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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도바다 Mar 22. 2019

동네 남는 아저씨 셋, 동남아 3개국, 30일 자유여행

---미얀마 만달레이 편

에피소드 6

---이 글은 동남아 3개국을 30일간 여행하면서 슬리핑 버스나 택시를 장시간 타는 즐거운 고역의 시간에 

또는 비행기를 총 8번 탔는데 공항에서 기다리는 시간에 쓴 에피소드 위주의 글로 

지인들의 단체 카톡에 올렸던 것을  이제 조금 수정하여 다시 이 브런치에 올립니다.

평생을 다녔던 직장인데 올해부터는 세명 모두에게 <나오지 마!> 라 합니다. 

그래서 동네 남아도는 아저씨 셋이서 의기투합하여 졸업여행이라는 그럴듯한 명분을 내세워 동남아 3개국

(베트남, 미얀마, 태국)을 30일간 자유여행을 했습니다.

<마하 간다 용 짜웅> 불교대학의 동자승, 탁발을 마쳤는지 지폐와 봉지 가득 뭔가를 들고 있다. 물론 웃음으로 찍어도 되겠느냐고 허락을 받았지만 왠지 떨떠름한 표정이다. 어린 스님

순박한 불심의 땅--마지막 황금도시

미얀마 경제의 중심지가 양곤, 행정의 중심지가 네피도라면 만달레이는 종교와 문화의 중심지 맞다.

지리적으로도 미얀마의 남과 북을 잇는 중심부에 위치하고 있어서 미얀마의 제2의 도시답게 크고 아름답고 

과거의 왕조의 자취를 고스란히 보여주는 고즈넉하고 고색창연한 고도시 맞다.

미얀마 마지막 왕조의 숨결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곳, 

2,400년 전 부처가 만달레이 힐에서 <이곳에 위대한 불교 성지인 거대한 도시가 생길 것>이라고 예언한 곳, 

찬란한 불교문화의 정수를 볼 수 있는 곳, 그래서 말문을 막아버리게 만드는 곳, 

불교적 수행을 할 수 있는 이상향의 세계 <정토불교>를 꿈꾸던 만달레이라는 신비한 곳,

불교의 성지순례로 수많은 불자가 찾아오는 곳, 왠지 신성한 도시라 옷매무새를  다시 가다듬게 만드는 곳....

왕조는 멸망했지만 그들이 이루어 놓은 종교의 흔적과 불교적 색채가 짙은 문화의 발자취는 지금도 만달레이 곳곳에 남아있다. 먼 곳도 아니고 도심 한가운데 수많은 불탑과 사원이 있으니 그들의 신심을 미루어 짐작하고도 남는다 그리고 미얀마 마지막 왕조의 왕궁도 도심에 사원과 불탑과 조화롭게 잘 어울려 자리 잡고 있으니 왕정 통치와 불교의 신앙은 그 당시 백성들의 삶이자 정신이었던 셈이다.

또, 미얀마에서 불교대학이 가장 많은 곳이기도 해서 사원은 물론이고 길거리나 시장이나 아무 곳에서나 스님들을 만날 수 있다. 

미얀마의 아름다운 사원들은 마치 그림엽서에서 종종 보았던  그런 모습으로 나에게 다가온 것이니...

만달레이를 이번 여행 일정에 넣은 것은 정말 잘했다.

아! 글쎄? 대한민국 강원도 촌놈 셋, 동네 남아도는 아저씨 셋이 찾아왔다고 <우베인 브리지> 상공에서 축하비행을 해주는 다섯 대의 <플라이 존 모터행 글라이드> 미얀마 사람들 많
만달레이의 랜드마크 <만달레이 힐>에서 내려다본 풍경, 사방팔방 곳곳에 정말 사원이 많기도 하다!
<만달레이 힐>을 올라가기 전 쳐다 봄.

미얀마 마지막 왕조의 수도였던 만달레이는 몇 천 년의 유구한 불교역사의 흐름을 느낄 수 있는 유적지가 곳곳에 산재 해 있으며, 한 편, 영국 식민지 시대에 계획도시로 만들어지면서 세워진 현대적인 건물들도 동시에 볼 수 있는 독특한 도시이다.

<만달레이 힐>에서
보는 각도에 따라 부처님의 웃는 모습이 달라진다고 하니... 신도들이 붙인 금박이 산더미 같다.

부처가 직접 생명을 불어넣은 불상이 있는 곳, 미얀마에서 가장 중요한 불교 성지 중 한 곳인  <마하 무니 파야>

<만달레이 힐>에 전시? 판매? 하는 사진 들, 이걸 보고 그대로 찍으려 했으나 사진 실력도 달리고, 시간, 날씨의 협조도 안되고 일정도 빡빡해서 떠나야 하고....

높이 240m 만달레이 힐은 누구나 만달레이를 방문했으면 꼭 올라야 하는 랜드마크--정상에서 내려다보는 전경은 왜 만달레이를 불교 성지 순례로 가야 하는지를 대변해준다. 특히 황금빛으로 물들어 가는 일몰 때 이곳에 서있는 것조차 행복하다.

