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홀로 남인도 40일---여행 통신 제9호
인도를 여행하는 배낭여행자들에게 <깐야꾸마리>가 의미하는 것은
멀고도 험하고 더럽고 덥고 짜증나고 고생스러워 여행의 종착지라고 늘 생각하는 인도,
<깐야꾸마리>에 도착했다는 것은 인도의 땅끝마을이라는 상징성 때문에 여행가들의 도전정신에 대한
일종의 인증장소로 통하기도 합니다.
남인도 여행 통신 백도 바다의 제9호 인도의 땅끝마을 <깐야꾸마리> 편입니다.
인도라는 나라는 그 땅덩어리가 세계에서도 7번째 안에 드는 큰 나라입니다.
북위 35도쯤에서 시작된 인도 공화국은 남쪽으로 무려 3,000km를 내달려 거의 적도 부근인 북위 8도쯤에서
우리나라 해남 땅끝마을처럼 <깐야꾸마리>라는 도시에서 인도의 그 마지막 땅의 끝을 마무리합니다.
삼면이 바다인 인도의 특성상 <깐야꾸마리>는 동쪽의 뱅갈만, 서쪽의 아라비아해, 남쪽의 인도양 세 바다가 바로 이곳에서 만나는 곳입니다.
어떤 여행책에는 세 곳의 바다에서 들이치는 파도를 구분하여 볼 수 있다고 합니다만
아무리 자세히 관찰해도 그건 구분을 못하겠더군요. 약간은 뻥인 것 같습니다.
힌두교에서는 이런 특이한 자연현상 자체를 가만히 놔둘 리 없지요.
까야꾸마리를 신성시하는 건 당연한 이치, 힌두교의 위대한? 유명한? 성지가 된 곳입니다.
<바라나시> 강가처럼 수많은 인파가 몰려드는 곳이 <깐야꾸마리>입니다.
인구는 2만밖에 안 되는 작은 마을이지만 특히 매년 연초나 매월 음력 보름은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라고 합니다.
그 외에도 계절을 가리지 않고 엄청난 순례객들이 모인다고 합니다.
새벽 썬라이즈 가트에는 이 마을의 열 배도 넘는 순례 참배객이 모여든다고 하니
인도인들의 신심의 깊이를 짐작하고도 남습니다. 인구가 워낙 많아서 그런가요? 아마 13억이 넘지요?
매월 음력 보름에 이곳에 힌두인들이 모이는 인도인들은 바다에 떠오른 달이 바다로 사라지고
그 자리에 다시 해가 떠오르는 현상에 각별한 의미를 두기 때문이랍니다.
도착 다음날 새벽 해돋이 출사를 나갔는데 정말 달이 사리지고 해가 그 자리에 서서히 떠오르는 그 장관은
여느 해돋이보다 멋지고 의미 있었습니다.
새벽이라 선선한데도 이 신성한 곳, 썬라이즈 목욕 카트에서 목욕재계를 하며 저마다의 소원을 비는 인도인,
떠오르는 해를 보고 기도, 합장하는 사람들, 큰 헝겊으로 퍼포먼스를 하며 축원하는 사람들,
진짜 발 디딜 틈이 없다는 말이 실감 날 정도로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깐야꾸마리> 땅끝마을을 방문하기를 정말 잘했습니다.
여행자들에게 <깐야꾸마리>는 멀고도 험한 인도의 땅끝이라는 일종의 도전정신에 대한 인증 장소로 통합니다.
인도 여행을 하면서 <깐야꾸마리>를 발과 눈과 머리와 가슴으로 보고, 느끼고, 찍었다는 의미는
인도를 한 바퀴 돌았다는 말의 다른 표현이기도 하니까요.
<깐야꾸마리>가 인도의 지리적 땅끌이라면, <람메스와람>은 힌두교 신자들에게 종교적 땅끝에 해당한다고 합니다. 아쉽게도 <마두라이>에서 고생을 너무 많이 하는 바람에 <람메스와람>을 포기하고 말았습니다.
당일치기는 어렵고 1박 2일이나 2박 3일 다녀오면 좋을 듯해서, 한국에서 출발할 때는 꼭 방문할 곳에 포함시켰었지요.
아쉽게도 마두라이에서 예정보다 하루 더 체류를 하였고 고생을 너무 많이 했고, <람메스와람>으로 들어가는 교통편의 횟수도 적고 모든 게 열악하여 포기하고 <깐야꾸마리>로 바로 온건 조금은 후회되는 부분입니다.
어디를 가나 간디 박물관과 동상이 있습니다.
