 떠올랐다. 울먹이는 미희를 보고, 원장님이 놀란 얼굴로 달려왔다. 품에 안겨 있던 지우 역시 많이 놀란 듯, 얼굴이 빨갛게 상기된 채 물음표를 건냈다.
“아줌마는 누구예요? 누군데 내 이름을 알고 있어요?”
미희는 지우를 끌어안은 채 놓아주지 않았다. 네 엄마야,라는 말이 입 밖으로 튀어나오려는데, 간신히 삼켰다. 미희의 표정이 심상치 않음을 느낀 원장님은 어떻게 된 일이냐고 물어오셨고, 눈물을 훔치던 미희는 질문에 질문으로 답했다.
“지우가 왜 여기에 있는건가요, 원장님.”
“지우는 젖먹이 때 저희 시설에 보내진 아동이에요.”
지우에게 간식을 건내주신 원장님은, 지우의 놀란 마음을 먼저 안정시켜주시곤 미희를 이끌고 원장실로 향했다. 미희는 자꾸만 뒤를 돌아보았다. 원장실에서 코코아잔을 감싸쥐고도, 미희의 마음은 문 밖 지우에게 온통 쏠려 있었다.
“지우는 부모를 알 수 없고, 어릴 적부터 몸이 아파서 또래하고도 어울리지 못하는 아동이에요.”
“치료는 제대로 받고 있나요?”
“시설 아동에게는 쉽지 않은 일이에요.”
“그렇다면 지우를 제가 데려갈 수 있을까요?”
원장님은 고개를 저었다. 안타깝다는 듯 목소리는 몹시 침울했다.
“미희씨는 미혼 여성이기에 입양이 불가능합니다.”
미희는 울먹였다.
“그럼 후원이라도 하게 해 주세요. 제가 비용을 전부 충당할 테니, 우리 지우가 제대로 치료받을 수 있게 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