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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지월드 Sep 21. 2024

죽음에 대하여

한 치의 과장이 없음을 밝힙니다.


사장님, 라이스라이스 매운맛 3단계주세요.


이것이 오늘 나에게 닥친 재앙의 시작이었다.

지지고에서 밥을 먹고 인근 건물 화장실에서 변사체로 발견된  윤모씨(만 32세).

지역 신문에도 언급되지 않을 몇줄로 향년 32세의 운명을 달리하지 않고 이글을 쓰고 있음에 감사하다.


음식은 일단 매워야 맛있다는 신념을 가진 나는

싼 값에 맵고 맛있는 밥을 먹고 싶을 때 GG고 컵밥집에 간다.

오늘이 그런 날이었고 매운맛 2단계가 엽떡수준의 상당한 맵기를 자랑해 으레 그렇듯 그걸 시켰다

가,

나의 주둥이는 좌뇌의 허가 없이 2단계 주문을 굳이 정정해 3단계를 외쳤다.

그리곤 다가올 한 치 앞을 모르고 재밌게 흑백요리사를 보면서 맛있게 먹었다.

그릇을 싹 비우고 라이스 사장님께 나이스한 미소를 흘리며 가게를 나선 나는 문득,

저 심연에서 솟구쳐오르는 뭔지 모를 불길을 느낀다.

감지 - 인지 - 고통 - 멈춤 -앉음의 순서로 횡단보도 앞에서 살면서 경험한 적 없는 극한의 통증과 공포가 착착 진행되었다.

이게 불과 신호 한 번 바뀌는 새에 일어난 일.

내 위장을 누군가 엄청난 악력으로 비틀어 짜다가 탁탁 말리는 듯한 통증에 몸과 정신이 차게 식어 갔다.

신호가 바뀌었고 난 보도블럭의 끝에 있는 건물만 보고 미친듯이 질주했다.

30보에 내가 생을 이어가야 될 까닭을 염불하면서.

정신을 차려보니 지지고 건물에서 겨우 횡단보도 하나 건너 있는 건물 안 화장실.

화장실의 칸막이 안에서,

세상은 고요했고,

나는 이 땅의 모든 작고 보잘 것 없는 나부랭이 중에서도 아주 하찮은 나부랭이가 되어 있었다.

그리고 사경을 헤메는 중에도 머릿속엔 이런 생각이 잘도 기어 갔다.

요근래 작은 일에도 재앙이라고 징징거렸더니

가 진짜 재앙의 고통이 뭔지 모르고 주댕이를 요사스레 놀리는구나 하고 처벌의 신이 나의 발을 지지고로 걸음하게 만들었도다.

라고.


처벌의 신은 나에게 기회를 주었고 난 그 화장실 칸 막이에서 살아서 나오게 되었다.


지지고 볶고 매일의 삶을 치열하게 살아내는 지지고 자영업자분들은 잘못이 없다.

그저 내 위장에 대한 추구미 설정오류로

감히 매운맛 3단계를 주문한 나의 세치혀를 탓한다.

인간은 제 분수를 알아야 한다.

한 살씩 먹어가면서 내가 살아가면서 얼마나 쉽게 재앙의 주둥이를 놀리는지 알게 된다.

그래서 말할까 말까 하는 모든 때에 오늘의 저승행 3단계 티켓을 생각할 것이다.

보다 겸손해지고 더 없이 신중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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