여기도 <간디만다빰>이라는 간디 박물관이 있습니다.
들어서자마자 남루하고 허름한 인도아재가 설명을 합니다.
간디 생일인 10월 2일이 되면 유해가 놓였던 자리에 햇볕이 들도록 설계되었다고
그 지점을 데리고 가서 설명을 하는데 술내음이 섞인 입냄새가 얼마나 심하게 나는지
도중에 간디 박물관을 확~ 나와버렸습니다.
낮 술을 한 잔 했나 봅니다.
아! 거대한 땅덩어리 인도의 땅끝 마을에는 여행자도 순례객이 되어 종교의 심오한 부분을 생각하게 만듭니다.
<깐야꾸마리>의 볼거리 핵심은 새벽 일출입니다.
일찍 일어나 꼭 페리를 타고 한 10분 바다로 나가서 보는 <비베카난다 뿌람> 뮤지엄과 메모리얼 그리고 그의 동상 목욕가트와 함께 보는 <꾸마리암만>사원입니다.
인도의 땅끝에 서서 많은 생각을 합니다.
지리적 생태와 상황이 사람들의 삶을 결정하기도 한다는 사실,
남인도 여행에서 왜 꼭 <깐야꾸마리>를 찍어야, 방문해야 하는지,
그 이유를 곰곰이 사유하게 만드는 영험한 곳이라는 생각,
책이나 TV에서나 봐왔던 곳을 나도 방문했다는 그 뿌듯함이
그동안 고생을 보상이라도 하듯이 뿌듯한 희열을 느끼게 하는 곳이었습니다.
<깐야꾸마리>에서 3박을 했고 이제는 기수를 서쪽으로 돌려서 코친 쪽으로 갑니다.
어차피 40일 여행의 시작과 끝(비행기로 인 아웃하는 곳)은 코친니까요.
내일은 아라비아해 변이 아름다운 코발람으로 갑니다.
혼자 여행이라 해변 쪽은 되도록 피하는 게 좋습니다, 인종별, (동양인은 별로 없더군요,) 커플들의 천국에서 홀로라는 외로움, 그 서먹하고 이상함을 더 느끼게 만드는 곳이 해변이니까요.
고아 해변에서 절절하게 느꼈던 사실이지만 어차피 여행루트가 그쪽이니 그냥 가기로 합니다.
그것도 로컬버스를 타고 4시간을 가야 하는 고역(먼지, 크라숀. 소음, 도로의 번잡함.. 수많은 뚝뚝이, 오토바이, 사람들의 외침. 카오스가 따로 없습니다)을 감수하면서요.
장기여행 중 그래도 지금까지는 근근이 버텨냈습니다만 시간이 지날수록 힘이 몇 배씩 더 듭니다.
먹는 게 시 원찬 치요, 많이 걷지요, 한낮에는 무척 덥지요, 밤마다 모기와 사투를 벌이지요, 탈거리들은 탔다 하면 눈과 귀, 손발, 허리, 머리 모두를 꽝꽝 휘청 마구 흔들며 고통스럽게 하지요.
움직이는 건 사람이지만, 인도 당 덩어리 전체가 도는 듯해, 사는 게 사는 게 아닙니다.
매일매일이 전쟁입니다.
특히 음식이나 잘 맞아야 기운을 차릴 텐데 시킨 음식을 자꾸 남기기를 반복하니
도통 기운을 차릴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쿨 비어 한잔을 쭈욱 들이키고는 계획된 일정대로 갑니다.
40일 남인도 여행이 절반 이상 지났습니다.
인도 여행은 환상과 낭만을 가지고 다니는 건 아니라는 생각입니다.
반성 있는 생활입니다.
삶 자체가 어차피 고통이지만, 그동안 몇십 년 누려왔던 친숙한 사회적 관계와 가족 관계, 느낌과 대가 없이 획득했던 익숙함과의 결별도 여행기간이 길어질수록 그 강도를 더하여 되돌아보게 만드는 계기가 된 것은 나머지 인생에 두고두고 조금씩 꺼내 써야 될 보물이 되어 가는 것 같아 진정으로 다행스럽습니다.
이제 제8호는 마무리합니다.
깐야꾸마리 사진, 맘에 드는 게 참 많습니다. 새벽 수많은 순례자들과 같이 기도, 합장, 기원하며 찍은 사진 여러 장 보냅니다.
다음 제9호는 아라비아의 아름다운 해변 코발람 피치와 깨랄라 주도인 트리반드룸 편입니다. 기대해주세요.
긴 글 읽으시느라 수고 많았습니다.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