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 꽃밭으로 살기 프로젝트]4.보통날.
적당한 불안.
그로부터
8개윌이 되어 간다.
어제와 같은 듯 어제와 다른 확실히 이질적인 날들의 서막이었다.
제정신이 낄 틈이 거의 없는 날들 중 어느날에
난 미미한 효능을 주다 뺏는 수양의 힘을 그래도 믿고서 정진하겠다는 갸날픈 포부를 이곳 브런치에 게재했었다.
그리하여 8개월을 지나고 있는 이 지금.
브런치에 써내려가는 이글이 그때보다 덜 경직돼 있고 꽤 정제된 느낌이며 조금 가볍길 바란다.
그렇다.
지금의 난 은근 괜찮아져 있다.
감정의 영역상 사실 그렇다는 물증은 없다.
다만 그러리라 추론되는 몇가지 행위가 있는 것이다.
일단 짜증이 생겼다.
극도의 불안 속에선 잔짜증 따위가 고개를 내밀 수 없었다.
그리고 법륜스님의 영상을 찾아보지 않는 날들이 길게 이어지고 있다.
사실 이 부분에 대해선 복잡한 마음이다.
정말 힘들 땐 법륜스님의 말씀이 정말 많은 위로가 됐다. 수혈하듯 영상을 재생하는 행위는
평온을 찾기 위한 의지의 발현이자 내가 힘들다는 반증이다.
그래서 영상을 찾지 않는 지금에 대해
법륜스님의 영상을 굳이 재생하지 않아도 굴러가는 일상에 대한 안도감과 그동안 많은 힘듦을 다스려주신 감사함과 다시 찾게 될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세 다리 의자처럼 서 있다.
참 지긋지긋한 프로생각러다.
그동안 많은 책을 읽었다.
근래에 읽은 심리학 저서 <어른이라는 혼란 /박경숙>이라는 책에는
[낙타 - 사자 - 어린아이]로 등급 매겨지는 혼란의 단계가 있다고 했다.
엔트로피가 높아져 무질서 상태인 낙타 단계에서 엔트로피가 낮은 질서를 이룬 상태인 어린아이의 단계로 나아간다고 한다.
그 책에 따르면 그 동안의 나는 낙타에 가까운 수준의 불안, 우울, 무기력을 안고 살았던 것이었다. 그리고 지금은 사자로 한 단계 업그레이드 된 듯한데 이 사자의 단계로 진입하기 위해선 엄청난 고통과 수련과 좌절을 지치지 않고 감당해야만이 비로소 사자가 될 수 있는 것이었다.
어린아이의 단계는 본인의 내면을 스스로 수월하게 통제할 수 있으며 높은 가치를 추구하는 성숙한 단계로 설명되는데 지금의 나로선 현실감 일도 없는 이상이다.
참 인간이 되기란 이렇게 어렵다.
해서 난 고됨을 이겨내고 겨우 얻은 내 귀여운 사자를 잘 키워가겠다는 다짐이다.
사자도 낮은 수준의 아기 사자와 높은 으른 사자가 있다 했다.
사자는 무기력한 낙타에서 벗어나 저항하는 존재로 욕망을 추구하기 시작하면 용기를 낼 수 있게 된다고 하는데 태생적으로 욕망과다형 인간인 나는 이상한 자신감이 들고 있다.
불순한 욕구를 걷어내고 추구할 만한 건강한 욕망
(이 책에선 이것을 메타동기라 한다.)을 향해 차근차근 용기를 내보리라.
큰 도움이 되었던 책이었다.
다만, 지난한 시간 동안 무수한 심리학 서적을 접한 경험상 책에 쓰인 내용이 신뢰성과 타당성을 두루 갖춘 맞는 말일지라도 내 상황에 알맞게 적용해 제대로 흡수하려면 어디까지나 내 주관과 판단이 개입돼야 한다는 것이다.
그 맞는 말이 내 상황에 맞는 말이냐를 내가 옳게 판단하기까지가 난 참 어려웠다. 여전히 어렵다. 그래서 책을 완독하고 끄덕이며 다시 태어난 느낌에 취했다가도 나는 늘 그대로였다.
그래서 책의 도움과는 별개로
어긋난 나를 회복하기 위해선 내가 직접 현실에서 온몸으로 체득해야 하는 시행착오가 필수라는 걸 알았다.
아직 갈 길이 멀지만 내가 체득한 스스로의 판단.
해서, 좋은 책의 좋은 말을 제대로 받아들일 수 있게 된 한 가지 확실한 깨달음은.
내가 하는 대부분의 생각은 거의 쓸데가 없다는 거였다.
과장된 생각이 불안을 낳고 행위의 무능을 낳았다.
그래서 생각을 극도로 자제하는 수련의 힘을 갈고 닦으면서 지금 당장 해야 되는 일을 하는 담박한 삶을 추구했다.
지나가는 것들에 대한 필요 이상의 유추도 망상이다.
흘러가는 것을 흘러가는 대로 두기.
역시 그 단순한 진리가 내가 간절히 바라던
적당한 불안, 감당할 만한 두려움이 있는 일상으로 나아가는 키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