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갈피는 하얀 봄에, 03.

03. 다시 만난 아버지, 행복한 그 시절.

by 신지연

이뤄질 수 없다는 걸 어렵품이 알고 있었다. 그래도 모처럼 느껴보는 생의 단맛에 깨고 싶지않아 꿈 속을 한참 헤맸다.


상주인 첫째 아들의 무릎을 베고 잠이 들었던 미희는 아침 햇살이 얼굴에 닿는 게 느껴져, 마지못해 크게 하품을 한 뒤 두 눈을 천천히 부볐다. 조문객이 찾아오기에는 이른 시간이었지만, 장례식장을 지키는 입장으로서 몸 가짐을 바르게 하려는 생각에서 였다.


무거운 졸음으로부터 겨우 몸을 가눈 그녀는 옷이 바뀌어 있음을 깨달았다. 검은색 상복이 아닌 청바지에 면티 차림으로 침대에 가지런히 누워있었던 것이다.


“지우야, 엄마 옷이 왜 …”


미희는 첫째 아들을 불러 정황을 살피려다가 멈칫했다. 냉기가 감도는 싸늘한 장례식장이 아닌, 낯익은 방 안에, 그것도 햇살 냄새 은은한 침대 위에 올려져 있는 자신.


눈높이가 맞았던 탓에 화장대 거울에 얼굴이 비춰졌다. 컬이 많이 들어간 짧은 단발, 그리고 주름 하나 찾아볼 수 없는 매끈한 피부에 미희의 동공이 커졌다.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인지 …”


미희는 침대 아래로 내려와 바닥을 디뎠다. 놀라움으로 커진 눈은 주변을 살피기 바빴다. 결혼 전 20대 때 쓰던 것과 똑같은 모습의 방. 온도와 습도, 심지어 방의 향기까지 기억 속 그대로였다. 미희는 먼지 한 톨 보이지 않는 화장대를 매만졌다.


“어떻게 된거야.”


미희는 거울 앞에 가서 섰다. 눈가와 입가의 주름을 찾아볼 수 없는 앳된 얼굴이 자신을 반겼다. 벽에 걸린 달력에는 1983년이라는 글자가 큼지막하게 적혀있었다.


“아직 꿈이지, 꿈인거지.”


미희는 떨리는 손으로 문고리를 잡았다. 그리고 천천히 거실로 나갔다.


천으로 된 소파와 작은 텔레비전, 전부 어릴 적 모습 그대로였다. 전축에서 흘러나오는 오래된 가곡이 미희의 마음을 어지럽혔다. 무엇보다 소파에 앉아계시는 아버지라니. 미희는 신문을 읽고 계시는 아버지께 휘청대며 걸어갔다. 여든이 되셨던 해에 노환으로 세상을 떠나셨던 아버지. 그 아버지가 건강한 모습으로 바로 눈 앞에서 ….


“아, 아버지. 아버 ….”


기사를 읽던 아버지는 손에 들고 있던 신문을 내려놓고 미희를 바라보았다. 하얗게 질린 표정의 미희는 누가보더라도 걱정을 불러일으켰다. 아버지는 두꺼운 안경을 고쳐쓰시곤 그녀를 찬찬히 살피셨다. 미희는 몸을 미약하게 떨고 있었다.


“왜 그러냐.”


“돌아가신 분이 여긴 어떻게 앉아 계셔요? 이게 다 어찌 된 일인가요?”


“뭐?”


아버지는 미희의 머리를 아프지 않게 쥐어박았다. 미희는 머리를 감싸고 바닥에 주저앉았다. 소란에 다른 방에서 여동생들이 달려나왔다. 미옥이, 미선이, 미은이까지 전부 자신과 같이 어린 모습을 하고 있었다. 10대로 보이는 여동생들은 쉼 없이 재잘거렸다. 언니가 오늘따라 이상하다는 둥, 얼굴이 하얗게 질리다 못해 파르스름한 게 보기 무섭다는 둥. 놀라운 풍경에 미희는 입을 크게 벌렸다.


“전부 꿈이야.”