여기도 미세먼지가 있는지 집에 와서 보니 사진이 영 뿌연 게 신통치 않다.

마지막 왕인 민 돈이 동생을 추모하기 위해 건립한 사원 <산다무니 파야>

나무로 치장한 화려함의 극치, 만달레이에서 소실되지 않고 유일하게 남아있는 궁전 건축물 <쉐난도 짜웅>

하얀색에 빠져서 도저히 헤쳐 나올 수 없을 것 같은 눈부시게 아름다운 흰색 사원 <아투 마시 짜웅>

미얀마 마지막 왕조의 건축역사를 엿볼 수 있는 곳 <만달레이 궁전>

이 만달레이 궁전은 미얀마 회폐 중 가장 고액권인 1만짯(우리나라 돈으로 약 8천 원 정도>에 인쇄될 정도로 유적으로 자긍심이 높은 곳이기도 하다.

승려들의 탁발 행렬을 바로 옆에서 볼 수 있는 불교대학 <마하 간다 용 짜웅>

스님들보다 관광객이 훨씬 많았다. 서로 좋은 위치에서 한 컷 하려는 자리싸움이 어지러웠다. 

용감하게 몇 컷 했지만 영 마음에 안 든다.

어른스님들은 늘 보아왔던 관광객이니 눈길 한 번 안 준다. 

그래도 동자승들은 가끔 쳐다보기도 했다. 이쁜 여자들만.... 아니, 엄마 같은 여자들만....

그러나 <만달레이>에서는 뭐니 뭐니 해도 세계 곳곳의 여행가와  사진작가들을 끌어 모으는 곳은 

<아마라푸라 우베인 다리> 일 것이다.

<우베인 다리>는 탁발을 위해 먼길을 돌아다녀야 했던 스님들을 위해 한 신도가 보시로 만들었다고 한다.

그 신도의 지극한 신심 덕분에 거의 200년 동안 아침저녁으로 수많은 주민들이 <우베인 다리>를 오가며 하루를 시작하고 마칠 수 있는 편리함을 누릴 수 있는 것이다. 

신심의 깊이는 가늠할 수가 없기도 하지만 선한 곳에 쓰이면 이렇게 만인이 이롭다. 

그러나 이 세상에서 발발했던 모든 전쟁의 절반 이상은 종교와 신앙 때문이었으니....., 

또 어렵고 무거운 주제로 넘어가려 하는구나! 아서라!  

<우베인 다리>의 SUNSET을 감상하기 위해 서서히 몰려드는 배들
이럴 때 <캐논 카메라 5D 마크 3>의 위력을 본다. 물론 스마트폰으로도 열심히 찍었지만 귀국 후 사진을 열어보면 금~방 앱~~~ 니다.

신도가 보시로 스님들을 위해 건설했다는 말은 미화된 것 같다.

사실은, 1850년 만들어진 이 <우베인 다리>는 당시 이 마라 쁘라 시장이었던 <우베인>이 <잉와 왕궁>을 짓다 남은 티크 목으로 이 다리를 건설했다고 하는데 무려 170여 년의 긴 세월을 잘 살아 있는 것이다.

<타웅 타만> 호수를 건너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되고 긴 목조 다리로 그 길이가 무려 1.2km, 

총 1,086개의 나무기둥으로 세워진 이 다리는 아직도 원형 그대로 잘 보존되고 있어 전 세계 사진작가들의 로망이 되었고 세계적 관광지로 급부상한 것이다. 정말~~! 사진이나 TV에서 봤던 이! 이! 이!-----> <우베인 다리>를 진짜 보는구나!  感慨가 엄청 많이 無量했다.

이 사진은 해님이 정말 사라지고 노을빛이 겨우 남아, <우베인 다리>로  걸어 픽업 차로 가다가 서쪽 호숫가 거의 끝나는 지점, 작은 길이 한 작품 할 것 같아 찍었는데... 워때
스님도 <우베인 다리> 위에서 <우베인 다리> 보시며 염불을 외며 수행 중이다.
이 쪽 끝까지는 안 갔다. 그래서 사진으로 찍어 남겼다.
사실, 배를 안 타고 건너편 호숫가에서 사진을 찍으니 <우베인 다리>의 수평을 맞추는데 문제가 자꾸 생겼다. 이 사진은 일부러  수평을 다리에 맞추었는데 조금? 많이? 이상합니까?
이 <우베인 다리>에서 맞이하는 일몰 풍경은 황홀 그 자체라서 캐논 카메라와 스마트폰으로 거의 400장은 찍은 듯하다.
<잉와 유적군>에서 마차투어를 마치고 배를 타고 선착장으로 돌아왔다.
어린 스님들, 장난꾸러기 같은.... 
일몰을 감상하려는 관광객들, 우리는 저 배를 타지 않았으니 뱃삯은 모르지만 인레호수를 보고 다시 만달레이에서 1박 할 때는 꼭 저 배를 타고 사진을 찍으리라 다짐한다.
만달레이 힐
만달레이 <더 홈 호텔>에서 미소가 아름답고 친절했던 여직원들과 한 컷! 저 샌들 속에 숨어있는 발족 보소! 거의 미얀마인이나 다름없네... 현지인보다 더 까맣다.

