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 삶이란 파도에 휩쓸려, 검은 냉기에 숨이 틀어막혀도
다급한 요청에 의한 택시의 급정거로, 미희는 몸이 앞좌석으로 거세게 튀어나갔지만, 지금은 부딪쳐 아파하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미희는 가방도 제대로 챙기지 않고, 황급히 차 문을 열었다. 어깨에 걸린 커다란 카메라가 차체에 닿을 때마다 요란한 소리를 내며, 조심해 달라 투덜댔지만, 미희의 눈과 마음 안에는 오직 남편의 모습만이 담겼다.
자신이란 짐을 내려놓고
장애없는 인생의 기쁨만을 만끽하길 바랬건만,
어째서.
어째서 깊은 바닷 속으로,
짠내나는 서글픔으로 자청해서 잠기는 거야.
삶의 중심에서 스스로 멀어져,
거대한 냉기에 영원히 갇히려는 거야.
탈의없이 바닷 속으로 거침없이 나아가는 남편은 이미 허리까지 물에 잠긴 상태였다. 물 먹은 셔츠에 의해 살갗이 비쳤다. 미희는 모래 사장에 털썩 주저앉았다.
지금 보이는대로 생각하는 것이 맞다면, 아마도 그는.
넋이 나간 미희는 천천히 카메라를 들어올렸다. 그리고 역광으로 그의 뒷모습을 촬영했다. 바다와 올곧게 마주한 그는, 애처로워 보였고 또 위태로워 보였다. 무엇이 그를 등 떠밀고 있는지 모르겠으나, 푸릇한 그에게 서려있는, 검은 젊음이 아름다웠고, 달콤한 젊음을 옭죄는 시련조차 찬란해 눈물겨웠다. 미희는 초를 쪼개, 빠른 속도로 셔터음을 냈다. 알 수 없는 그의 슬픔과 번민까지 모두 다 앵글 안에 채워 넣었다.
바닷물이, 어느덧 어깨를 적실 정도가 되자, 연속으로 사진을 남기던 그녀는 어깨에 매고 있던 카메라를 벗어, 모래 위에 내던져 두었다. 택시기사가 짐가방을 들고 다가오고 있었음에도, 미희는 자리에서 일어나 바다로 달려갔다.
“지우 아빠!”
간절해 터져나온 외침이 그의 팔을 잡아챘는지, 남편이 뒤를 돌아보았다. 미희는 탈의없이 바닷물에 뛰어들었다. 거센 물살에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 쉽지 않았음에도, 그녀는 태수와의 거리를 빠르게 좁혔다. 그녀는 간청하는 목소리로 그의 걸음을 잡아세웠다.
“여, 여보, 지우 아빠, 안돼!”
미희의 손이 그의 팔에 닿았을 때였다. 커다란 파도가 일어, 두 사람을 고스란히 집어 삼켰다. 물 속에서 아무리 버둥거려보아도, 짓누르는 수압이 거세서 그 힘을 거스르기가 쉽지 않았다. 미희는 숨이 막혀 몸을 뒤틀었다. 얼음장처럼 차가운 짠물이 코와 입으로 끊임없이 넘어들어와 불덩이를 삼킨 듯 통증이 느껴졌다. 서러워 흘린 눈물이 더해져 바다가 넘칠 무렵, 아마 그 즈음이었다. 강인한 팔이 자신의 허리를 다급히 감아, 안아올렸다. 미희는 자신을 건져내는 손에 몸을 의탁하고, 저항없이 그 품을 파고들었다.
삶이란 파도에 휩쓸려, 검은 냉기에 숨이 틀어막혀도,
그이와 함께라면.
모래사장에 바르게 눕혀진 미희는 눈 앞이 어두워짐을 느꼈다. 너무 추웠고, 어지러웠다. 자신을 내려다보는 남편의 얼굴을 보니, 물에 빠진 자신을 건져낸 사람은 아마 그이였던 것 같다. 점차 의식이 흐려가는 가운데, 심폐소생술을 하려는지 가슴을 압박하는 손길이 느껴졌다. 남편은 빠르게 손을 놀렸다. 미희는 자신의 입술에 연달아 닿는 감촉, 그리고 숨이 불어넣어지는 감각에 삼켰던 물을 한번에 토해냈다. 쿨럭대며, 호흡을 가다듬은 미희는, 기운이 빠졌는지 모래사장 위로 깊게 몸을 묻었다. 눈 앞에서 소리치는 태수의 얼굴이 점점 흐려졌다. 투박한 외침이긴 했어도, 다시 들은 그의 목소리에 반갑다고 느끼며, 미희는 눈을 감았다. 까무룩 세상이 어둠에 잠겼다. 점멸하는 의식으로 미희는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삶이란 파도에 휩쓸려, 검은 냉기에 숨이 틀어막혀도,
그이와 함께라면.
빛이 돌아온 것은, 알콜 냄새 때문이었을 것이다. 살랑이는 커튼과 햇빛이, 무채색 병실에 온기를 더해주고 있었다. 협탁의 화병, 그 안에 흰 안개꽃이 풍성하게 꽂혀있었다. 헤매도는 시선 끝에, 미희는 병원복 차림의 자신을 발견했다.
“정신이 좀 듭니까.”
같은 병원복 차림의 태수가 옆 침대에 걸터 앉아있었다.
“아가씨의 옷은 간호사들이 갈아입혔습니다.”
미희는 천천히 몸을 일으켜 침대에 걸터앉았다. 머리가 어지럽고, 약간의 두통이 있었다. 미희는 자신의 팔에 달려있는 링겔을 깨달았다. 그는 미희에게 도로 누우라고 권유했다. 미희는 그의 말대로 몸을 도로 침대에 눕혔다. 피곤이 쉬이 가시질 않았다.
