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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OSS Jan 09. 2023

2등은 정말 아무도 기억하지 않을까요?

2, 3등도 기억하고 꼴찌에게도 갈채를 보내고 싶습니다


'2등은 아무도 기억하지 않습니다.'


이 문구는 오래전 한국대표적인 기업에서 모든 신문들한 면을 도배하다시피 게재전면광고에 카피입니다. 그 광고는 대서양을 비행기로 횡단한 미국의 찰스 린드버그 (Charles Lindbergh)우주선 아폴로 11호의 닐 암스트롱 (Neil Armstrong)의 사례를 들며 세계 일류만의 경쟁에서 살아남는 길이라고 강조합니다. 카피는 또한 자동차경주 레이서이자 유명한 페라리 자동차의 창업자인 엔초 페라리 (Enzo Ferrari)도 했던 유명한 말입니다. 그렇게 1등 이외에 2, 3등은 아무도 기억해주지 않는 걸까요? 제가 관심을 가지고 오랫동안 지켜보았던 2등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고 싶습니다.


엔초 페라리 (출처: AZ Quotes)


골프를 좋아합니다. 아니 '좋아했었습니다'가 정확한 표현이겠네요. 몇 년 전 왼쪽어깨 인대가 찢어지는 부상을 당해 8개월간의 치료와 재활을 거쳤지만 안타깝게도 원상태로 돌아오지 못했습니다. 골프를 치시는 분들은 잘 아실 겁니다. 오른손잡이 골퍼의 생명과 같은 왼쪽 어깨가 잘 회전하지 않으면 스윙이 안 되는 메커니즘을. 그렇게 완전히 내려놓고 아끼던 골프클럽도 모두 남에게 주고 이제는 두 아이들 연습할 때 가끔 봐주며 코칭하는 걸로 만족하고 있습니다.


골프는 우연한 기회로 일찍 시작했습니다. 대학입학해서 신청하던 수강과목 중 교양체육이 있었는데 여러 운동 종목  하나를 선택할 수 있도록 되어 있었습니다. 그중 테니스와 골프가 포함되어 있었는데 테니스는 중, 고등학교때 해본 경험이 있어 제외하고 집에 사용 안 하고 구석에 처박아 놓은 오래된 클럽 세트가 있어 골프로 신청했습니다. 한국에서 최초로 프로골프경기를 티브이에서 녹화로 밤늦은 시간에 방송할 때 해설자로 출연한 박영민 교수님이 당시에 수업을 맡아 강의와 실제 스윙 연습을 지도해 주셨습니다. 열악한 환경이다 보니 실전 연습보다는 이론, 규칙과 에티켓에 대한 강의실 수업이 많았는데 골프에 대한 기본매너와 정을 가질 수 있는 나름 소중한 시간이 되었습니다.


그 후 직장생활을 시작하면서도 틈틈이 연습장에서 시간을 보냈고 개인 비즈니스를 하면서부터는 본격적으로 필드에서 라운딩을 하며 실력을 다져 갔습니다. 그때는 지금과 달리 모든 골프장들이 매주 화요일 오전 시간에만 회원들의 예약을 받게 되어있어 화요일 아침만 되면 전화를 거느라 북새통이 이루어 장시간 통화 대기 상태가 지속되어 예약 업무를 맡은 회사 부서나 비서실 근무직원들의 불평과 스트레스가 말도 못 하게 심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골프에 대한 관심이 많아지면서 관련 잡지와 신문 기사들을 늘 찾아보게 되고 1990년대 전미 아마추어 랭킹 1,2위를 주고받았던 타이거 우즈 (Tiger Woods)와 테드 오(Ted Oh)의 경쟁이 저의 최대 관심사가 되었습니다. 서울에서 태어난 는 일곱 살에 미국으로 이민을 가서 10살 때 골프를 처음 시작해 14세에 처음으로 70대 타수를 돌파했습니다. 타이거 우즈가 사는 인근 남부 캘리포니아에서 자란 그는 주니어 랭킹에서 1, 2위 자리를 경쟁하는 최상위권 선수 중 한 명이 되었고 마침내 16세에 US 오픈에 출전하게 되어 타이거 우즈의 라이벌이 되는 계기를 만들었습니다.


처음으로 PGA 투어의 닛산 오픈에 출전하여 16세의 나이에 120명의 프로골퍼를 상대하는 두 자리 중 하나를 획득했고 그해 플레이오프에서 마침내 타이거 우즈를 물리치고 1993년에 열린 US 오픈 경기에 50년 만에 최연소 출전 자격을 얻은 선수가 되었습니다. 그 후 아마추어로 3년 연속 닛산 오픈출전했고 AJGA 투어에서 4개의 전국 주니어 토너먼트에서 우승했으며 LA 시티 주니어 보이즈 챔피언십에서 연속 우승한 최초의 선수가 되었습니다.


