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8. 나만의 약사여래
읍에서 조금 떨어진 한적한 농가주택이었다. 아버지께서 숙소로 소개해주신, 지인 분의 집은, 대청마루가 있는 넓은 마당을 끼고 있었다. 감나무가 크게 자라고 있는, 정원이 유독 예쁜 집으로 푸른 기와가 인상적이었다. 집의 뒤편에는 도자기를 굽는 공방이 마련되어있었다. 자신을 도예가로 밝힌, 아버지의 고교 친구라는 집주인 분은, 태수의 것까지 방 2개를 기꺼이 내어주었다. 촬영 보조라는 어설픈 거짓말에도 아저씨는 많은 것을 묻지 않았다. 미희는 옷을 갈아입은 후, 간단한 짐을 꾸려, 숙소를 빠져나왔다. 태수 역시 아저씨의 옷을 빌려입고 그녀를 따라나섰다. 머뭇대며 두세걸음 떨어진 곳에 서성일 뿐, 다가오질 못하기에, 미희는 먼저 팔을 뻗어 남편의 손을 잡았다. 태수는 부끄러운 듯 귀가 빨갛게 익었다. 하지만 마주잡은 손은 놓지 않았다.
두 사람은 인근의 산으로 향했다. 중턱에 위치한 사찰에 가기 위함이었다. 숲길은 생각보다 험했다. 흙이 단단하지 않고 부슬대며 부드러웠지만, 돌부리가 많아서 헛디뎠다간 넘어지기 쉬웠다.
버스 안에선 별 말이 없던 태수가, 산에 오르자 조금 기운이 났는지 연신 말을 건네왔다. 미희는 고개를 끄덕였다. 남편은 등산을 좋아하던 사람이었다. 첫 촬영장소로 산을 고른 까닭도 그런 이유에서였다. 남편이 삶을 포기하지 않도록, 좋아하는 것들을 일깨워줄 요량이었다. 태수는 손을 뻗어 나무를 매만지기도 했고, 두 눈을 감고서, 숲의 공기에 흠뻑 취하기도 했다.
계곡에 닿자, 태수는 잠시 신발을 벗고 발을 담궜다. 미희는 카메라를 꺼내서 계곡에 발을 담근 남편의 모습을 앵글 안에 담았다. 튀어오르는 물방울과 빛이 반사되어 그려진 작은 무지개 하나 남김없이.
“나같은 걸 찍어도 괜찮은 겁니까? 아름다운 나무와 계곡, 다람쥐 같은 걸 찍는 게 좋지 않을까요.”
태수는 발을 말리다가, 고개를 떨궜다. 그의 말투로 부끄러움을 함께 읽을 수 있었다. 미희는 카메라를 가방에 수납하며, 즉답했다. 당연한 것을 말하듯, 말투는 담담하고 태연했다.
“당신은 아름다워요.”
미희는 그에게 커다란 나무에 등을 기대고 앉아줄 것을 요청했다. 태수는 거절하지 않고, 부탁받은 대로 나무에 등을 기대고 앉았다. 하지만 카메라 렌즈는 쳐다보지 못하고 하늘을 우러러 보았다. 미희는 하늘을 올려다보는 그의 얼굴을 클로즈업해서 한 장, 나무에 기댄 등까지 보일만큼의 흉상 사진을 한 장, 그리고 등을 기댄, 커다란 나무의 형태가 전부 보일 만큼 넓게 한 장을 찍었다.
이에 그치지 않고, 태수에게, 나무들 사이에서 팔을 뻗고 선 자세도 부탁했다. 태수는 렌즈와 올곧게 마주 서서 눈을 감았다. 두 팔을 가지처럼 뻗은 채 나무들 사이에 섰다. 미희는 숲의 적막감까지 고스란히 옮겨 담아 촬영했다. 앵글 속의 그는 마치 한 그루 나무 같았다. 하늘까지 닿기 위해서 치열하게 고군분투하는. 가엾어 너무나 사랑스러운. 간절해 무척이나 어여쁜.
미희는 그의 감은 눈, 그리고 곧게 뻗은 팔에서 슬픔을 함께 읽었다. 바다에 뛰어들던 그 뒷모습이 자꾸만 떠올랐다. 굳세게 내딛은 두 다리가 애처로웠다. 시야가 뿌옇게 흐려져, 미희는 카메라를 잠시 내렸다. 눈을 감고 있는 태수는 그 사실을 깨닫지 못해 계속 팔을 뻗고 나무처럼 서 있었다. 미희는 천천히 그에게 다가가 두 팔을 벌려 그를 끌어안았다. 놀란 남편이 눈을 떴고, 떨리는 숨결로 말을 잇지 못했다. 미희는 고독한 나무 한 그루를 끌어안고서, 속삭였다.
“...아름다워요, 당신은.”
두 사람은 손을 잡고 산에 올랐다. 가파른 암벽 구간에서는 태수가 대신 카메라 가방을 맸다. 산세가 거칠었지만, 지나온 삶의 난관보다는 수월했다. 앞으로 견뎌야 할 인생의 시련들. 그 막연한 상상에 의한 불안, 걱정보다는 편안했다. 손을 잡아줄 사람이 있어서 그랬던 건지도 모르겠지만.
사찰에 도착하자, 두 사람은 약수부터 찾았다. 약수를 마신 후, 갈증이 해소되어 활짝 웃는 태수를, 미희는 놓치지 않고 앵글에 담았다. 뭘, 이런 모습까지 찍냐고 약수를 손에 모아, 장난스럽게 자신에게 뿌리는 모습까지.
