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작가지망생의 현생살이]3.사건의 재구성

별 볼 일 없는 버스에서 생긴 별일.

by 윤지WORLD

어느 날의 버스 안.

한 할머니가 요금을 내지 않고 탔다.(카드를 찍는 모션은 취하셨다.)

기사님이 요금을 내라고 요구했고 할머닌 냈다는 입장을 고수하다가 돈이 없다고 태세전환을 했다.

기사님은 얄짤 없이 다음 정거장에 내리라고 했고 할머니는 기사양반 한 번만 봐 달라고 다음에 두 번 낸다고 (정말?)

하셨지만 그 기사양반은 봐주지 않았다.

둘의 실랑이가 이쯤 됐을 땐 이미 승객석은 관중석이 되어 있었고 다수의 관중이 엉덩이를 붙이고 각자의 자리를 지키며 반은 불편하고 반은 흥미로운 이 소동을 지켜봤다.

그때 한 청년이 무대로 등장, 앞으로 걸어 가 돈을 대신 냈다.

자리를 지키고 있던 이들 중 누군가는 했을 법한 그러나 실행에 옮기진 않은 그 생각행위를 몸소 실천한 그 청년이 신기해 보였다.

그러자, 이 사단의 시작인 할머니가 청년에게 얼마 간 듣는 이로 하여금 거북스러움을 느끼게 하는 어조로 과한 감사를 표하더니 동시에 기사에게 그렇게 사는 거 아니라는 더 거북한 훈수를 시작하는 것이다.

이때 할머니는 이쪽에 감사와 저쪽에 훈수를 병행하며 좌중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다.

그때 할머니의 옆자리에 앉아 있던 중년의 남성 등장.

기사양반이 무슨 잘못이 있냐며 버스 안이 카메라로 찍히는 상황에서 원칙을 지키고 일하는 건데 애초에 돈 안 내고 탄 입장에 무슨 소리냐는 불편하지만 맞는 말을 했다.

우호적이지 않은 뉴페이스의 등장에 할머니는 새로운 양상의 싸움을 시작했고 상황이 이쯤되니 좀 전 버스비 대리지불 청년의 입장이 꽤나 모호해졌다.

그리고 조소 내지는 짜증의 얼굴이 적절히 섞여 있는 침묵의 관중석이다.

그 중 한 뒷좌석에서 역시 굳건히 자리를 지키며 이 다소 흥미롭고 많이 불편한 희극을 지켜보던 나는 약간은 복잡한 마음에 사로잡힌다.

조금 더 순진하던 시절의 나였다면 저 청년처럼 행동했을까?

물론 나이의 문제가 아닐 수 있다. (실은 태생적으로 난 그런 선택을 하지 않을 사람.)

어찌됐건 지금의 나는 돈을 대리지불 해주고 싶다는 찰나의 생각을 그대로 스치게 두고 엉덩이를 붙여 자리를 지킨다.

그리고 상황이 이렇게 삼파전의 희극으로 흘러가면 '역시 내 판단이 맞았군. 나서지 않고 가만히 굿이나 보고 재미나 보면 중간은 가고 말고.'

로 생각을 굳힌다.

물론 상황을 돌이킨 대도 나의 이 선택엔 변함이 없을 것이고 대리지불 청년의 행위도

‘이참에 모두가 보는 앞에서 타인에게 선의를 베풀었다는 자족감' 혹은 '그저 이 시끄러운 상황을 종결시키고 싶어서’에서 기인했을지 모른다.(후자이리라 본다.)

다만 스스로에게 이런 질문도 스치는 것이다.

'난 이런 나의 태도에 상쾌한가'


세상은 복잡한 복잡계가 맞다.

이제 겨우 삼자에 진입한 애송이에 불과한 눈에도 이와 같은 방향으로 흘러가리라 읽히는 수들이 많았다.

청년의 선의를 한 예로 볼 수 있듯

나의 천진한 선의가 산뜻한 결과를 보장하지 않는다는 걸 이젠 안다.

그래서 행에 앞서 행 이후에 닥칠지 모를

피곤함을 먼저 생각한다.

객기가 되지 않으려 패기를 기꺼이 내던지고 모두에게 예쁨 받지 않아도 되니 아무에게도 관심 받지 않는 쪽을 택한다.

그리고 난 아마 앞으로도 이런 방향으로 살아갈 것이다.

바쁘다 바빠 현대사회 복작 복잡 복잡계 세상에서 나를 더욱 깔끔하게 깍아 다듬으면서.


그렇다 해도 가끔은

정말 이건 아니다 싶은 어떤 때엔

행 이후의 피곤을 먼저 염려하지 않는 무모한 장면들도 만들면서 살아보면 어떤가 스스로에게 묻는다.

(물론 앞서 경험한 버스 안과 같은 경우엔 아니다.

어딘가로 향하는 다른 버스에서 저 할머니는 왠지 또 무임승차를 하고 계실지도 모르겠다는 의혹이 드는 바이고 그 버스의 관중석에도 내가 앉아 있다면 난 또 자리를 지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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