“뭐가 꿈이야, 이 녀석아. 정신차려.”


아버지는 접어뒀던 신문을 도로 펼치며 혀를 차셨다. 신문 일면에는 나카소네 야스히로, 일본의 현직 총리가 처음으로 대한민국을 공식 방문해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가졌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커다랗게 삽입된 대통령의 전신 사진, 그 면면을 확인한 미희는 숨을 삼켰다. 신문의 일자는 1983년 1월 12일로 적혀 있었다.


“정말 83년도란 말인가요?”


미희의 중얼거림에 미옥이가 얼른 대꾸했다.


“언니는 연초인 게 도통 믿기지 않나봐. 아직 82년도인 것만 같은가?”


긴 머리의 미옥이는 말갛게 웃으며 언니인 미희의 팔을 잡아당겼다. 꺄르르 웃던 미선이와 미은이는 서로를 마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두 사람은 쌍둥이처럼 짧은 단발을 하고 있었다. 미은이가 둥근 안경을 쓰고 있지 않았다면, 두 사람은 구분하기 어려운 모습이었다. 미희는 어린 동생들의 모습이 몹시 눈에 익었다. 자라오며 줄곧 봐 오던 모습이었다. 곱고 예쁜 미옥이와 귀여운 미선이, 그리고 개구쟁이 미은이. 녀석들은 어려서부터 미희를 곧잘 따랐다. 닭 주변을 맴도는 앙증맞은 병아리 떼 같은.


“하긴 나도 미희 언니처럼 아직은 83년도라는 사실이 잘 믿기지 않는걸.”

“그도 그럴 게 아직 1월이 된 지 채 보름도 되지 않았으니까.”


미선이와 미은이의 대화에, 미희는 두 손을 심장 부근에 가져다댔다. 놀라울만큼 빠른 속도로 심장이 뛰고 있었다. 남편의 장례식으로 인해 자신이 정신이 나간 것이 아니라면, 눈 앞의 광경은 믿기 어렵지만 모두 생생한 현실.


미희는 생각했다. 아니 어쩌면 남편의 장례식 쪽이 꿈이었을런지도 몰라. 그렇지 않고서야 이렇게 또렷한 환각을 경험할 리 없어. 미희는 밤새 지끈 거렸던 허리를 매만져보았다. 통증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마치 다친 적도 없었던 것처럼.


“나 정말 다시 20대가 된거야?”


입이 우스꽝스럽게 비틀리며, 미희는 울먹였다. 거실에 모여앉아있는 가족들은 두 눈이 휘둥그레 졌지만, 미희는 울음을 멈추지 않았다. 복잡한 감정이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인생을 다시 살게 되었다는 기쁨과 안도감, 그리고 지난 삶은 어찌 되는 것인가에 대한 두려움과 불안함이, 또한 이 모든 것이 어떻게 가능한가에 대한 공포와 의문이 마구 뒤섞였다. 파레트에 담긴 갖가지 감정의 물감들은, 눈물로 그려졌다.


그녀는 신문이 우그러지든 말든, 아버지를 덥썩 껴안고 큰 소리로 흐느꼈다. 아버지는 얼떨떨한 표정으로, 미희를 밀어내려 했지만 이내 서럽게 울어대는 딸을 보고, 마음이 아프셨던지 조심히 보듬어 안아주셨다. 이유는 모르겠으나 세상이 끝난 듯 오열하는 모습이 심상치 않아보였던 듯 싶었다.


아버지는 미희의 등을 재차 토닥였다. 아버지께 나는 익숙한 향기가 미희의 마음을 더욱 심란하게 했다. 약간의 담배 향이 묻어나는 아버지만의 체취가 잊혔던 기억들마저 일깨웠다.


“그래. 세상 무서울 것 없이 기세등등한, 우리 미희는 그런 20대지. 울지말렴, 울지말아 ….”


한참을 미희를 안아주셨던 아버지는, 미희의 울음이 잦아들자 출근을 위해 자리에서 일어서셨다. 아버지께서 옷을 갈아입으러 방에 들어가신 동안, 여동생들이 미희를 감싸안았다.


