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갈피는 하얀 봄에, 04.

04. 네 뜻이 정 그러하다면.

by 신지연

어머니의 된장찌개를 한 입 먹으며, 미희는 생각에 잠겼다. 20대로 돌아온 지금,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 뭐가 있을까. 짭조름한 맛이 입안에 퍼져, 구름 속을 걷는 생각에 현실성이란 염분이 더해졌다. 마음같아서는 당장 무엇이라도 할 수 있을 것 같았지만...!


텔레비전에서는 시대를 넘나드는 유행곡이 흐르고 있었다. 장난꾸러기 미은이가 수저를 입에 물고, 텔레비전에 시선을 두었다. 고개를 까닥이며 식사를 건성건성하자 어머니는 수저로 미은이의 이마를 아프지않게 한 대 때렸다.


“아야야!”


미은이 얻어맞은 이마를 매만지며, 밥을 한 술 떠 먹었다. 어머니는 미은이의 밥 위에 절인 깻잎을 한 장 얹어주셨다. 미희는 수저를 내려놓았다. 밥이 자꾸만 목에 걸렸다. 생각말미, 하고싶던 일들을 모두 놓아버려야 했던 60대의 날들이 떠올랐던 것이다.


“왜 더 안 먹고...”


어머니는 달걀부침을 반으로 쪼개 미희와 미옥이의 그릇에 옮겼다. 미선이 툴툴거리자, 어머니는 두부부침을 미선의 밥 위에 한 조각 올려주었다. 미희는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새로운 삶의 기회를 얻은 지금,

할 수 있는 또한 하고 싶은 일을

당장 시작하는 게 좋겠어.

괜히 지체할 필요 없어.


미희는 자세를 바르게 했다.


“어머니, 저 공부를 더 하고 싶어요.”

“난데없이 왠 공부?”


미희의 말에 어머니는 동그랗게 눈을 치켜뜨셨다. 미옥이는 놀라서 집었던 김을 떨어뜨렸다. 미선이의 눈이 데굴데굴 구르며 분위기를 읽는 것도 보였고, 미은이는 입에 물고 있던 밥만 꼴깍 삼켰다. 미희는 결이 단단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수험생인 미옥이와 같이 공부하겠어요. 대학에 가고 싶어요!”


어머니는 얼굴이 빨갛게 물들었다. 무언가 들어선 안될 부정한 말을 들은 것과 같이, 어머니는 미희의 각오에대해 애써 언급을 피했다. 어머니께서 대답을 피하시자 미희는 다시 한 번 힘주어 말했다.


“오늘부터 공부할 거니까, 말리셔도 소용없어요.”

“너는 도대체 어떻게 된 애가...”


어머니의 타박에, 미옥이와 미선이, 그리고 분위기를 제대로 읽지 못하는 미은이마저 입을 다물었다. 미희는 고개를 저었다. 그녀의 두 눈이 맑게 빛났다.


“지지해주지 않으셔도 좋아요, 그래도 상관없이, 저는 오늘부터 대학을 가기 위한 공부에 열중할 거니까요.”


“첫째 딸은 살림 밑천이라는 말도 모르니, 네 나이에 무슨 대학엘 가겠다고 떼를 쓰는거야.”


“제 나이가 왜요, 저 이제 겨우 20대인데...!”


미희의 말 대꾸에 어머니는 어쩔 줄 몰라하며 눈만 깜빡이셨다. 그리곤 손을 내 저으셨다.


“더 들을 것도 없어. 여자 나이 20대면 결혼을 준비해야 할 나이지, 여자가 무슨 대학! 미옥이 너도 대학갈 생각은 꿈에도 하지마.”


어머니는 왜 당연한 소릴 재차 해야하냐며, 목소리를 높이셨다. 물에 젖은 앞치마에 손을 닦고서, 어머니는 식탁에서 몸을 일으키셨다. 뒤돌아선 어머니의 등에 대고 미희는 뭔가 더 말하려 했지만, 이내 말을 삼켰다. 인생을 살아감에 있어서 어머니를 설득할 필요가 없었다. 아니, 자신의 삶에있어 타인의 의지가 더 이상 개입되지 않길 바랐다.


“잘 먹었습니다.”


