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한다고 말할 걸 그랬지

--만장이 태풍에 찢기고 해수욕장 모래가 전부 사라졌다.

by 백도바다

말할걸 그랬다 사랑한다고


여름 난항은 끝이 없었다

고갯마루마다 안개에 싸여

점점 열이 나기 시작했고

거칠어진 발과 손으로는 그대를 똑바로 쳐다볼 수 없었다.


평온했던 한 평생의 바다가

파도의 높이를 알고 나서는

그대는 떠나가는 배, 나는 조용히 정박해 있는 배이기도 했다.

목을 축이고 싶다, 최후의 만찬 그림을 보며 밥을 먹었다

클림트의 뜨거운 키스를 거실에 걸고 낮잠을 잤다

갈매기처럼 하늘을 날며

뜨거운 구름으로 샤워를 하고 싶었다.


끝끝내 그 여름의 배는 돌아오지 않았다

오히려 잘된 일이라고 바다에서 한 달간 소주를 마시며 기다렸다

만장이 태풍에 찢기고 해수욕장 모래가 전부 사라졌다

가끔 아이들은 자맥질로 팔뚝만 한 숭어를 잡아 나에게 주었다.


수염으로 얼굴을 분간하기 힘든 사내

봄에 구한 그물 여름이 끝나도록 깁고

가을 추수준비가 안된 사람들과 바닷가에 남아

9월의 무더위를 수장시키는 의식을 치르고 있었다

여름이 아직 안 갔다 여름이 괜히 부슬부슬 슬펐다

말할걸 그랬다 사랑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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