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희의 부름

목소리에는 머뭇거림이 없었다, 20221006

by 윤재영

재희는 달리기가 빠르다. 그러나 선수를 선발하기 위한 예선전에서 선두로 달리다가 앞으로 쭉 슬라이딩하듯 엎어져 넘어지는 것을 코앞에서 지켜본 영주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옆자리에 앉아 앞에서 시끄러운 응원판이 열린 것을 구경하던 재희가 멋적게 웃으며 무릎에 붙인 커다란 반창고를 손으로 가렸다. 혹시 건드렸다가 덧나기라도 할까봐 영주는 그런 재희의 손을 치워냈다.


운동장에 온통 흙먼지가 일어났다. 재희는 그 안에서 달리는 게 부러운 듯 앉은 자리에서 몸을 움찔거리다가 다시 제자리에 앉기를 반복했다. 남들은 전부 나가서 뭐라도 하고 있는데 다친 채로 앉아있는 게 심심하고 미안한 모양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영주를 두고 앞에 나가 응원을 하기도 좀 민망한 눈치인지 꿋꿋이 자리를 지키고 있기에, 영주는 재희의 등을 투욱 두드렸다.


응?

가고 싶으면 다녀와도 돼.


앞을 힐끔 바라본 재희가 잠시 생각에 잠긴듯 멍하니 눈을 깜빡였다. 따가운 가을 햇살이 두 사람의 머리 위로 쏟아지고, 영주는 투명한 갈색으로 비치는 재희의 머리카락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해가 뜨겁긴 하지만 바람이 선선해서 덥지 않은 날인데도, 영주는 자꾸 땀이 맺히는 것 같은 뒷목을 문질렀다.


특별할 것 없는 체육대회였다. 사실 다들 체육대회 보다는 모든 학생이 한데 모여서 시끄럽게 떠들고 웃을 수 있는 날이라는 점에 즐거워하는 듯 했지만, 영주는 이 소란스러움이 싫지 않았다. 공부를 잘 한다고 해서 공부만 하고 싶다는 것은 아니다. 반 학생들도 그걸 알아서 영주에게 이런저런 경기에 참여해보지 않겠느냐고 권유해왔다. 그래봐야 곧 시작될 장애물 달리기가 전부였지만.


여하튼 재희는 거의 모든 경기에 참여할 예정이었던 것을 전부 취소하고 그늘에 앉아만 있게 되었다. 그 흔한 줄다리기도 나가지 못하고. 단순히 무릎만 깨졌다면 재희가 먼저 할 수 있다고 뛰쳐나갔겠지만, 발목까지 제대로 꺾여 넘어진 바람에 얇은 보호대를 찬 다리로 그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그래봐야 친구들의 발목만 붙잡게 된다는 걸 본인이 더 잘 알고 있는 모양이었다.


됐어.

왜?

에이, 너 두고 내가 어디를 가.

별게 다…….

그럼 너 혼자 있어야 하잖아.


재희의 말에 영주는 입술 사이로 바람 빠지는 소리를 냈다. 자꾸 그런 알 수 없는 말을 하는 재희가 우습고 이상했다. 그래서 옆에 있는 게 좋을지도 몰랐다. 영주는 답지 않게 주먹으로 재희의 어깨를 아프지 않게 때렸다. 아파 죽겠다고 우는 소리를 내며 넘어지는 건 본 체도 하지 않았다.


이런 소란스러움이 싫지 않더라도, 일학년 때의 영주는 밖에 나와 해를 쬐며 달리는 것을 싫어했던 것 같았다. 어쩌다보니 재희와 두 해 같은 반 친구로 지내고는 있지만, 작년의 영주는 은근히 귀찮아하는 티를 내비치며 자리에 앉아있었다. 물론 그 해에는 몸이 조금 안 좋았던 것도 있었지만, 어찌되었건 고등학교에 들어와 체육대회든 무엇이 되었든 참여하는 것이 처음이었다.


어쩌면 대부분 재희의 영향일지도 몰랐다. 영주는 적지 않게 웃어주던 재희의 얼굴을 떠올리며 굳이 옆에 앉아있는 그의 얼굴에서 시선을 떼어냈다. 괜히 화 났느냐고 옆에서 쿡쿡 찔러오는 것에는 대꾸도 하지 않았다.


너 장애물 달리기 할 때 도착점 앞에서 내가 응원하고 있을게.

됐어.

왜 자꾸 전부 싫다고 해? 나 싫어?

…….

……진짜 싫어?


옆에서 들러붙는 재희를 떼어내고 영주는 높이 묶었던 머리를 풀어 낮게 내려 묶었다. 공연히 귀와 목 뒤가 후끈거렸다. 아무래도 곧 시작될 장애물 달리기에 대한 부담감일 것이라고 생각하며, 영주는 한 발 한 발 계단을 내려갔다. 뒤에서 자신의 이름을 부르며 파이팅을 외치는 목소리가 가까워지고 있었지만 영주는 뒤 돌아보지 않았다. 들키고 싶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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