안정을 취한 지 조금 시간이 흘렀을까. 자신의 들숨과 날숨이 고르게 자릴 잡은 것을 알아차렸는지, 태수의 목소리가 이불 속을 파고들었다.
“묻고 싶은 게 많습니다.”
미희는 대꾸없이 그저 듣고만 있었다. 그의 목소리가 참 풋풋하다고 느끼며. 바람이 창문을 넘어왔고, 속이 비치는 얇은 커튼이 바람을 따라 하늘거렸다. 너울대며 춤을 추는 빛은, 몽환적인 감정을 불러일으켰다. 세상을 떠난 남편과 다시 편안히 대화하는 날이 오다니, 정말 꿈만 같구나. 기분좋은 나른함에 빠진 미희를, 그는 단박에 건져 올렸다.
“왜 자꾸만 나를 두고 여보, 라고 부르는 겁니까?”
그의 목소리에는 순수한 호기심만이 깃들어있었다. 미희는 어떻게 말해야 할까, 그리고 어디까지 말해야 할까, 깊이 고민했다. 우린 사실 오래 전에 결혼한 사이고, 당신이 죽어 장례를 치루던 날, 나는 다시 20대가 되었어요. 덕분에 나는 신의 선물같은 두 번째 삶을 살아가고 있는 중이에요, 라, 사실대로 고하더라도 그가 자신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어줄런지.
“그리고 바다에서, 왜 나를 방해했습니까?”
“그거야 당연히 사ㄹ...”
사랑하니까, 라고 답하려던 미희는 입을 다물었다. 지금의 남편은 어떤 식으로 설명해도, 자신의 말을 이해 못할 것이 분명했다. 초면과 다름없는 사이인데, 난데없이 사랑을 언급하면 까무러치게 놀라겠지. 역시나 그는 미희의 말을 그대로 따라하며, 뒷말을 물었다.
“그거야 당연히 사...?”
“그거야 당연히 사람의 생명이 걸린 일이니까.”
남편은, 나지막한 목소리로 천천히 입을 뗐다. 마치 고해성사를 하는 사람처럼, 그는 자신의 어둡던 삶의 궤적을, 갖가지 죄악을 모두 털어놓았다. 어릴 적 부모를 잃어 삶이 녹록지 않았다는 것, 또래 친구들처럼 학교에 진학하기보다는, 어린 나이에 사회에 나와 안해 본 일 없이 오로지 돈을 쫓아 살아왔다는 것. 일가친척이 없어, 의지할 사람없이 매일같이 고독과 싸워왔다는 것. 홀로 살아가는 것이 두렵고, 세상이 너무나 무섭다는 것. 미희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지난 인생을 곱게 경청했다. 모두, 저번 생에도 들었던 이야기들이었다. 자신을 만나기 전까지는 무척 우울하고, 염세적이었다던 남편. 철저히 혼자였던 그였다. 마음 속 슬픔을 한참 비워내자, 수치심마저 휘발되어 옅어진 듯. 남편은 조금 후련한 표정이 되었다. 그의 안색을 살핀 미희는 되물었다.
“정말 죽을 생각이었어요?”
“네.”
일말의 머뭇거림 없는 확답에, 미희는 입을 다물었다. 지울 수 없는 낭패감이 그녀를 감쌌다. 자신이 없는 남편의 삶이 행복할 거라 단언할 수는 없었지만, 최소한 노년의 비참한 최후만큼은 피할 수 있으리라 여겼다. 눈물이 날 만큼 반갑던 첫 만남에, 그를 붙잡지 않았던 것, 알음체조차 하지 않았던 것은 모두 그런 이유에서였다. 그런데, 자신을 만나지 않았다면 그이는 스스로 생을 마감했을.
“아가씨는 왜 이 곳에 온 겁니까? 나처럼 죽으려던 것은 아닌 것 같고….”
“일상에서 벗어난 낯선 풍경의 사진을 찍기 위해 왔어요.”
태수와 미희의 시선이 침대 사이에 놓인 협탁, 그 위의 카메라에 옮겨졌다. 안개꽃 아래의 카메라는 무척 서정적으로 보였다. 미희는 단어를 신중하게 고르고, 또 말을 몇 번이고 삼켰다. 그녀가 뭔가 말하려는 듯 입을 달싹인다는 것을 알아챈 태수는, 옅게 미소지었다.
“무슨 말을 하려고, 그리 뜸을 들이는지.”
“만약 당신이 지금 당장 삶의 이유를 찾기 어렵다면.”
미희는 천천히 몸을 일으켜, 바르게 앉았다. 그리고 카메라에서 눈을 떼고 보다 소중한 것을 바라보았다. 그녀가 적극적으로 눈을 맞춰오자 태수는 얼굴을 조금 붉혔다. 미희는 침대에서 완전히 일어나, 옆 침대에 걸터 앉아있는 남편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그의 달아오른 뺨을 어루만졌다. 그의 동공이 수줍게 흔들렸지만, 미희는 손을 거두지 않았다. 연민을 지우고, 진심어린 사랑만을 담아서, 미희는 조심스레 권했다.
“출사를 온 나와 며칠간 돌아다니며, 함께 사진을 찍지 않겠어요?”
그의 얼굴에서 붉은 물이 뚝뚝 떨어질 것만 같아, 미희는 말 끝을 흐렸다. 가까운 거리감에 남편의 숨결이 입술에 닿았다. 미희는 그대로 입을 맞추고 싶은 충동이 들었지만 애써 마음을 억눌렀다. 그리고, 유혹하듯 그에게 삶의 의욕을 불어넣었다.
“내가 좋은 기억을 많이 만들어 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