<에피소드 6>----49년생이라고 하셨던가요? 

지금은 관광지로 탈바꿈된 달랏 구역사에서 그를 만났다.

사실 만났다는 말보다는 그가 접근했다.

해외여행 시에는 현지인보다는 한국 여행객을 오히려 더 조심해야 한다고 

오래전 나의 여행기에 쓴 기억이 있다.

먼저 경계심을 갖고 대화를 나누다 보니 기우였다.

여의도 사는 유순식이라 했으며

49년생으로 70세의 행님 뻘의 배낭여행자였다

2018년 12월 3일부터 60일간 홀로 배낭여행 중으로

2019.1.10 현재 한 달 이상 여행 중이라는 사실 등을 술술 풀어놓는다.

그는 말 상대가 고팠던 것이다. 비슷한 또래의 한국인이 그리웠던 것이다.

혼자 다니면 실어증이 생길 수도 있다는 여행기를 본 적이 있다

자유롭게 고독하여 좋은 점도 있지만 음식과 말이 많이 결핍되어 배낭여행을 접고 

귀국하고 싶을 때가 하루에도 몇 번씩 들 수 있다

그러나 여행은 만들어지는 게 아니라 만들어가는 것이겠기에

본인이 설계하고 여행하기로 작정했기에 고독감과 실어증과 입맛 없음을 극복해나가는 것도 

본인이 전부 짊어지고 갈 몫이려니 해야 한다.

갑자기 작년 초 나 홀로 40일 남인도 배낭여행이 생각나서 갑자기 친해지고 동질감까지 느껴서 

카톡도 개통하고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치앙마이 라오스 캄보디아를 거쳐서 베트남 다낭, 그리고 이틀 전에 달랏을 입성했다고 했다.

우리와 같은 무이네 호찌민을 거쳐 방콕까지는 코스가 같았고 

그 이후는,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서 아웃한다고 했다

우리 셋과 단체사진도 찍고 캔커피와 담배를 나누어 피고

오래된 친구처럼 행님처럼 그와 헤어졌다

우리는 그 사람보다 이틀을 먼저 무이네로 가는 일정이었다.

무이네 한인 G/H를 알아봐 달라고 카톡을 했고 한인식당을 물어서 몇 군데 추천해 주었다.

그렇게 그 사람은 못 만날 줄 알았다

무이네 3박 4일 투어를 마치고 호찌민으로 가는 슬리핑 버스를 타러 갔는데 그가 달랏 일정을 마치고 

신투어리스트 버스정류장에 내리는 게 아닌가? 많이 반가웠다. 친한 가족처럼 한참을 이야기했다. 

지금은 미얀마 바간에서 인레호수로 가는 9시간 버스 속에서 쓰는 카톡이라 

글씨 멀미에다 버스 멀미까지 몹시 흔들리고 어지러워 짧게 마쳐야 한다

여의도 유순식이라는 그분, 그 이후 호찌민 여행자 거리에서 또 한 번 만났고

방콕 카오산로드 여행자 거리에서 또 만났으니

여행 중에 이렇게 네 번씩이나 만날 수 있단 말인가!

그 사람과의 여행 중 만남으로 인해 인연이라는 단어를 깊이 천착해보는 것이니..

동네 남은 친구 셋과 한 달 자유여행은 참 좋은 인연이다. 시작이 좋으니 끝도 좋으리라 생각한다

오늘이 23일이니 이제 집 떠난 지 거의 20일 되어간다.

<어리석은 사람은 인연을 만나도 몰라보고, 보통사람은 인연인 줄 알면서도 놓치고,

현명한 사람은 옷깃만 스쳐도 인연을 살려낸다> 고 쓴 피천득의 에세이 <인연>이 생각난다.

인연은 무작정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만드는 것이라고? 그래도 그러나 그리하여 어렵다.

<좋은 인연이란 시작이 좋은 인연이 아닌 끝이 좋은 인연이다. 시작은 나와 상관없이 시작되었어도

인연은 어떻게 마무리하는가는 나 자신에게 달려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잠깐, 무슨 신파냐 하겠지만 <이선희의 인연>을 함 들어보심.... 가사를 음미하면서....

동네 남아도는 아저씨 셋, 우정으로 뭉친, 동남아 3개국, 자유여행 30일의 인연!

달랏에서 만난 후 무려 세 번을 더 만난 70세, 여의도 유순식이라는 사람과의 인연! 

참 좋은 인연!  잘 마무리해야  할 인연인가!!!

여의도 유순식이라는 분, 호찌민(사이공) <브이 비엔 워킹 스트리트>, 여행자 거리에서 딱 조우! 그분도 놀라는 눈치였고 나도 많이 놀랐다. 인연은 달랏, 무이네, 호찌민까지 같이
여의도 유순식이라는 분, 달랏 구역사에서 만나 무이네, 호찌민, 카오산로드에서 또 만났으니... 지금도 카톡으로 안부와 여행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다. 아마 저 분과 배낭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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