“왜 그러는지는 몰라도, 평소의 언니와는 조금 다른 느낌이야.”

“맞아. 미희 언니는 왠만해선 흐느껴 울지 않는데, 윽박지른다면 모를까.”


“언니가 그렇게 크게 울어서, 이유는 몰라도 따라 울 뻔 했어.”

“나도, 나도 눈물이 찔끔나지 뭐야.”


미선이와 미은이가 도란도란 말을 붙여오는데, 고개를 갸웃거리던 미옥이가 질문을 건냈다. 둘째인 미옥이는 어른스러운 차분함이 깃든 아이였다. 목소리는 다정하나 물음표는 날카로웠다.


“언니, 다시 20대가 되었다는 말은 무슨 뜻이야?”


눈물을 훔친 미희는 입을 꾹 닫고 신중하게 단어를 골라냈다. 그리고 천천히 이야기를 시작했다. 자신이 방금 전까지 60대의 삶을 살다가 20대의 몸으로 기적적으로 깨어난 일, 아버지는 노환으로 여든인 나이에 우리 곁을 떠날 거란 이야기, 서글펐던 과일 향기. 추레했던 과일과게. 없는 살림에 대학원을 다니던 남편, 그리고 아픈 첫째 아들, 지우. 마지막으로 장례식장에서 나눴던 지우와의 대화. 인생을 다시 한번 살아본다면 어떨 것 같냐던 ….


“언니가 사실은 60대라구? 그건 정말 말도 안돼.”

“맞아, 언니는 능숙한 거짓말쟁이야.”


미선이와 미은이가 종알거렸다. 하지만 미옥이만큼은 눈을 빛내며 이야기를 경청하기만 했다. 미희가 힘이 빠진 듯 소파에 늘어져 앉자, 미옥이 다시 되물었다.


“언니가 83년도를 이미 살아낸 60대 여성이라면, 아직 일어나지 않은 83년도의 사건들을 맞출 수 있어?”

미희는 볼을 긁적였다.


“글쎄, 뭐가 있더라.”


한참을 골몰하던 미희는 작게 중얼거렸다.


“83년도라면 분명 이산가족 찾기 방송이 시작 될 거고, 또 구정 무렵 어머니께서 명절 요리하다가 크게 다치셨던 해잖아...”


자신의 기억이 맞다면 1983년도에는 이산가족 찾기 방송이 시작되었던 해였다. 전국민이 눈물과 함께 헤어진 가족을 다시 만나 삶의 희망마저 되찾았던 …. 벅찬 감동과 감격이 나라 전체를 적셨다.


가정 내에선 어머니께서 설날 명절 요리를 하다가 허리를 크게 다치신 해였다. 어머니는 그 후로 병원 신세를 몇 번 지며, 40년이 넘도록 고생을 하셨는데, 허리가 아플 때마다 입버릇처럼 83년도의 구정의 사고를 말씀하시곤 하셨다. 미희의 말에 미옥이의 동공이 커졌다. 미희는 그늘진 얼굴로 이어말했다.


“시일이 걸리겠지만, 나중에 확인할 수 있을거야.”


네 사람이 머릴 맞대고 이야기를 나누는데, 아버지께서 넥타이를 정돈하시며 방에서 나오셨다. 가죽가방을 든 아버지는 구두를 고쳐 신으시며 말씀하셨다. 인자함이 묻어나는 목소리에 미희는 마음이 따뜻하게 가라앉았다.


“미희야, 무슨 괴상한 꿈을 꾼 건지는 모르겠지만 너무 걱정하지 말렴, 우리 소중한 딸, 아버지가 항상 지켜줄테니까.”


아버지는 현관에서 미희의 머리에 손을 얹으셨다. 커다란 손이 머리를 다정하게 쓰다듬자 미희는 기분이 한결 나아짐을 느꼈다. 미희의 표정이 밝아지자 아버지는 옅게 웃으셨다.


“퇴근 길에 맛있는 걸 사 올테니까, 오늘도 건강하고 즐겁게 지내다오. 네가 웃는 얼굴이어야 아빠도 힘이 나고 행복하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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