어린 테드 오 선수의 모습 (출처: Golf Channel)


전액 장학금을 받고 University of Nevada Las Vegas에 진학한 그는 두 번째 토너먼트에서 바로 우승했는데 1996년 그의 우승은 학교 역사상 신입생이 거둔 유일한 우승입니다. 그리고 최고의 선수와 경쟁하는 자신의 꿈을 실현하기 위해 2학년 이후 대학을 떠나 프로로 전향했습니다. 그러나 PGA 투어에서 여러 번 시도에도 불구하고 우승하지 못하고 몇 년 동안은 주로 2부인 나이키 투어에서 뛰다가 그 후 해외에서 활동하게 되었습니다. 프로 선수로 20년 동안 한국, 일본 및 아시안 투어의 일정을 소화하고 다시 PGA에 도전했지만 부상으로 아쉽게 결국 선수 경력을  되었습니다. 2016년부터 골프를 가르치는 재능 발견한 그는 리디아 고(Lydia Ko)를 포함한 여러 최고의 프로골퍼들의 경기력을 되살리는 데 많은 기여를 하게 됩니다. 




10대에 혜성같이 나타나 타이거 우즈와 랭킹 1위 자리를 두고 다투었던 강력한 경쟁자였는데 무슨 이유로 제대로 꽃을 피우지 못하고 그대로 사라지게 되었을까요? 그에 관한 여러 가지 기록물과 기사에 의하면 뛰어난 재능을 타고났지만 무대가 커질수록  높아지고 강해지는 경쟁 속에서 생기는 부담감과 어린 나이에 다가온 슬럼프나 정신적인 어려움을 극복하지 못했습니다. 안타깝게도 곁에서 정신적으로 도움을 줄 수 있었던 사람들이 많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여러 분야 특히 스포츠계에서는 천재적인 재능을 보인 선수들 뒤에는 항상 그들을 가르치고 이끈 지도자가 있었습니다. 지도자는 선수에게 운동에 관련한 기술적인 뿐만 아니라 정신적인 부분에많은 영향을 주게 되는데 그 부분에서 충분한 도움을 받지 못한 점이 있었던 것으로 생각됩니다.


비록 교육전문가는 아니지만 어릴 적 받았던 교육과 제 아이들이 캐나다에서 받았던 교육을 비교해 보면서 많은 차이점을 발견하고 생각을 할 수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누구나 본인이 알지 못하는 어떠한 재능을 가지고 태어납니다. 그리고 그 재능을 꽃피우지 못하거나 심지어는 본인에게 그런 재능이 있는지모른 채 이 세상을 떠나는 경우도 많이 있습니다. 제가 경험한 이곳의 시스템은 타고난 재능이 무엇인지를 알기 위해 여러 가지의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고 그 재능을 발견하게 되면 활짝 피울 수 있도록 도와주고  시간을 기다려줍니다. 물론 재능을 발견했지만 꽃을 피우지 못하고 그냥 시들어버리는 경우도 많습니다. 그러나 절대로 실패한 결과를 탓하거나  노력을 폄하하지 않고 실패를 통해서도 경험을 체득합니다.


올림픽의 메달들 (출처: ctv news)


올림픽기간 중 캐나다의 매스컴은 자국선수들의 경기결과를 보도하면서 금, 은, 동메달을 별도로 구분하지 않고 획득한 전체 메달 수의 합계만을 보도하고 순위를 발표합니다. 그리고 매스컴과 캐나다 국민은 메달의 색깔보다는 그 많은 경쟁자들을 물리치고 최종 3명의 수상자로 시상대에 올랐다는 것에 큰 의미를 부여하고 선수 자신들도 사실만으로도  영광으로 생각하고 서로를 격려하고 응원합니다.


이들에게는 패배로 금메달을 받지 못한 분함에 은메달을 뿌리치거나 승부 결과 받아들이지 못하고 억울함에 눈물을 흘리는 광경이 이해되지 않습니다. 마찬가지로 오직 1등, 금메달만이 최고라는 것을 보고 배우며 자란 저는 그야말로 작은 차이만 있을 뿐 시상대에 오른 모든 선수들이 함께 승자라는 그들의 생각을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이곳에서의 생활이 오래되고 나이가 들면서  생각이 조금씩 바뀌고 이해되기 시작하면서 이제는 받아들일 수 있되었습니다. 과연 1등이 되는 것이 왜 그렇게 중요하고 그보다 소중한 것이 과연 무엇인지를. 그리고 무엇 인생에서 소중한지알게  것 같습니다.


이제는 결승선을 통과한 1등뿐만 아니고 2, 3등은 물론 마지막으로 들어온 선수까지도 기억하고 싶은 마음에 젊은 시절 읽었던 박완서의 소설 '꼴찌에게 보내는 갈채'가 생각나는 날입니다.


(전면 이미지 출처: plannerathea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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