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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OSS Jul 17. 2023

그때는 그랬지만 지금은 아니다.

That was then, this is now.의 같은 듯 다른 느낌.


영어 표현인 'That was then, this is now'는 같은 미로도 상황에 따라 조금 다른 느낌을 니다.


문장은 80~90년대에 인기 있었 할리우드 배우 에밀리오 에스테베즈 (Emilio Estevez) 주연한 영화의 제목과도 같은데 스토리보다는 제목이 더 깊이 기억나는 작품입니다. 그는 프란시스 코폴라의 작품으로 유명한 '지옥의 묵시록 (Apocalypse Now)'에서 인상 깊은 연기를 보였던 배우 마틴 쉰 (Martin Sheen)의 자녀 중 한 명입니다. 


4명의 자녀들이 모두 아버지의 이름배경으로 활동했는데 그와 형인 찰리 쉰 (Charlie Sheen) 배우로서 두각을 보였고 나머지 자녀들은 이름만 배우였습니다. 그래도 자신의 연기에 대한 자존심을 가지고 형과는 다르게 데뷔 때부터 아버지도 쓰지 않는 원래 인 에스테베즈란 본명을 사용했습니다.


영화 That was then, This is now. (출처: Reelgood)


당시 영화계에 신선한 바람일으켰던 브랫팩(Brat Pack) 멤버의 한 명이기도 했던 그는 영화 블랙퍼스트 클럽 (Breakfast Club)에서 눈에 띄는 연기로 두각을 나타내가 시작했습니다. 이후 멤버들과 함께 출연한 세인트 엘모의 불 (St. Elmo's Fire)등 80, 90년대 다양한 장르의 영화모습을 보였습니다. 이야기가 잠시 샛길로 흘렀는데 영화의 내용상 여기서 이문장의 의미는 '그때는 그랬지만 지금은 다르다. (That was then, this is now)'입니다.




캐나다에서 직장을 옮기며 이전 직장에서 소송을 당한 적이 있었습니다. 다행히 동종업체가 아닌 다른 업체에서 계약조건 유예기간인 1년을 보내는 것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습니다. 새직장으로 복귀한 몇 년 뒤 소송을 가장 앞장서서 이끌었던 전 직장 상사가 현재 일하회사의 납품업체 영업 책임자로 자리를 옮겼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습니다.


어느 날 회사의 책임자들이 이 상황에 관련하여 미팅요청해 왔습니다. 당시 저뿐만 아니라 저를 고용했다는 이유로 지금 회사에도 소송을 했기 때문에 책임자들은  당시 상황과 불편했던 감정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비록 비즈니스 관계는 있지만 그때 일을 생각하면 우리 회사와 거래하는 담당자로는 적합하지 않다고 생각되는데 다른 사람으로 교체해 달라고 하는 게 좋지 않을까요?"


회사 책임자가 저에게 계속 질문을 합니다.


"우리 의견은 그렇지만 피해 당사자의 생각은 어떤가요?"

"글쎄요.. 생각할 시간이 좀 필요합니다"


답변을 미뤘습니다. 결론을 내지 못하고 미팅은 끝났고 다음날 문제의 거래처 회사의 책임자로부터 전화가 왔습니다.


"상황에 대해서 이미 알고 있겠지만 비즈니스상 불편한 관계를 원하지 않으면 담당자를 다른 사람으로 정하겠습니다."


전날까 깊이 생각하고 결정한 내용을 이야기했습니다.


"괜찮습니다. 원래대로 그분을 담당자로 해 주세요.

"정말 괜찮습니까?"

"네 '그것은 그때 일이었고 이것은 지금 일이니까요 (That was then, this is now)"





주말을 집에서 보내려고 온 큰아이와 함께 시청 중인 티브이에서 한국의 뉴스방송을 보던 중 청년 취업문제가 심각하다는 보도가 나옵니다.


"우리 취업할 때는 저렇게 힘들지 않았는데"


하며 '라떼는'이야기를 큰아이에게 들려주었습니다.


4학년 1학기를 마치고 입대해서 제대 후 3월에 복학한 저는 마지막 학기를 다니고 있었습니다. 지금과는 많이 다르지만 그때는 대기업들이 봄가을에 한 번씩 1년에 두 번의 공채로 대규모 신입사원을 뽑는 시대였습니다.


캐나다 회사 구인 광고 template (출처: Job Rising)


5월쯤 나오는 봄 공채를 준비하던 중 여름에 졸업하는 복학생들 모두 학과 사무실로 모이라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동기와 선배들을 포함해 8명 정도였는데 학교로 직접 들어오는 기업 추천서를 받을 순서를 정하는 목적이었습니다. 언제 어떤 업체에서 들어올지 모르니 번호를 정해 선택여부와 관계없이 받고 면접을 보는 것이 일반적인 관행이었습니다.


선배 복학생들에게 먼저 순번 선택권을 주고 나머지 동기들과는 각자 상의해서 번호를 정했습니다. 자기 순서에 마음에 드는 업체의 추천서가 오면 누구나 적극적으로 면접에 임하지만 그렇지 않으면 대충 해버리는 경우도 많이 있었습니다. 그런 경우를 감안기업체에서는 복수의 추천서를 대학들에 보내 지원자들의 경쟁을 통해 뽑는 게 일반적이었습니다. 당시 봄공채는 주로 군복무후 제대하는 ROTC 장교들과 여름에 졸업하는 복학생들 대상이어서 가을 공채보다 뽑는 인원수는 훨씬 적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이야기를 듣고 큰아이가 묻습니다.

 

"지금 하고 비교하면 취업이 많이 쉬웠던 것 같네요"

"그때도 쉽지 않았는데 지금은 좀 유난스러운 것 닐까?"

"아니에요 아빠. '그때는 그랬겠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아요' (No daddy. That was then, this is now.)

"

바로 그 표현을 대화 중에 사용합다.


군복무 유학을 가려고 TOEFL시험 준비로 6개월 정도 영어 공부를 정말 열심히 한 적이 있었습니다. 일을 계기로 특히 말하는 영어에 흥미를 가지게 되어 카투사로 복무하면서 다양한 표현이나 심지어는 Slang까지도 연마(?)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대화 중 공부하고 기억한 여러 표현들이 나오면 신기하면서 한편 뿌듯한 느낌을 받고는 했습니다.


Please give me your John Hancock.

Not that I know of.

I have a hunch.

I know your mother wear army boots. 등등 (조금 안 좋은 표현이니 양해하시기 바랍니다).


지금도 대화 중에나 영화를 볼 때 예전에 공부한 이런 표현이 나오면 무척 반갑고 영어에 푹 빠져서 배우던 열정과 그 시절의 모습어렴풋이 떠오릅니다.


전면 이미지: St. Elmo's Fire 중 (출처: The Wra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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