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주는 매듭짓지 못한다

숨결이든 기억이든, 20221008

by 윤재영

영주는 아주 오랜만에, 아주 오랫동안 아팠다. 매일매일 성실하게 출근하던 카페도 사흘 동안 나가지 못한 건 처음이었다. 그동안 아프더라도 진통제를 먹든, 병원에서 주사를 맞든 어떻게 해서라도 출근하던 영주에게 아주 드문 일이었다. 수연은 죽이라도 끓여서 갖다 줄까, 하고 걱정 섞인 목소리로 물었지만 영주는 핸드폰조차 들고서 그 목소리를 듣고 있는 것이 고작이라 힘없이 괜찮다고 대꾸할 뿐이었다.


한 달에 한 번 지나가며 아픈 것은 아픈 축에도 속하지 않는 것이었다고, 영주는 앓는 소리를 내며 이불속으로 파고들었다. 흔한 감기몸살과 비슷한 것도 같은데, 감기몸살 치고는 약국에서 파는 약이든, 병원에서 처방해주는 약이든 제대로 듣지를 않았다. 그냥 따뜻한 물만 연거푸 마시며 누워있는 게 전부였다. 당연히 나아지는 것은 없었다.


그날부터였던 것 같다. 카페의 작은 창 너머로 재희를 닮은 인영을 마주하고 쏜살같이 내달렸던 날. 영주는 자신의 손목을 떨리는 손으로 강하게 부여잡은 채 우선 카페로 돌아가자고 빠르게 중얼거리는 수연을 따라 카페로 들어섰다. 그 작고 아늑한 공간이 그날따라 너무 어둡고 비좁게 느껴져서, 영주는 카운터 뒤로 비틀대며 들어오자마자 그 자리에 주저앉아버렸다. 수연은 침착하게 영주에게 물을 마시도록 하고 담요를 어깨에 덮어주었다.


집에 혼자 갈 수 있겠어, 택시 불러다 줄까, 그렇게 묻는 수연의 목소리가 귓가에서 웅웅 퍼지며 멀리서 들리는 것 같다고 착각이 들 만큼 몸 상태는 나빴음에도 영주는 고개를 저었다. 부득부득 일 할 수 있다고 고집을 부렸다. 수연은 한숨을 내쉬며 영주를 카운터 구석에 편하게 앉혀두고 빠르게 일을 끝냈다. 마감까지 시간이 많이 남은 차였다. 옷을 갈아입거나 짧게 쉴 수 있는 창고에서 쉬게 하는 것이 아니라 카운터에 앉혀둔 것은, 가장 빠르게 상태를 확인하고 조치할 수 있기 때문이었으리라.


그날 저녁 카페를 마감하고 야간진료하는 병원까지 찾아간 수연은 영주에게 수액을 맞히고 집까지 차로 태워다 주었다. 너 정말 괜찮겠느냐고 물어보는 수연에게 영주는 힘없이 웃어 보였다. 대타 구하는 건 신경 쓰지 말고 당분간 출근하지 말라는 말이 사형선고처럼 들려오긴 했지만, 걱정스러운 낯이 그를 해고하겠다는 게 아니라는 것쯤은 누구도 알 수 있었을 것이다. 영주는 한참 동안 움직이지 못해 뻐근한 팔과 작은 밴드를 붙인 곳을 손가락으로 공연히 쓰다듬으며 집으로 돌아왔다.


그 후로 찾아온 열병은 지독하게 영주를 괴롭혔다. 물을 마시면 목이 찢어지는 것만 같고, 그렇다고 마시지 않으니 목이 타들어가는 것만 같았다. 젖은 수건을 널어둘 여력도 없어서 영주는 한동안 끙끙 앓다가 물에 밥을 말아 끓인 것으로 대충 허기를 달랬다. 이런 몸 상태로도 허기가 느껴지는 게 신기하기만 했다.


그건 재희였을까. 이마에 새 해열 패치를 붙이고 느릿느릿 움직여 이불속으로 파고들던 영주가 한숨을 내쉬며 생각했다. 몇 번을 고민하고 몇 번을 따져보아도 정확하게 답이 내려지는 것이 없었다. 재희는 그렇다면 왜 이 동네로 왔을까. 스스로 허물을 벗어 영주에게 안겨주고, 과거의 자신이 가졌던 추억과 현재이자 미래일 것이었던 재희의 모든 것을 버려둔 이 동네에 왜 발을 들였을까.


영주에게는 재희의 사진이 남아있지 않았다. 하다못해 그 흔한 졸업앨범은 영주의 본가에 있었고, 다툼과 화해를 반복하다가 홧김에 절반 넘는 사진들이 지워진 핸드폰을 잃어버리기까지 했다. 백업 따위 해두었을 리가 없었다. 물론 그렇다 해서 영주가 재희의 사진을 보며 그를 떠올리고 싶다는 말은 아니었지만.


재희는 왜 이곳에 왔을까. 떠날 때만 해도 미련 하나 없이 냉정한 얼굴이었던 주제에. 울고 소리 지르고 화내는 게 처음은 아니었음에도 그날은 왜 그렇게 불안하고 발 밑이 무너질 것 같았는지 몰랐다. 사소하게 시작했던 문제와 말다툼이 사소하지 않았음을 느낀 순간부터 영주는 그날의 운수가 유난히 나빴다는 것을 생각해냈다. 집안에서의 문제를 하나씩 꺼내다가 마주하게 되는 연인의 흔한 갈등인 줄 알았을 뿐인데.


영주는 손을 들어 예전에 함께 했던 강아지의 발바닥 자국을 매만졌다. 타투로 새긴 살갗 위의 발바닥은 더 이상 따끔거리지 않는다. 이곳에서 뛰놀았던 게 뜨거운 박동으로 느껴졌던 날, 재희는 그 위에 조심스레 입술을 맞추었다. 이제는 어느 것 하나 느껴지지 않는다.


너는 나를 불러서 마음을 마구 흔들어 놓고, 지금도 갑자기 찾아와서 나를 뒤흔드는구나. 눈물이 흐르지 않는 영주의 눈가가 뜨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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