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 꽃밭으로 살기 프로젝트]3.삶은 여행

이니까 언젠가 끝나니까~

by 윤지WORLD

날은, 동네 스타벅스(무려 통유리창을 바라보는 쇼파가 있어 거의 지정석인)에 앉아 있었고 어김없이 책과 얼그레이바닐라티라떼를 곁에 놓고 있었다.

통유리창에 내려오는 그날의 어스름이 유난히도 운치 있어 읽고 있던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가 꽤 흥미로웠음에도 통유리멍을 때리고 있을 때였다.

귀에 꽂히는 익숙한 선율에 전율이, 가사에 소름이 돋았다. 실내온도가 따뜻했으나 그랬다.

이상은의 삶은 여행이라는 노래였는데

여느 노래가 그러하듯이 점층되던 정서가 분출되는 2절 후렴에서 제대로 폭발해 버렸다.

통유리창 너머의 어스름이 그날따라 유난히 센치하게 느껴져서 그랬다고는 납득가지 않는 눈물이 (정말 또르르)나는 것이었다.

이런 일은 나에게 흔치 않다.

스벅에 있던 그 누구도 나에게 관심이 없었으나 어색함을 감추려 테이블에 두 팔꿈치를 대고 생각하는 로뎅자세를 취해 보았다.

역시 흔치 않은 일이다.


눈물 잉크로 쓴 시 길을 잃은 멜로디
가슴과 영혼과 마음과 몸이 다 기억하고 있어 이제 다시 일어나 영원을 향한 여행 떠나리


사실 이 노래를 부른 이상은 가수는 나로썬 이상은 가수님이라고 불러야 되는 윗세대다.

겨우 담다디 담다디 담다디 담 부분만 무한도전 자료화면 같은데서 보고서 익숙한 리듬에 누군진 잘 몰르겠는 근데 일단 신나고 보는 그런 노래를 부른 가수 정도로 알고 있다.

그런 내가 같은 가수의 삶은 여행이란 노래가 익숙한 이유는 이러하다.


세상만사 내 손바닥 안에서 내 뜻대로 돌아간다고 착각했던 소녀시절로 거슬러 간다.

그땐 엠피쓰리란 게 있었고(그것만 있었고.)

그 작고 귀여운 기계의 재생목록에는 대략

빅뱅의 거짓말이라던가 투피엠의 10점 만점의 10점이라던가 티아라 앤 초신성의 TTL2

같은 것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그 사이에 이질적으로 이상은의 삶은 여행과 같은 노래가 뜬금없이 꼽사리 껴 있었는데 이는

어딘가 벌써부터 어긋나보이는 인생무상 소녀였던 나의 특이취향을 반영한 것이었다.

(윤상 노래 겁나 많았음.

심지어 최백호의 낭만에 대하여도 있었음.)

뭔가 좀 그때의 내가 하이하다라고 평가했던 결의 노래들인 모양이다.

쨋든 그렇게 누군지도 모르는 분의 삶은 여행 노래를 아무 생각없이 이상하게 즐겨 들었었는데

꽤 오래 잊고 살다 최근에 김도연의 책 읽는 다락방이라는 팟캐스트(애청자다.)에서 오프닝송으로 계속 나오는 비밀의 화원이 삶은 여행도 소환해서 나란히 스마트폰 멜론 재생목록에 담긴 것이다.


그렇게된 서사의 그 노래를 듣고 대관절 알 수 없는 감정의 파동이 잔잔해질 때까지 나에게 시간을 주었다.

얼그레이바닐라티라떼는 옳은 선택이었고 다시 죽은 왕녀의 파반느를 마저 읽고 스벅을 나섰다.

집에 가는 산책길, 고요의 타임.

이 시간엔 높은 확률로 아까 미뤄둔 감정의 분석과 분류가 이뤄지곤 한다.

왜 눈물이 났을까.

뭐가 그리웠을까? 혹은 뭔가 억울했을까?

여러 짐작이 있었지만 떠오른 한 장면으로

내 감정을 처리해본다.

꽤나 옛날에 꽃보다 청춘이라는 여행예능프로에 유희열 윤상 이적이 나온 편이 있었다.

그때 마추픽추에서 내려다 보이는 절경을 보며 그 중 누군가가 울었다.

그때 본인이 눈물이 난 이유에 대해서

"시간이 아까워서."라는 말을 했던 기억이다.

그리고 난 그 장면을 보면서

지난 날에 대한 그리움 정도의 의미로 이해했던 기억이다.

그 장면과 오버랩되는 나의 뜬금포 또르륵의 의미에 대해 내가 내린 정의를 추가해 본다.

'시시함'

소녀시절 엠피쓰리 목록에서 나만의 유니크한 음악관을 구축해가면서 이상하고 알 수 없지만 무작정 찬란함을 예상했던 내 서른즈음에 대하여.

지금의 내 서른즈음이 그 예상과 기대에 합당한가.


시시한 서른, 고작 이런 서른이 되어 버린 내가

가진 것 없이 눈만 높아서는 엄청난 미래를 그릴 줄 알던 열일곱 즈음의 나에게 해주고 싶은 말을

또 오해영 속 오해영의 대사로 대신 전해본다.

"그래도 여전히 내가 애틋하고 잘 되길 바란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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