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 꽃밭으로 살기 프로젝트]2.인생 정산의 시기
-서막.
어제와 같은 오늘을 살아가던 어느날,
어제와 다른 오늘이 찾아 왔다.
어제와 같이 살았는데 뭔가 어제와 다른 것 같은 날.
그런 날이 더해지고 의구심은 확실함으로 변해갔다.
내 뜻과 무관한 날들이 온 것이다.
내 뜻과 무관하니 당연히 안 좋을 내용의 삶이 그렇게 펼쳐졌고 난 괴로웠다.
괴로운 나날을 사는 중에 이 괴로움이 혹시 비현실은 아닌가 하는 망상도 펼쳐지는데
망상이라도 비현실이었으면 좋았을 날들은 그러나 현실이었다.
안 하던 짓을 하고 그런 짓을 하게 되는 나에 절망하고 다시 용기를 내고 용기냄에 대한 배신감을 느끼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어날 결심을 하며 사는 날들이 이어지는 동안,
난 그 모든 게 두려워졌다.
특히 생각이 두려웠다.
생각의 감옥에 갇혀 내 의지로는 이 감옥에서 빠져나가지 못하는 운명이 된 게 아닐까라는 무늬만 천주교인인 미덥지 못한 신자의 말로로 운명론적 세계관을 가지게 될 지경이 된 것이다.
그러다 보니 가능한 생각을 적게하는 방향으로 살고자 이른바 머리 꽃밭으로 사는 법을 열과 성을 다해 수련해 나갔다.
모든 게 두려운 나날을 사는 나는 그 수련의 행위가 한 시라도 빨리 강력한 효과를 발휘해 이 생각감옥에서 나를 탈출시켜 주기를 요구했지만 들어줄 생각은 없어 보였다.
극히 일시적인 안정을 줬다 도로 뺏는 수준의 미미한 효능이 체감됐다.
그렇게 지금의 난 그 미미한 효능을 주다 뺐는 수련의 힘을 그래도 믿고서, 하다 지쳐 나가떨어져도 잠깐 쉬다 다시 수련하는 나날을 살고 있다.
인간의 의지란 뭘까.
인간의 의지대로 되는 것과 되지 않는 것을 꾸준히 구분하는 날들.
인간의 의지를 의심하다가도 믿어 의심치 않다가도 의지의 한계를 인정하고 다시 또 의지대로 살기로 결심하는 날들.
그런 날들을 지나는 중인 어느 오늘,
역시 뜻대로 되기도 되지 않기도를 반복하는 오늘 하루의 후반 즈음에 이런 생각이 스쳤다.
'인생정산의 시기가 있다'
그냥 살아지는 날들을 그냥 살다가 어느 때가 되면 그냥 살아지기가 멈춰지고 그 동안 그냥 살아졌던 날들을 한데 모아 정산하는 때.
그 정산의 시간에 그 한데 모은 지난 날들을 검토하고 채점해서 이대로 둘 것인가 두지 않을 것인가를 결정하는 것이다.
떠오르는 모든 생각에 대해서 생각하기를 극도록 자제하는 중인 요즘의 나지만
꽤나 일리있다고 여겨지는 이 망상을 이어가기로 했다.
그래서 정산의 시간 이전의 내 지난 날들을 돌이켜 봤다.
순간 울컥하는 그리움이 밀려들었지만 정신을 차리고 과거를 곱씹다보니 떠오르는 것들이 있었다.
좀 많았다.
대략 나의 무지, 오만, 회피, 집착, 소외, 욕망, 좌절 지금의 내가 돌이켜 생각해보니 우스운 그 시절의 염원 같은 것들...
그것들을 떠올려 쌓아가다보니 지나치게 많았고 그 지나친 것들이 한 데 모여 나의 지금을 만들었을까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망상의 끝이다.
끝까지 일리있는 이 망상에 대하여 지금 내가 뭘 얻을진 모르겠다.
지금의 나는 한 치 앞의 내 모습을 한 치도 함부로 예상할 수 없기에.
그래서 이 망상에 대한 의미부여를 미래의 나에게 보낸다.
오늘도 내일도 그 다음날도 그 다음의 다음날도 이 마음의 수련을 계속해나갈 지금의 내가,
평상심을 되찾아 일상을 괴롭지 않고 (지금처럼 지나치게 괴롭지 않고.) 참을 만한 괴로움과 더불어 대다수의 시간을 수월하게 즐기며 때때로 설레고 행복감도 느끼며 살고 있을 미래의 나에게(제발.) 보낸다.
그 미래의 내가 그때 비로소 이 망상의 의미를 되살피게 되기를 바란다.
그때를 사는 미래의 내가 그 시점에서 앞으로 또 지금의 내가 사는 날들과 같은 날들을 맞이하지 않게끔, 정산의 시기에 합격할 만한 점수를 받게끔.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내가 쓰면서도 여전히 불쑥불쑥 튀어나오려는 불안들을 다스리며 단단한 평상심을 갖게 될 날을 향해
내일도 수련에 힘쓸 것을 다짐하는 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