미희는 카메라를 거두고, 두 손으로 약수를 받아 마셨다. 감로수로 삶의 고단함을 충분히 해갈한 두 사람은 마주 보고 웃었다. 눈물을 닮은 바닷물의 짠맛이 모두 가셨다. 입안이 개운하고 속이 편안해진 듯, 태수가 큰 숨을 내쉬었다.
“살 것 같습니다.”
마음이 놓인 미희가 웃어보이자, 태수는 미희의 두 눈을 가만히 들여다보았다. 미희 역시 그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그의 두 눈에는 희미한 빛이 담겨있었다. 삶의 의욕인지, 희망인지 알 수 없었으나, 그 빛은 촛불을 닮아 꺼질 듯 자꾸만 깜빡이길 반복했다. 반면 태수는 미희로부터 강렬한 활력을 느끼고 있었다. 곡식을 여물게 하는 한 여름의 햇살과 같은, 거대한 빛이 그녀로부터 뿜어져 나왔다. 머리 뒤로 후광이 비치는 것만 같았다. 자신을 차가운 바닷물, 험악스레 입을 벌리고 있는 죽음으로부터 구해낸. 타는 듯한 비관의 갈증으로부터 건져낸 사람. 약병을 들고 있는 부처의 현신이 바로 그녀라고, 태수는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사찰에서 삼배를 올리고, 탑돌이까지 마친 두 사람은, 진신사리가 들어있다는 석탑에 두 손을 정갈히 모은 채 소원을 빌었다. 소원을 빌기 전, 미희는 곁눈질로 남편을 바라보았다. 남편은 무슨 내용을 비는지 모르겠으나 오랫동안 중얼거렸다. 그녀는 도로 눈을 감고. 남편을 따라 속삭였다.
“이번 생만큼은, 지우 아빠가 오래 살게 해 주세요, 그리고 행복하게 해 주세요.”
산을 내려오는데 시간이 생각보다 걸려서, 하늘이 온통 연보라색이었다, 새초롬한 초승달이 걸린 밤하늘에 샛별이 총총 떠 있었다. 바스라지는 별빛을 밟고, 두 사람은 숙소로 향했다. 능소화가 함박 핀 돌담길을 나란히 걸으니, 전생, 연애하던 시절이 떠올랐다. 미희가 까닭없이 미소지으니, 태수가 신경 쓰였던지 그녀를 힐끔거렸다. 미희는 돌담의 능소화를 한 송이 따서, 그의 귓가에 꽂아주었다. 태수의 얼굴이 타는 듯 붉게 물들었다. 연한 밤하늘의 색과 주황빛 능소화. 그리고 수줍은 청년의 모습을, 미희는 사진으로 남겼다. 멀리 별 가득한 밤하늘까지, 모든 것이 완벽했다.
등산 도중 땀을 많이 흘려서, 미희는 집에 돌아오자마자 몸을 씻었다. 샤워 후, 거실로 나오자 아저씨께서 호박쌈과 나물요리, 그리고 생선찜을 차려주셨다. 태수는 입맛에 맞았는지, 등산 때문에 허기가 돌았는지, 밥을 두 공기나 먹었다. 미희 역시 조림 무가 유독 맛있게 느껴졌다.
식사 후 세 사람은 마당의 대청마루에 앉았다. 아저씨는 아궁이에 구운 고구마와 찐 옥수수를 소쿠리에 담아서 가져다 주셨다. 풀벌레와 멀리 산새의 울음 소리가 마음을 깨끗하게 했다. 미희는 감나무 아래 평상으로 자릴 옮겨서 별을 보고 누웠다. 옥수수를 여럿 먹던 태수는, 미희가 평상에 눕는 것을 보고 따라 자릴 옮겼다. 먹던 옥수수는 소쿠리에 올려두었다. 두 사람이 평상에 모이자, 아저씨는 소쿠리를 들고 현관으로 돌아갔다. 문이 닫히는 소리가 나자, 미희는 나지막하게 말을 꺼냈다.
“그렇게 서 있지만 말고, 내 옆자리에 누워보세요.”
미희의 말에, 태수가 자릴 잡고 누워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깜박깜박 빛이 점멸하던 그의 눈에 영원히 꺼지지 않을 반짝임이 되돌아왔다. 밤하늘을 빼곡하게 수놓는 많은 별들이 그의 눈에 고스란히 박혔던 것이다. 미희는 차분히 말을 이었다.
“저 별들 중에는, 이미 흔적도 없이 사라진 녀석들도 있을 거에요.”
“그렇다면 참 아까운 일이군요, 이처럼 찬란히 빛나는데...”
“당신이 바닷물 속으로 사라졌다면,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었을 거에요.”
“... 없습니다, 그런 사람.”
“당장 나부터 그런 생각이 들 거에요.”
미희는 몸을 옆으로 돌려, 남편을 바라보았다. 태수 역시 고개를 돌려 그녀를 바라보았다.
“내게, 왜 이렇게 잘해주는 겁니까.”
“그거야 당연히...”
“당연히?”
미희는 도로 밤하늘을 바라보았다.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말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거짓말을 하고 싶지 않았다. 기차에서의 거짓말 이후 그가 바닷물에 몸을 담궜던 사실이, 그녀에게 있어서는 충격으로 와 닿았고, 앞으로 그런 일이 또 없으리란 보장이 없었다. 오랫동안 입을 다물고 있던 미희는 어렵사리, 순도 깊은 진심을 꺼냈다.
“당신을 사랑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