미희는 식탁에서 일어나서 방으로 향했다. 어머니는 여전히 대답하지 않으시고 등만 보여주셨다. 미은이는 눈치를 보느라 수저질이 멈춘지 오래였다. 미선이는 텔레비전의 노랫소리를 작게 만들었다.


“저, 저도 잘 먹었습니다.”


언니를 따라 황급히 인사를 마친 미옥이는, 수저를 내려놓았다. 그리곤 조용히 미희의 뒤를 따랐다. 닫힌 방문을 열고 언니의 방에 들어선 미옥은 조심스러워했다. 그녀는 발 뒷꿈치를 들고 살금살금 다가가, 책상에 바르게 앉아있는 미희를 뒤에서 껴안았다.


“언니.”


자신을 껴안는 손길에 미희는 뒤를 돌아보았다. 둘째 미옥이, 귀여운 녀석이 깨끗한 까만 눈을 하고 자신을 응시하고 있었다. 미옥의 두 눈에 듬직하고 멋진 것이 담겼다고, 미희는 생각했다. 뜻을 꺾지 않았던 자신이 자랑스러웠다.


“나는 언니를 응원해.”


미옥은 껴안았던 팔을 내리며, 침대 한 편에 살짝 걸터앉았다. 침대의 낡은 스프링이 삐걱거렸지만, 피어오른 이불의 햇살냄새에 풍경이 궁상스레 어그러지지 않았다. 반짝이는 눈을 빛내며, 미옥은 재차 말했다. 낭만과 동경을 품듯, 목소리는 조금 격양되어 있었다.


“언니가 20대의 삶을 다시 살게 되면서 가장 먼저 하기로 결심한 것이 공부라니, 참 놀라워.”


미옥은 긴 머리카락을 매만지며 마저 물었다. 창가에서 비친 햇살이 머리카락에 감겨 빛묶음이 되어주었다.


“그 곳에서 나는 어떤 모습이었지? 대학교에 갔나요?”


미희는 여동생의 모습이 참 아름답다고 여겼다. 말간 얼굴로, 큰 눈을 연신 깜빡깜빡할 때마다 별이 튀어오르듯 빛이 반짝했다. 작은 입술로 오물거리며, 내일의 자신을 묻는 그 모습도 귀엽고 사랑스러웠다.


“아니, 너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명문대의 학생을 만나 연애를 하고, 아이를 갖게 되어 결혼을 했었어.”

“세상에, 내가 아이를 갖는다니...”


미옥이는 조금 생각하는가 싶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나 제법 멋진 삶을 살았네. 가능하다면 이번에도 똑같이 살고 싶은데...”


“아니, 나랑 같이 공부해서 대학에 가는 건 어때.”


미희의 권유에 미옥은 고개를 저었다.


“글쎄, 난 아이를 갖고 일찍 결혼하는 삶이 더 끌리는 걸.”


미옥은 자신의 배에 두 손을 가져다댔다. 그리곤 뽀얗게 웃었다. 미희는 미옥의 웃음을 기억해냈다. 첫 아이를 낳고서 병실 침대에 누운 미옥은 꼭 지금처럼 웃어보였다. 흐트러진 머리와 땀내 나는 몸으로 세상을 모두 가진 사람처럼.


“언니는, 대학교 가서 어떤 공부를 하고 싶은데?”

“나는...”


미희는 책상에 팔꿈치를 대고 손으로 턱을 괴었다. 언니의 눈에 거센 희망과 빛나는 설렘이 들어찬다고 미옥은 분명히 느꼈다. 미희는 후후, 소리내어 웃으며 말을 이었다. 낮게 깔리는 웃음소리는 기분좋게 두 사람을 하나로 묶었다. 마치 비밀을 엿듣는 것처럼 미옥은 귀를 쫑긋거렸다.


“나는 사진을 공부할거야. 사진작가가 될거야.”


미희의 말은 일종의 선언과도 같았다. 스스로의 삶을 원하는 형태로 가꿔나가 마주할 미래를 선택한다는 것. 살아가는 대로 사는 것이 아닌, 바라고 꿈꾸는 방향으로 조금씩 나아가 이상적인 행복을 거머쥔다는 것. 미희는 2회차 인생을 좀 더 만족스럽게 살아내고자 마음을 단단히 다잡았다. 어머니의 반대와 어려운 가정형편을 포함한 기타 다른 것들은 더 이상 장애가 되지 않았다. 미희는 자세를 고쳐, 바르게 앉아 책을 펼쳤다.


