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한 밤은 어김없이 발명되기도 하나
땅이 뿜어내는 입김을 바람이라고 부르기도 하나
하늘이 발명한 조각 작품을 구름이라고도 하나
때로는 구름의 투신을 절명하는 소나기라고 하나
초목 속으로 관통한 바람의 사생활은 스스로 길이 되기도 하나
나는 내 틀에 맞춘 길로만 다니며 허전한 삶을 살았다
나무가 만든 길은 산을 넘고 숲을 지나 마을까지 걸어와
마음의 빈부와 기억의 멀미를 정확히 셈해보기도 하나
나무는 울창한 생각으로 밤을 연주하기도 하나
길은 숲에 들었다가 더 깊은 산속으로 점점 사라지기도 하나
오후의 설핏한 노을 서산을 넘으며 눈물을 제안한다
허기지고 누추한 생각들 저녁노을 따라 넘기도 하나
허기는 얼마나 힘센 망각인가
누추는 누구를 위한 후회인가
대낮의 무기력한 삶 사치로운 밤이 치유해 주리라 믿기도하나
개와 늑대의 시간에 시원한 소나기
이 비 그치면 어둡고 착한 밤은 어김없이 발명되고
또 세월은 흐르고 모든 게 흠뻑 젖어 가끔은 슬프게 행복하기도 하나
나를 다시 깜박이게 하는 새벽이 오기도 하나
10년 간은 관심이었고 또 10년 간은 경청이었으며
그리고 10년간은 공감이었고
나머지 10년 간은 소통과 불통의 중간쯤이기도 하였나
출근할 필요가 없는 내년부터 장장 십 년, 이십 년은 무어라 불려 지나
백수, 시인, 여행작가, 영시니어, 아재할배라 하나
불행이다 아니다 다행이다
아무리 무성한 숲에도 길, 투신하는 소나기 속 바람에도 길
나를 천천히 지웠다가 결연히 꺼내
길 위에 펼쳐 보기도 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