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 외로이 걷는 지금이 행복하진 않지만...
“신태수이올시다. 멀리서 아가씨를 바라보는데 예뻐서 도무지 눈을 뗄 수 없었소.”
앳된 젊음이 푸릇하게까지도 느껴지는 남편을 보고 미희는 두 손으로 입을 가렸다. 마지막으로 보았던 모습은 염을 하느라 천에 칭칭 감겨있는 서러운 모습이었다. 사고로 인하여 한 쪽 머리는 짓눌린 듯 으깨져 있었고, 그마저도 눈물에 의해 잘 보이지 않았다.
지금의 남편은 흰 이를 드러내고 밝게도 웃었다. 아름다운 빛의 세기가 흡사 태양이었다.
미희는 눈물이 가득한 얼굴로, 두 팔을 뻗어 남편을 끌어안았다. 목덜미에선 시큰한 땀 냄새가 났지만, 그마저도 못견디게 반가웠다. 남편은 움찔하더니 얼어붙은 듯 몸이 굳었다. 냉정을 찾으려 애썼지만 미희는 마음을 다잡는 것이 쉽지 않았다.
돌아가신 아버지께서 정정한 모습으로 되돌아오신 것처럼,
죽은 남편이 청년의 모습으로 살아 돌아오다니.
우리, 이토록 건강하게 다시 만나다니.
예기치 못한 장소에서의 만남이라 감정은 더욱 물 밀듯 밀어닥쳤다. 놀라움을 제대로 씹어 삼키지 못한 미희가 어물대며 말을 이었다. 미희는 그의 뺨을 연신 쓰다듬었고, 지난 생, 사고로 뭉개졌던 머리 한 쪽을 조심히 매만졌다. 그녀의 울먹거림에 태수는 눈만 껌뻑거렸다.
“여보, 머리는 좀 괜찮아요? 아프지 않아요?”
“여보라니, 머리는 아가씨가 아픈 것 같은데...”
미희는 태수의 말에 머리를 매만지던 것을 그만두고 손을 등 뒤로 감췄다. 얼굴에 열이 올랐고, 울먹이느라 숨이 찼다. 태수는 미희를 부축해 의자에 앉도록 도왔다. 그리고 그 옆자리에 나란히 앉았다. 좌석을 나누는 가운데 손잡이를 등 뒤로 제끼고, 태수는 미희에게 바싹 붙어 앉았다. 치근거리기 위해서가 아닌 자신을 안정시킬 요량으로 느껴져, 미희는 그와의 거리감이 싫지 않았다.
“나를 두고, 왜 여보라고 부르는지 모르겠지만 듣기에는 나쁘지 않군.”
미희는 숨을 골랐다. 마음의 해일이 잠잠해져, 생각은 깊이를 더했다. 너무 반가워 알음체를 해 버렸지만, 그에게 있어서 나는 초면의 낯선 여성. 미희는 어떻게 처신해야 할지 천천히 생각하기 시작했다. 이번 생을 어떤 방식으로 살 지에 대해서만 고민해 왔었지, 남편과의 만남에대한 고민은 뒤로 미뤄뒀던 것이 사실. 하지만 언제고 다시 만날 운명이었다. 예기치 않은 장소 그리고 기대치 않던 모습으로 만났다는 것이 놀라웠지만.
“이봐요, 아가씨. 얼굴이 어두워졌는데, 괜찮아요?”
미희는 불안한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내가 이전의 삶을 토씨 하나 틀리지 않게 있는 그대로 이야기 한다고 해도 그가 믿어줄 지는 알 수 없는 일. 또한 고스란히 믿어준다고 해도 그 또한 문제였다. 자신이 꿈꾸는 삶은, 예전과 분명히 다른 형태였기에, 이번 삶 역시 과일가게 안에서 수명이 다하길 기다리고 싶지 않았다. 미희의 눈빛을 읽어낸 태수는 어렵사리 입을 뗐다.
“어찌할 바를 모르는 불안정한 눈빛이 마음에 콱 박히는군요.”
미희는 눈을 감는 쪽을 택했다. 태수의 시선이 자신의 얼굴을 조목조목 핥는 느낌이 들었다. 태수는 눈을 감아버린 미희에게 말을 보탰다.
“어디로 가고 있습니까?”
미희는 대답하지 못했다. 간신히 얻은 두 번째 삶이 방향을 잃고 휘청대고 있었다. 남편의 갑작스런 등장은 눈물이 왈칵 쏟아질 만큼 감격스러웠지만, 그와 동시에 비겁한 불꽃이 되었다. 마음에 붙은 푸른 불은 점점 크게 자라나, 내일에 대한 희망까지 새카맣게 태웠다. 또 다시 잿더미만 손에 쥐고 있을 순 없다고 생각한 미희는 필사적으로 저항했다.
“당신과는 상관없어요.”
“아까는 갑작스레 울먹이며 나를 끌어안고, 내 얼굴과 머리를 마구 매만지더니...”
“그건...”
“그건?”
미희는 아랫입술을 꾹 깨물었다.
“당신과는 상관없어요.”
“도대체 알 수가 없군.”
기차는 빠른 속도로 삶의 중심을 향해 나아갔다. 인생의 부차적인 부분을 차지하는 세속적인 쾌락주의, 그 우람한 빌딩들이 하나둘 모습을 감추고, 삶의 본질에 가까운 초록이 하나둘 모습을 드러냈다. 연민의 줄기를 따라 자라난 차창 밖 잎사귀들이 거센 활력을 뽐냈다. 미희는 시선을 창 밖 풍경에 두고 있었음에도 자신을 훑는 눈길을 분명히 느낄 수 있었다. 옆자리에 앉은 그는, 가련한 무언가를 보는 듯, 달큰한 눈길로 자신을 자꾸만 살폈다.
