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주는 다치지 않았다, 20221002
시끄러운 차 클랙션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려왔다. 황급히 차선을 가로질러 달려오는 수연이 멀리서 보였다. 영주는 눈물로 얼룩진 얼굴을 한 채로 수연을 바라보았다.
*
만남과 이별은 예고 없이 찾아왔다. 그것은 연인에게도 그랬고, 영주가 일하는 카페에서도 그랬다. 특히 영주는 연인에게 찾아오는 이별을 심심찮게 목격하게 되어, 카페에서 잔잔히 흐르는 음악의 음량에 손을 대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하게 되는 일이 잦았다. 상대방에게 물을 뿌리는 드라마나 영화 같은 일은 없었지만, 한쪽이 카페의 컵이나 집기 같은 것을 집어던진다거나 하여 배상을 받는 일이 종종 일어났다.
영주는 항상 재미있는 텔레비전 프로그램을 무감각한 눈으로 시청하듯이 관망하는 태도로 그들을 구경하곤 했다. 다른 나라, 다른 세상의 이야기인 것만 같았다. 그들은 다정하게 손을 잡거나 팔짱을 낀 채 들어와서 조금씩 목소리가 작아지다가, 조금씩 말투에 날카로운 뿔을 세운다. 마치 펜싱 시합에서 정중하게 인사한 뒤 갑작스럽게 서로를 향해 검을 치켜드는 선수들 같다.
그러다 문득 상대방을 향해 툭 내뱉어진 말이 허공에서 대각선을 그리며 마음을 사선으로 크게 베어낸다. 피는 나지 않지만 그만큼의 고통과 통증은 얼굴에 고스란히 드러난다. 주변에 앉은 관객들은 그들을 힐끔 바라볼 뿐 급하게 시선을 돌리지만, 귀는 그들을 향해 열려있다. 서로를 공격하는 두 사람보다도 그들의 말에 숨겨진 뜻을 찾는 데에 누구보다도 진심이 된다.
어떤 이들은 서로에게 공격하다 지쳐서 한쪽이 눈물을 터뜨리기도 하고, 상대방을 상처 입히다 못해 자신에게로 책임을 돌리는 경우도 더러 있었다. 한 사람 혹은 두 사람 모두 떠난 자리는 모든 게 끝난 전쟁터와 같았다. 몇 방울 튄 음료가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경우도 있었고, 아주 드물게 반지 한 쌍이 처량하게 놓여있던 적도 있었다. 계산을 마친 카드와 건넸던 영수증이 갈기갈기 찢겨 형체를 알아볼 수도 없을 정도로 조각 난 채 돌아오기도 했다. 그건 꽤 자주 있는 일이었다.
지친 낯으로 카페를 나가버리는 한 명과, 테이블 앞에 덩그러니 남겨진 한 명. 이런 일이 한두 번이 아니라 영주의 뒤를 스쳐 지나가는 수연이 조리대 위의 과일을 몇 개 집어 들어 손질하기 시작했다. 무덤덤한 얼굴은 이런 일에 지칠 정도로 익숙해졌음을 의미했다. 영주도 더 신경 쓰고 싶지 않은 마음에 계산대 앞에서 남은 중간 정산을 마쳤다.
남는 돈도, 부족한 돈도 없다. 몇 잔을 팔았는지 전부 집계가 되는 화면을 멍하니 들여다보며 테이블 앞에 앉아있던 한 사람이 어느새 카페를 나가버렸음을 깨달은 영주가 카운터에서 빠져나왔다. 연인이 언제 싸웠냐는 듯, 언제 언성을 높였냐는 듯 작은 카페는 다시 조용한 적막을 가로지르는 음악으로 가득 채워졌다. 영주는 테이블 위에 발자취처럼 남겨진 동그란 물자국 두 개를 행주로 닦아내고 비뚤어진 의자를 정리했다. 바닥은 더럽지 않으니 이따가 한 번에 닦으면 될 것 같았다.
"오늘따라 싸우는 커플들 많네. 그치?"
"그렇네요. 굳이 평일에."
주말에 싸우면 슬픔이나 화 가라앉힐 새도 없이 다음 날부터 일을 해야 하잖아, 하고 수연이 여상스레 대꾸했다. 그 말이 묘하게 현실적으로 들려서 영주는 웃으며 카운터로 돌아왔다. 손님이 없을 때에는 굳이 어슬렁거리며 무언가를 하려고 하기보다는 앉아서 좀 쉬라는 말을 뒷받침하듯 카운터 안쪽에 조그마한 의자가 자리 잡고 있었다. 물론 그 의자에 앉는다 해서 손님이 들어오지 않으리라는 보장은 없었지만.
그래도, 평일 오후니까. 학생들이 오기에는 외진 곳에 자리 잡은 데다가 조금 비싼 편이고, 술을 마시지 않는 대학생이나 퇴근한 직장인들이 밥을 먹고 커피를 마시기 위해 찾아오기에는 조금 이른 시간이니까. 영주는 간만의 여유를 느꼈다. 항상 저녁 시간대부터 붐비기 시작하는 금요일이라, 오늘 조기 퇴근은 꿈도 꾸지 못할 일이었다.
여하간 작은 동네에 자리 잡은 작은 카페인데 헤어지러 오는 사람들이 그렇게 많은가 싶다. 누구의 잘잘못을 따지며 굳이 큰 소리를 내고 싸우는 게 나쁘다는 뜻은 아니었다. 그저, 그렇게까지 싸울 만큼 서로에게 지쳐있었던 것은 아닐까, 영주는 섣불리 그런 무례한 생각을 종종 하곤 했다.
그래서일까.
"영주, 오늘 마감하기 전에……."
어쩌면 그래서였을지도 모른다.
"……."
"영주야?"
무례한 생각을 해서. 고운 마음으로 사람들을 바라보지 않아서.
짧게 흔들리는 머리카락과 또렷한 눈동자, 몸에 꼭 맞는 블라우스와 바지와, 기억 속에서 코를 찡그리며 웃는 게 잘 어울렸던 얼굴. 멀리서도 선명하게 풍겨오는 듯한 향수의 시원한 나무 내음.
영주는 자신도 모르는 새 카페를 뛰쳐나가 거리를 달려 나가고 있었다. 허리에 두른 앞치마가 바람에 펄럭여도, 사람들이 힐끔힐끔 쳐다보아도 앞만 보고 달릴 줄 아는 사람인 것처럼 마구잡이로 뛰었다. 바람이 뺨을 매섭게 스치고 지나갔다. 겨울이었다면 분명 시리고 건조한 공기가 뺨을 베고 지나가 전부 부르텄을 것이 확실했다.
그렇지만 영주는 어느새 혼자 놓여있었다. 분명히 보았던, 골목 앞을 서성거리던 그 그림자는 온데간데 사라지고 보이지 않았다. 분명히 두 눈으로 똑똑히 보았는데. 기억 한 구석에서 여전히 살아 숨쉬기라도 했던 것처럼 생생했던 얼굴이었는데. 그렇다면 내가 어딘가 잘못되기라도 한 걸까? 나는 이제 나조차도 믿지 못하게 되는 걸까. 영주는 전쟁터에 홀로 남겨진 패잔병처럼 멀거니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영주야, 하고 비명을 지르듯 부르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차가 쌩쌩 지나다니고 클락션과 함께 욕설이 마구잡이로 날아드는 길 한가운데에서 영주는 우뚝 멈춰있었다. 어째서인지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이유도 모르는 채로, 전부 다 잊었다고 생각했는데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