그렇게 몇 주간, 미희는 문장에 감겨 살았다. 어머니의 꾸중에도 아랑곳 하지 않고, 책장이 닳도록 공부하고 또 공부했다. 미선이와 미은이가 같이 놀자고 졸라대도, 미옥이더러 동생들을 데려가라 말하곤 했다. 어떤 순간에도 두 눈은 책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구정날이 되자 어머니를 대신해, 미희와 세 동생들은 무거운 식재료들을 대신 날랐다. 어머니는 왜들 안하던 짓을 하느냐, 되려 성을 내셨지만, 입꼬리는 곱게 말아져 올라가 계셨다. 미희는 하루종일 어머니 곁에 머물며 안전에 유의했다. 별탈 없이 설을 보낸 미희는 주먹을 꼭 쥐었다.


다가올 미래를 내 의지대로 바꿀 수 있어.


미희는 책상에 도로 앉았다. 40년간 지속되었던 어머니의 허리통증, 그 불편함을 유발하는 사고를 능히 막아냈으니, 앞으로의 삶 역시 불운을 줄이고, 의지대로 살아가면 되는 것 아니겠는가. 미희가 막 책장을 넘기던 때였다.


어머니께서 방에 들어오셔서 침대에 걸터 앉으셨다.


“또 공부하고 있니?”

“네, 저는 꼭 대학에 갈 거에요.”


“대학에 가서 뭘하려고.”


미희는 조금 긴장감이 들었다. 평소 어머니라면 책을 던져버리시거나 화부터 내시기 마련이었는데... 오늘의 어머니는 자신에게 말을 걸고 뜻을 묻고 계셨다. 책상에 앉은지 근 한달만의 일이었다.


“사진을 배우려고 해요, 사진작가가 될 거에요.”

“그래서. 그 사진작가라는 것이 된 후에는?”


미희는 옅게 미소지었다.


“국내는 물론 전세계를 돌아다니며 사진을 찍을 거에요.”

“결혼은?”


어머니의 우려가, 걱정이 느껴져서 미희는 조금 놀란 얼굴이 되었다. 여자의 행복이 가정에서 일궈진다고 강하게 믿는 어머니. 평생 그렇게만 알고 본인 역시 같은 모습으로 살아오셨던.


“결혼은 아직 모르겠어요. 일단 저 자신을 위해서 살고 싶어요.”

“너 자신을 위해서...”


자신의 말을 곱씹으시는 어머니께 미희는 조심스레 되물었다.


“제가 행복하길 바라시지 않나요?”

“...”


“저는 행복하기 위해서 카메라를 잡으려는 거에요.”


어머니는 미희의 손을 잡았다. 어머니, 자신의 행복은 곧 딸, 미희라는 것처럼.


“여자 혼자서 세상을 살아나갈 수 없어, 미희야.”

“그건 나중 일이에요.”


“이 시기가 지나면, 젊음이 사라지면 결혼을 할 수 없어, 미희야.”


“다른 세상이 펼쳐져요.”


미희는 단호하게 말했다. 어머니의 두 눈이 조금은 커졌다. 미희는 어머니의 손을 놓지 않고, 오히려 손에 힘을 조금 주며 말을 이었다.


“나이에 상관없이 사람들이 자유롭게 결혼을 하는 세상, 여자도 배우고 깨우쳐 삶을 스스로 건사할 수 있는 세상이 곧 찾아와요. 어머니. 저는 그런 세상을 살아갈 힘이 필요해요.”


어머니는 조금 슬픈 표정으로 미희의 뺨을 어루만지셨다.


“네 뜻이 정 그렇다면, 공부하거라.”


어머니는 미희가 말한 세상에 대해 상상할 수 없다는 눈초리로, 하지만 애정이 듬뿍 담긴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말에는 다가올 봄날의 꽃향기가 어려있었다. 어찌나 향긋하고 달콤한지, 미희는 눈물이 날 것 같았다.


“미희가 결혼하지 않아도, 엄마가 곁에서 우리 딸을 평생 지켜줄테니까. 독신자로도 편히 생활할 수 있도록 건사할테니까.”

이전 03화책갈피는 하얀 봄에, 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