아직 여물지 않은 사랑, 옅은 설레임이 묻어나는 눈길에, 미희는 심연의 밑바닥으로 가라앉았다. 이는 거대한 서글픔이었다. 우리 겨우 다시 만났는데, 보다 나은 삶을 위하여 서로의 삶에서 한 발 물러서야 한다니. 미희는 울음을 삼키려 애썼다. 남편의 마지막이 자꾸만 눈 앞에 아른거렸다. 삶에 지쳐 하고싶은 공부를 제대로 끝마치지 못하고, 담배 필터만 재차 씹던 그이. 사랑의 결실이었던 아이들이 어느덧 족쇄가 되었고, 채 몇 평 되지 않은 허름한 과일 과게가 인생의 업적이 되었다. 미희는 주먹을 꼭 말아쥐었다.
이번 생에서 만큼은 그를 놓음으로써 능히 구원하리라.
큰 결심을 한 듯, 미희가 작은 주먹을 말아쥐자, 태수는 고개를 갸웃했다. 거센 각오를 철길삼아 기차는 힘차게 내달렸다. 미희의 생각도 그마만큼 거침없이 나아갔다. 그가 다른 여성을 만나 아이를 낳는 것이, 자신과의 수십년된 결혼보다 행복할 지는 알 수 없지만, 최소한 과일을 배달하다가 머리가 으스러지는 사고는 당하지 않을 것이다. 엄청난 액수의 병원비를 필요로하는, 아픈 첫째 아이가 태어나지도 않을 것이고, 덕분에 어쩌면 대학원 공부를 계속 할 수도 있을거야. 미희는 손바닥에 손톱이 박힐정도로 주먹을 세게 쥐었다.
남편을 포기하면 우리 지우,
소중한 첫째 아들을 만날 수 없어.
하지만,
하지만.
미희의 절망이 걸림이 되었을까, 바닷가에 닿은 기차가 겨우 멈춰섰다. 목적지에 도달한 미희는 짐가방을 매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마치 달아나는 것처럼 미희는 허둥댔다. 문제는 그였다. 태수 역시 짐을 꺼내며 하차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미희는 겁에 질린 듯 그에게 되물었다. 한껏 움츠린 어깨는 감출 수 없는 걱정을 드러냈다.
“날 따라올 생각인가요?”
“무슨 소릴 하는 겁니까.”
“이번 역에서 내리는 것 정말 맞아요?”
“이봐요, 아가씨. 자의식 과잉도 아니고, 정말 머리가 어떻게 된 거 아니오?”
태수는 엷게 웃으며, 핀잔을 주었다. 괜한 우려라는 듯, 그는 미희보다 앞서 걸었다. 남성의 보폭은 왜 이렇게 클까. 저번 삶, 남편이 당차게 걷는 모습을 한동안 잊고 살았음을, 미희는 새삼 깨달았다. 반듯하게 펴진 등과 넓은 어깨, 그의 아름다운 뒷모습을 바라보며, 그녀는 승강장을 느리게 걸어갔다.
그래요. 나를 지나쳐서, 그대로 앞질러서
홀로 걸어가세요.
외로이 걷는 지금이 행복하진 않지만,
우리 더 이상, 그날처럼 불행하진 않을거야.
감상에 젖은 미희는 잠시 우두커니 멈춰섰다. 남편이 점차 멀어지는 것이, 그렇게 삶에서 지워지는 것이 보였다. 미희는 카메라를 꺼내, 작아지는 그의 뒷모습을 앵글에 담았다. 셔터를 연달아 누른 그녀는 기운이 빠진 사람처럼 승강장에 웅크리고 앉았다. 그리고 참아왔던 울음을 터트렸다. 사랑하는 감정을 억누르는 것이 이토록 힘겨운 일인지 예전에는 미처 알지 못했다. 보내주는 것이 이토록 괴로운 일인지 알고 싶지 않았다. 카메라를 품에 안고서 한참을 흐느낀 미희는 비록 다독여주는 손길은 없었지만, 상처없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자신을 포함한 모두에게 있어서 가장 좋은 선택, 그리고 바른 결정을 했다고 여겼기 때문이었다.
‘우리는 어떠한 형태로든 다시 만날 수 있을 거에요. 가족이잖아요...’
장례식장에서 지우가 했던 말이 떠오른 건 왜였을까. 파리한 낯빛을 한 지우가 눈 앞에서 방긋 웃고 있었다. 미희는 허공에 손을 뻗었다가 이내 팔을 거뒀다. 그녀는, 허망한 마음으로 스스로 반문했다.
저번 삶과 다른 선택들을 하더라도, 소중한 지우를 다시 낳을 수 있을까.
비참한 결말을 피해서, 남편과 다시 사랑할 수 있을까.
미희는 걸음에는 힘이 없었다. 자신이 없었다.
텅 빈 승강장을 가로질러, 미희는 개찰구를 빠져나왔다. 그리곤 아버지께서 앞서 적어주신, 오래된 친구분의 집 주소를 확인하고, 택시에 올라탔다. 해안도로를 따라 달리는 내내 미희는 검푸른 바다에서 흰 포말이 일어나는 것을 감상했다. 파도가 밀어닥칠 때마다 마음이 뾰족하게 깎여나가는 기분이었다.
“잠시만 세워주세요.”
바닷가 모래사장에 눈이 붙박힌 미희가 자신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앞서 기차에서 만났던 남편이 검은 바닷속으로 걸어 들어가고 있었다. 거침없이, 한결같이 빠른 속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